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 수백 장을 여행기로 — 15일 1,346장이 이 블로그가 되기까지, AI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

이 사이트의 여행기는 내가 키보드 앞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쓴 글이 아니다. 여행 중에 남긴 짧은 메모와 휴대폰 사진을 재료로 AI가 초안을 만들고, 내가 읽고 고친 글이다. 실험실 카드 AI Travel Blog에도 그렇게 적어 두었다. 이 글은 그 과정을 한 번 정직하게 풀어 놓은 기록이다 — 무엇이 자동이고, 무엇이 여전히 사람 손인지.

여행 사진 정리 — 개념 사진 (사진: George Milton / Pexels)
여행 사진 정리 — 개념 사진 (사진: George Milton / Pexels)

재료: 메모 13일치와 사진 1,346장

2025년 포르투갈·스페인 여행은 5월 29일부터 6월 12일까지 15일이었고, 사진은 1,346장이 남았다. 대부분 아이폰 HEIC 원본이고,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JPG가 조금 섞여 있다.

메모는 생각보다 엉성하다. 앞의 사흘(5/30~6/1)은 날짜마다 파일이 따로 있는데 확장자가 없거나 .txt일처럼 오타가 나 있고, 그 뒤 열흘은 포르투칼&스페인.txt라는 파일 하나에 0602, 0603 같은 네 자리 숫자로 날짜를 구분해 몰아 적어 놓았다. 장소 이름은 “무슨 전망대”, “상그릴라 거리?“처럼 대충 쓴 것이 많다. 여행 중에 쓴 메모가 대개 그렇듯, 나중에 내가 읽을 용도였지 글이 될 줄은 몰랐던 기록이다.

그런데 설계 단계에서 이 메모를 다시 읽어 보니 결론이 하나 나왔다. 메모가 이미 블로그의 80%라는 것. 그래서 AI의 역할을 “글을 짓는 생성자"가 아니라 **“편집자이자 강화자”**로 잡았다. 이 결정이 그 뒤의 모든 것을 정한다.

자동으로 되는 것

1. 사진으로 동선을 복원한다. 사진마다 박혀 있는 EXIF(촬영 시각·GPS)를 뽑아 날짜별 JSON으로 만들고,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을 묶어 장소별 클러스터(places.json)를 만든다. 그날 몇 시에 어디 있었는지가 사진만으로 시간순으로 나온다. 여행기 상단에 붙는 “12개 장소 | 146장 촬영 | 10:22 ~ 23:45” 같은 숫자가 여기서 나온다.

2. 대충 쓴 장소명을 GPS로 바로잡는다. 메모의 “무슨 전망대"는 같은 시간대 사진의 좌표와 맞춰 실제 이름으로 바뀐다. 내가 이름을 몰라서 못 쓴 곳도 사진이 있으면 글에 들어간다.

3. 사진을 실제로 들여다본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지시서에 “사진 직접 확인"을 따로 단계로 넣었다. HEIC 원본은 장당 1.54MB라 읽기 부담스러워서, 용량이 작은 카카오톡 JPG를 먼저 열어 보고, 장소별로 대표 사진 23장을 실제로 본 뒤 거기 보이는 것 — 색감, 간판, 음식 모양, 꽃 — 을 본문에 녹인다. 메모에 없는 장면이라도 사진에서 발견하면 이야기에 넣는다. 반대로 사진 설명은 추측으로 쓰지 않는다는 규칙을 걸었다.

4. 글 꼴을 정하고 초안을 쓴다. 도시 오버뷰(A), 투어·코스(B), 자유로운 하루(C) 중 하나를 고른 뒤 초안이 나온다. TIP 박스, 하루 정리 표(시간·장소·하이라이트), 마지막 줄의 다음 날 예고는 필수 요소로 정해 두었다. 리스본 자유일 편을 열어 보면 그 구조가 그대로 보인다 — 날짜·도시·촬영 장수 헤더, 동선 타임라인, 소제목별 본문, 사진 캡션, TIP, 하루 정리 표, 예고 한 줄.

5. 동선 지도를 만든다. 장소 클러스터를 번호 마커로 찍고 시간순 점선으로 잇는 지도(Leaflet)가 글과 함께 생성된다.

사람 손이 들어가는 것

자동화라고 했지만 사람이 빠지는 지점은 없다. 순서대로 적는다.

여행 중 메모는 내가 쓴다.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리스본 자유일 여행기에 “영상도 정리하고, 밀렸던 여행 일기도 쓰고"라는 문장이 있는데, 그 일기가 바로 이 재료다. 사진은 찍히지만 “호스텔 저녁이 6시 신청 마감이고 식사는 8시였다” 같은 이야기는 적어 두지 않으면 사라진다.

사진은 USB로 직접 옮긴다. 카카오톡이나 SNS로 보낸 사진은 GPS가 지워진다. 설계 문서에 “반드시 USB 케이블로 직접 복사"라고 굵게 적어 둔 이유다. 한 번 잘못 옮기면 동선 복원이 안 된다.

한 번에 한 편씩, 읽고 고친다. 15일치를 한꺼번에 돌리지 않는다. “다음거 써줘” 하면 progress.json에서 아직 안 쓴 다음 날짜 하나를 골라 초안을 만들고, 내가 읽고, 피드백을 주고, 고친 뒤에야 다음으로 넘어간다. 진행 상황은 이 파일에 날짜별로 남아서 어디까지 썼는지 항상 보인다.

발행 전에 검수한다. 설계는 처음부터 “비공개로 발행 → 내가 검수 → 공개 전환” 순서였다. 한국어 글 한 편을 만들면 Blogger용과 Tistory용 HTML을 함께 만들고, 이 사이트에는 시즌별로 묶어 올린다.

솔직한 한계

이 방식으로 만든 글에는 분명한 성격이 있다. 사진과 메모에 없는 것은 글에도 없다. 그날 내가 느꼈지만 적지 않은 감정은 초안에 나타나지 않고, 사진이 없는 장면은 “사진은 못 남겼지만” 한 줄로 줄이거나 아예 짧게 지나간다. 지시서에 “사진 없이 길게 묘사하는 것은 금지"라고 박아 둔 건 AI가 상상으로 메우는 걸 막기 위해서였는데, 그 대가로 기록이 없는 하루는 얇은 글이 된다.

반대로 좋은 점도 그 성격에서 나온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각과 장소가 사진에서 복원되고, 내가 이름을 몰랐던 골목이 제 이름을 찾는다. 메모 한 줄짜리 하루가 사진 덕에 한 편의 글이 된 날도 있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여행기를 읽을 때 이렇게 봐 주시면 정확하다. 사실의 뼈대 — 시간, 장소, 가격, 누구를 만났는지 — 는 메모와 사진에서 왔고, 문장은 AI가 먼저 썼고, 마지막에 읽고 남긴 사람은 나다. 이 노트 글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글은 제 여행 기록과 작업 로그를 바탕으로 초안을 AI와 함께 정리하고, 직접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