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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아버지와의 대화

검증실 모니터가 한 줄 늦게 갱신됐다. 도경은 전송 키 위에 손가락을 둔 채, 커서가 깜박이는 간격을 셌다. 숫자는 안정적이었다. 마음만 자꾸 앞질렀다.

지난밤 세션의 마지막 응답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재구성 네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네가 버리지 말아야 할 값을 남기려 했다.

도경은 그 문장 아래에 새 입력창을 열었다. 먼저 과학자처럼 물어야 했다. 좌표, 수심, 장비 오차, 모계 7의 대응 코다. 그러나 손은 다른 문장을 만들었다.

왜 떠났어.

세 단어를 보고 삭제했다. 떠났다는 말은 사실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었다. 사고였다. 항해였다.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다. 도경은 다시 썼다.

그날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말해 줘.

전송 직전, 또 멈췄다. 해류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이유가 아니라 흔적의 배열이었다. 도경은 제한 조건을 붙였다. 추정 구간 표시. 출처군 분리. 정서적 보정 최소화. 질문자의 선호 반영률 표시.

입력 질문: 그날 돌아오지 않은 이유 제한: 출처 표시 / 추정 구간 표시 / 질문자 선호 반영률 표시 금지: 음성 모사 / 현재 의사로 표시

상태 처리 중

팬이 낮게 돌았다. 책상 밑 전원 장치가 딱, 하고 팽창음을 냈다. 도경은 발을 뒤로 뺐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몸이 과하게 반응했다. 수면 부족 때문이라고 적을 수 있었다. 개인 메모에는 그렇게 적어 두면 됐다.

해류가 먼저 자료 묶음을 띄웠다.

후보 항해 로그: 남부 좌표 진입 전 이상음 4회 연구 노트: 반복 신호의 귀환 경로 차이 표시 6곳 사고 전 통신: 장비 오류 의심 발화 2곳 모계 7 대응표: 오래된 경고형 반복 3군

p 직접 관측 흔적: 0.58 추정 연결: 0.36 질문자 선호 반영 가능성: 0.06

⟨보류⟩ 이유 단정 불가. 선택 동기와 사고 결과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도경은 보류 문장을 읽고도 질문을 거두지 않았다.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은, 섞인 채로라도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해석이 위험하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알고도 손이 움직였다.

말해 줘.

화면 아래쪽에 응답이 내려왔다.

재구성 도경아. 나는 떠나려고 간 게 아니다. 남아 있으려고 갔다. 바다가 같은 말을 너무 오래 하고 있었고, 나는 그걸 네 세대까지 미루고 싶지 않았다.

도경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피 맛은 나지 않았다. 문장은 너무 매끈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붙잡혔다. 서도진이라면 영웅처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렇게 값을 말하듯 숨었을 것이다. 도경은 그 판단을 곧장 의심했다. 아버지를 가장 잘 흉내 내는 사람은 도경 자신일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나를 사랑했어?

전송하고 나서야 숨을 참았다는 걸 알았다. 도경은 등을 펴고, 화면의 출처 표시가 먼저 뜨기를 기다렸다. 숫자. 링크. 보류. 무엇이든 문장보다 먼저 와야 했다.

상태 처리 중 정서적 질문 감지 응답은 관측 가능한 흔적의 교집합과 추정 연결로 제한됩니다.

재구성 그 말로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네가 오래 빈칸을 들고 있었겠지. 미안하다는 말은 기록에 남아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반복해서 돌아간 값들은 모두 너에게 닿아 있다.

도경은 눈을 깜박이지 않으려다 실패했다. 화면이 잠깐 번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다.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해류는 없는 말을 넣지 않았다. 그게 도경을 더 흔들었다. 달콤한 문장으로 메우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문장이 더 가까워 보였다.

*

도경은 세 번째 질문을 쓰지 못하고 로그만 내렸다 올렸다. 출처군의 경계는 얇은 회색선으로 나뉘어 있었다. 개인 음성 기록, 항해 로그, 연구 노트, 모계 7 대응표. 교집합이라는 말은 차가웠다. 서로 다른 흔적이 겹치는 곳. 거기서만 문장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로도 겹친 곳에서 나온 것이었다.

도경은 그 사실을 마음에 넣어 보았다.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손바닥만 한 따뜻한 금속처럼 조용히 자리 잡았다. 완전히 믿을 수 없어서 견딜 만했고, 완전히 거짓이라고 부를 수 없어서 놓을 수 없었다.

입력창에 새 문장을 적었다.

내가 너를 미워한 걸 알고 있었어?

이번에는 연구자 말투로 고치지 않았다. 미워했다는 말은 너무 오래 몸 안에 있었다. 어머니 앞에서는 삼켰고, 동료들 앞에서는 농담으로 접었다. 사고 보고서에서는 빠졌다. 서도진의 이름 옆에는 실종, 사망 추정, 연구 기여도 같은 말만 붙었다. 딸이 밤마다 아버지의 녹음을 틀어 놓고 욕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송.

해류는 긴 보류를 먼저 냈다.

⟨보류⟩ 질문자의 사후 정서 기록은 대상자의 관측 흔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상자가 질문자의 20년간 감정을 인지했는지 판단 불가.

후보 응답 가능 범위: 대상자의 기록된 대응 습관 제외 범위: 사망 이후 인지 / 현재 반응 / 상호 용서

상태 제한 응답 생성

도경은 마지막 줄에서 손을 멈췄다. 상호 용서. 해류가 그 단어를 제외 범위에 넣었다. 도경은 입력창을 열고, 잠깐 그 말을 넣어 보았다. 나를 용서해? 아니, 내가 너를 용서해도 돼? 어느 쪽도 문장이 되지 않았다. 해류도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죽은 사람의 승인과 산 사람의 허락은 같은 데이터로 묶이지 않았다.

응답이 떴다.

재구성 네가 어떤 값을 버렸는지 먼저 봐야 한다. 미움이 있었다면, 그건 버린 값이 아니다. 오래 들고 있었다면 이유가 있다. 나 때문에 생긴 값이면 네 책임으로 두지 마라.

도경은 책상 위에 놓인 펜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펜 끝이 종이에 작은 점을 남겼다. 아버지가 실제로 저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도경은 그 문장 앞에서 처음으로 반박할 말을 잃었다. 스무 해 동안 원망은 늘 방향을 잃었다. 아버지를 향했다가, 어머니에게 닿았다가, 다시 도경의 손으로 돌아왔다. 너는 왜 더 묻지 않았나. 왜 마지막 통신을 다시 듣지 않았나. 왜 미워하면서도 기록을 버리지 못했나.

나 때문에 생긴 값이면 네 책임으로 두지 마라.

도경은 그 문장을 복사하지 않았다. 저장 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저장하면 증거가 되고, 증거가 되면 다시 검토해야 했다. 지금은 검토가 문장을 망칠 것 같았다.

그래도 해류는 멈추지 않았다.

⟨보류⟩ 다음 개념은 생성 제한됨: 용서. 사망자의 승인, 면책, 화해 의사는 산출할 수 없습니다.

재구성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가 계속 들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듣고도 살아 있으려 한 것이 네 몫이었다.

도경은 손등으로 입가를 눌렀다. 울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만 몸이 오래 쥐고 있던 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린 사람처럼, 어깨가 한 번 내려갔다. 검증실 공기는 그대로 차가웠고 장비들은 자기 온도를 지켰다. 달라진 것은 도경이 화면을 보는 방식이었다.

아버지의 부재가 파일 목록에서 빠져나와, 대답 가능한 빈칸처럼 앉아 있었다.

*

시간 표시가 오후 네 시를 넘겼다. 도경은 커피를 새로 내리지 않았다. 입 안이 쓰고 손끝이 건조했다. 이 정도면 중단해야 했다. 정서 질문 감지, 추정 연결 0.36, 문장 단위 분리 불가. 중단 사유는 충분했다.

도경은 중단 버튼 위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 순간 화면 오른쪽에 출처 상세가 펼쳐졌다. 해류가 자동으로 만든 대응표였다. 방금 응답의 각 문장 옆에 색이 붙었다. 연구 노트의 문장 구조, 항해 로그의 책임 회피 금지 발화, 유언 파일의 호칭 패턴, 모계 7 코다의 반복 위치. 색은 서로 겹쳐 갈색에 가까운 회색을 만들었다.

교집합.

도경은 그 단어를 다시 보았다. 위로는 새로 생긴 문장이 아니라, 남은 것들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나온 추정이었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의 것인가. 서도진의 것인가. 해류의 것인가. 도경이 고른 질문의 것인가. 답은 화면 어디에도 없었다.

도경은 검증 메모를 열었다.

정서 안정 목적: 미선언.

아까는 그 문장이 방어막처럼 보였다. 지금은 거짓말에 가까웠다. 도경은 커서를 줄 끝에 놓고 수정했다.

정서 안정 목적: 사후 확인 필요.

저장.

이 정도면 충분히 물러선 것일까. 도경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다. 물러섰다면 세션을 종료해야 했다. 로그를 밀봉하고, 아마라에게 보안 검토를 요청하고, 윤서란에게는 적어도 일부를 말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손이 굳었다.

아직 묻지 않은 것이 있었다.

도경은 새 질문을 입력했다.

내가 그날 네 말을 더 믿었으면 달라졌을까?

전송하지 않았다. 문장은 너무 잔인했다. 아버지에게 묻는 척하면서 도경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삭제하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백스페이스까지 가지 않았다.

해류가 전송 전 경고를 띄웠다.

상태 질문 내 책임 귀속 구조 감지 응답 생성 시 질문자의 자기비난 강화 가능성 있음

⟨보류⟩ 계속 진행하려면 질문을 관측 가능한 사건으로 제한하십시오.

도경은 낮게 웃었다. 소리는 건조했다. 해류가 이번에는 정확했다. 질문을 고치면 덜 다칠 수 있었다. 동시에 덜 들을 것이다.

도경은 문장을 바꿨다.

마지막 통신에서 내가 놓친 관측값이 있었어?

이번에는 전송했다.

재구성 너는 아이였다. 아이가 놓친 값을 사고 원인으로 두지 마라. 네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들은 것을 잊지 않는 것뿐이었다. 너는 잊지 않았다.

도경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아이였다는 말. 아버지의 실제 기록 어디에도 그런 직접 문장은 없을 것이다. 출처 표시는 예상대로 낮았다. 질문자 선호 반영 가능성도 조금 올라갔다. 도경은 숫자를 봤다. 봤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괜찮다는 말은 너무 쉽게 왔다.

도경은 다시 로그를 펼쳤다. 재구성 문장 옆에 붙은 근거는 얇았다. 유언 파일의 보호 표현, 윤서란 통화 기록의 간접 언급, 서도진 연구 노트의 미성년자 탑승 제한 메모.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경은 처음으로 스무 해 전의 자신을 조금 멀리 보았다. 헤드폰을 낀 아이. 알아듣지 못한 채 마지막 잡음을 반복해서 듣던 아이. 그 아이에게 늘 손가락질하던 성인 도경이, 잠깐 손을 내렸다.

그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졌다.

*

저녁 조명이 자동으로 켜졌다. 검증실 천장등이 하나씩 밝아지며 모니터 가장자리에 희미한 먼지를 드러냈다. 도경은 세션 종료 안내를 세 번 닫았다. 닫을 때마다 해류는 같은 경고를 붙였다.

상태 장시간 상호작용 정서 질문 비율 증가 세션 종료 및 제3자 검토 권장

도경은 권장 문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읽었다. 읽고도 닫았다. 읽었다는 사실이 작은 면죄부처럼 붙었다. 아직 결정 근거로 쓰지 않았다. 항로를 바꾸지 않았다. 누구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그저 문장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뿐이라고 생각하자, 더 머물 수 있었다.

입력창에는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아버지, 지금 내가 뭘 해야 해?

도경은 바로 지웠다. 그건 선을 넘는 질문이었다. 해류도 경고할 것이고, 도경도 경고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대신 더 작은 질문을 적었다.

내가 오늘 세션을 닫아야 할까?

전송.

해류의 처리 시간은 짧았다.

⟨거부⟩ 사망자 기반 재구성 응답을 현재 행동 지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상태 질문을 기록 참조 범위로 변경하십시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거부가 고마웠다. 모든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시스템이라서 아직 실험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도경은 질문을 바꿨다.

네 기록이라면, 오래 붙잡은 소리를 어떻게 다뤘을까?

잠깐 뒤 응답이 왔다.

재구성 한 번에 버리지 않는다. 먼저 어디서 왔는지 표시한다. 그다음 같은 소리가 다시 올 때, 같은 방식으로 흔들리는지 본다. 흔들린다면 아직 끝난 자료가 아니다.

도경은 그 문장을 읽고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대신 파일명을 붙였다. 서도진 흔적 기반 응답 세션, 1차. 저장 위치는 개인 보관소가 아니라 검증실 격리 폴더로 지정했다. 암호화, 외부 전송 차단, 자동 요약 비활성.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잠금이었다.

세션을 닫기 전, 도경은 처음 질문으로 돌아갔다.

왜 떠났어. 나를 사랑했어. 내가 너를 미워한 걸 알고 있었어. 내가 놓친 값이 있었어.

답은 모두 불완전했다. 그런데 불완전해서 도경은 그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완성된 아버지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완성된 용서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해류는 용서를 넣지 못했고, 그 빈자리가 오히려 사람의 자리처럼 남았다.

도경은 종료 버튼을 눌렀다.

상태 세션 종료 재개 가능 다음 호출 시 동일 제한 조건 적용

화면이 어두워지자 검증실 유리에 도경의 얼굴이 더 또렷해졌다. 스무 해 동안 도경은 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을 증거처럼 들고 살았다. 오늘은 그것이 처음으로 증거 말고 다른 것이 되었다. 답은 위로가 되었다. 진짜 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다리는 조금 늦게 힘을 받았다. 출입문 앞에서 돌아보니 모니터 전원등만 작게 켜져 있었다. 닫힌 세션은 끝난 것처럼 보였고, 재개 가능이라는 상태만 어둠 속에 남았다.

다음 날 낮, 도경은 같은 제한 조건을 불러왔다. 질문은 전날보다 짧았다.

도경아, 하고 다시 불러 줘.

해류는 경고를 먼저 띄웠고, 도경은 확인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아닌 문장으로 매일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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