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잃어버리고 잘못 탄 것들 — 50만 원 선글라스·잠바 두 번·페리 3시간·기차 잘못 타고 공항, 그리고 눈밭 조난 위기
여행기를 다시 읽어 보면 잘한 일보다 실수가 더 또렷하게 남아 있다. 2023년 유럽 36일, 2024년 튀르키예, 2025년 포르투갈·스페인 — 세 번의 혼자 여행에서 저지른 실수 중에 지금도 습관을 바꾸게 만든 다섯 가지를 골랐다. 사건은 그날 여행기에 적힌 그대로고, 그 뒤에 붙인 것은 그 실수 이후 내가 실제로 달라진 부분이다.
1. 50만 원짜리 선글라스를 기차에 두고 내렸다 (그라나다, 2025)
론다에서 그라나다로 넘어온 다음 날 아침, 9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는데 선글라스가 없었다. 한참 찾았다. 없었다. 전날 기차에서 내릴 때가 저녁이라 “이제 필요 없겠지” 하고 벗었고, 그때 좌석에 그냥 두고 내린 것 같았다. 50만 원이 든 물건이었다.
가슴은 아팠지만 이미 잃어버린 뒤였고, 남은 도시는 세비야 하나뿐이라는 걸로 스스로를 달랬다. 그날은 오히려 알함브라 궁전에서 한국분 동행을 만나 하루가 풍성해졌다. (그날 기록)

바꾼 습관 — “저녁이라 필요 없다"고 몸에서 떼어 놓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이 돈으로 배웠다. 내리기 전에 좌석과 선반을 한 번 더 보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나는 특히 햇빛이 사라지는 시각의 이동에서 선글라스를 주머니가 아니라 가방 안으로 넣는 것으로 바꿨다.
2. 잠바를 두 번 잃어버렸다 (유럽 2023 → 튀르키예 2024)
욜뢰데니즈에서 해적선 투어를 마치고 페티예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잠바가 없었다. 아무리 되짚어도 그 전 숙소인 안탈리아의 호스텔에 두고 온 것 같았다. 문제는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년도 유럽 여행에서도 잠바를 잃어버려서 귀국 후 똑같은 것을 다시 사느라 고생했는데, 같은 실수를 일 년 만에 반복했다.
그날은 호스텔 프론트 직원에게 부탁해 이전 숙소에 연락을 넣었다. 민감한 이야기는 영어보다 현지어로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직원을 통했다. (그날 기록)
바꾼 습관 — 같은 물건을 두 번 잃어버리면 운이 아니라 방식의 문제다. 겉옷은 “입고 있거나, 가방에 들어 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고, 체크아웃 직전 방을 나서기 전에 옷걸이와 고리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을 루틴에 넣었다.
3. 포지타노 한 정거장인데 살레르노까지 갔다 (아말피, 2023)
아말피에서 포지타노행 페리 표를 샀다. 딱 한 정거장. 배가 와서 탔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살레르노 방향이었다. 반대 방향 배였다. 살레르노에서 선원이 왜 안 내리냐고 묻길래 포지타노 간다고 했더니 표를 보고 “너 배 잘못 탔다"고 했다. 다행히 추가 요금은 없었고, 살레르노 선착장에서 다시 기다려 아말피로 돌아온 뒤 포지타노로 갔다. 결국 페리만 3시간을 탔다. 2층에 올라가면 아말피 해안 절경이 보여서 그나마 구경은 잘했다. (그날 기록)

바꾼 습관 — 같은 선착장에서 반대 방향 배가 연달아 선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뒤로 배든 버스든 타기 전에 행선지를 입으로 한 번 묻는다. 표에 적힌 것과 차량에 적힌 것을 맞춰 보는 건 기본이고, 튀르키예에서는 페티예에서 욜뢰데니즈로 가는 버스가 전부 같은 모양이라 앞유리 표지판을 보고서야 올라탔다. 잘못 탔을 때는 당황해서 뛰어내리지 않는 것도 배웠다 — 그날처럼 그냥 앉아 있다가 끝에서 돌아오는 게 나을 때가 많다.
4. 공항행 기차에서 졸다가 피우미치노 마을에 내렸다 (로마, 2023)
유럽 여행 마지막 날. 테르미니역에서 공항행 기차를 탔다. 직행은 18유로, 갈아타는 건 8유로라 당연히 8유로를 골랐다. 그런데 환승편 타는 곳이 24번 플랫폼에서 안쪽으로 250m를 더 들어가야 나온다는 걸 몰랐고, 겨우 탄 기차에서 깜빡 졸았다. 30분 뒤 눈을 떠 보니 여행 가방 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바로 내린 곳이 피우미치노 — 공항이 아니라 처음 들어 보는 마을이었다. 다시 기차를 타면 2시간, 택시는 안 잡혔다.
현지 분들에게 “Airport"라고 크게 말했더니 이탈리아어로 답하며 손짓으로 버스를 가리켰다. 따라가 탄 버스 기사님이 티켓 없이 그냥 태워 주셨고, 3번 버스에서 8번으로 갈아타고 공항에 닿았다. 그분 아니었으면 비행기를 놓쳤을 것이다. (그날 기록)
바꾼 습관 — 공항 가는 날은 절대 졸지 않는다는 단순한 규칙이 생겼다. 더 실제적인 변화는, 싼 표를 고르면 그만큼 사전 조사를 한다는 것이다. 8유로짜리 환승 기차는 플랫폼 위치부터 내릴 역 이름까지 미리 찾아 놓아야 값을 한다. 그 뒤 여행에서는 공항 이동편을 전날 미리 찾아 두는 쪽으로 바뀌었다.
5. 편도표만 사고 눈밭으로 내려가다 돌아섰다 (체르마트, 2023)
고르너그랏트 산악열차 매표소에서 “걸어서 내려올 생각"으로 편도(One Way)만 샀다. 5월 25일이었다. 정상에서 마테호른을 실컷 보고 하산을 시작했는데, 5월인데도 눈이 안 녹아 발이 쑥쑥 빠졌다. 20분쯤 내려가니 길도 안 보이고 사람도 없었다. 조난당할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왔다. 역무원에게 말하니 모바일로 결제해 줘서 내려오는 표를 다시 샀다. 신발은 다 젖어서 숙소에서 드라이기로 말렸다. (그날 기록)

바꾼 습관 — 산은 계절이 아니라 그날의 눈 상태로 판단한다. 5월의 알프스는 여름이 아니었다. 그 뒤로는 걸어 내려올 계획이 있어도 돌아올 표를 먼저 확보하고, 정상에서 실제 길 상태를 보고 포기 여부를 정한다. 20분 만에 돌아선 결정은 그날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다섯 번의 실수가 남긴 한 가지
다섯 건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있다. 전부 “괜찮겠지"라고 판단한 순간에 일어났다. 저녁이니 선글라스는 필요 없겠지, 한 정거장이니 아무 배나 맞겠지, 싼 표니 대충 타면 되겠지, 5월이니 걸어 내려올 수 있겠지. 여행이 익숙해질수록 확인을 건너뛰게 되고, 그 자리에 실수가 들어온다.
그래서 내 습관은 거창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이동이 시작되는 순간마다 딱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으로 수렴했다. 방향, 역 이름, 돌아올 표, 그리고 내 어깨와 좌석 위에 남은 물건. 그 한 번이 50만 원과 3시간과 비행기 한 편을 지켜 준다는 걸, 각각 한 번씩 치르고 나서야 알았다.
이 글은 제 여행 기록과 작업 로그를 바탕으로 초안을 AI와 함께 정리하고, 직접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