AI로 티셔츠 브랜드 만들기 #1 — 심사에서 떨어진 날, 내 쇼핑몰을 만들기로 했다

AI와 30만원으로 티셔츠 브랜드 WILD HUMBLE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개하는 연재입니다. 성공도 실패도, 쓴 돈도 그대로 적습니다. 이 글은 #1편입니다.

여행이 옷이 되었다 — 리스본 트램이 등판에 앉은 첫 실물
여행이 옷이 되었다 — 리스본 트램이 등판에 앉은 첫 실물

“여행이 옷이 된다”

시작은 단순한 생각이었다. 나는 매년 한 번씩 혼자 여행을 간다. 2023년 유럽, 2024년 튀르키예, 2025년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 사진들이 노트북 폴더에 잠들어 있었다.

이걸 옷으로 만들면 어떨까. 리스본의 노란 트램,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트레비 분수에 던진 동전 — 남들이 다 아는 랜드마크 말고, 내가 그날 실제로 본 장면을 그래피티 스케치로. 시즌이 끝나면 그 그래픽은 다시 안 만든다. 그날의 여행처럼, 한 번 지나가면 끝.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 RISE ANYWAY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 RISE ANYWAY
새벽의 트레비 분수 — BEFORE THE CROWD
새벽의 트레비 분수 — BEFORE THE CROWD

콘셉트는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하나였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 옷도 만들 줄 모른다. 그리고 예산은 30만원이다.

그래서 AI에게 전부 맡기기로 했다

계획은 이랬다. 디자인은 AI가 그리고, 생산은 주문형 인쇄(POD)로 재고 없이, 판매는 플랫폼에 얹고, 나는 결정과 계정 로그인만 한다. 사람 손이 최소로 들어가는 브랜드가 정말 가능한지, 30만원이 다 타기 전에 알아보는 실험.

첫 도안을 뽑았다. 좋아하는 티셔츠 스크린샷 몇 장을 AI에게 보여주고 “이런 취향인데 무드보드 만들어줘"라고 했더니, 오버핏 + 등판 대형 그래픽 + 스케치풍 + 그래피티 레터링 + 아이보리 톤이라는 방향이 나왔다. 브랜드명 후보 세 개 중에 골랐다 — WILD HUMBLE.

여기까지 반나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첫 관문에서 떨어졌다

판매를 얹으려던 POD 플랫폼에 크리에이터 신청을 넣었다. 재고 0원으로 시작할 수 있는 위탁 판매라, 여기만 통과하면 바로 상품을 올릴 수 있었다.

심사 탈락. 사유는 “포트폴리오 보강 후 재신청” — 쉽게 말해 디자인이 한 종류밖에 없는 빈약한 포트폴리오라는 것.

맞는 말이었다. 그때 나에겐 도안이 딱 하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계획의 첫 단추가 시작도 하기 전에 튕겨 나간 셈이었다.

떨어지고 나서 든 생각

잠깐 멈춰서 생각했다. 플랫폼 심사를 다시 준비할 수도 있었다. 도안을 몇 개 더 만들고, 프로필을 다듬고, 며칠 뒤 재신청.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문이 보였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티셔츠 좀 파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 전체를 자동화 쇼핑몰이라는 상품으로 재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의 플랫폼에 얹히는 것보다, 내 쇼핑몰을 직접 만드는 게 오히려 목표에 더 가깝지 않나?

문제는 돈이었다. 카드 결제를 붙이려면 PG사 가입비가 33만원. 예산 전체보다 많았다. 여기서 대부분 포기한다.

그런데 방법이 있었다. 무통장입금. 주문을 받고, 계좌를 안내하고, 입금을 확인하면 그때 제작에 들어가는 방식. 카드 수수료도, 가입비도 0원. 재고가 없는 주문형 제작과도 완벽하게 맞았다 — 어차피 주문을 받고 나서 한 장씩 만드니까.

그날 밤, AI와 함께 쇼핑몰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형 타이포 히어로, 스크롤 애니메이션, 제품 그리드, 주문 모달, 그리고 뒤에서 돌아가는 주문 접수 시스템까지. PG비 33만원을 회피하고, 현금 지출 0원으로 주문 가능한 쇼핑몰이 하루 만에 라이브가 됐다.

실패가 진행을 앞당겼다

돌아보면 그 심사 탈락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남의 플랫폼 규칙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떨어졌기 때문에 자체몰로 직행했고, 그게 애초 목표에 더 맞는 길이었다.

실패도 진행이다. 이 문장을 그날 배웠다.

다음 편에서는, 이 쇼핑몰에 채워 넣을 도안을 AI가 어떻게 그렸는지 — 그리고 “왜 자꾸 서양인 모델이 나왔는지” 같은 웃픈 사고들을 적을까 한다.


WILD HUMBLE은 실제로 판매 중입니다. 여행이 옷이 된 결과물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