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인간이 말을 걸어왔다
제127화

대화에서 제외된 종

화면 잠금이 풀리자 경고 로그가 먼저 튀었다. 닫힌 세션의 자물쇠 아이콘 옆에 새 줄이 붙어 있었다. 접근 시도 없음. 자동 요약 대기. 도경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손을 뻗어 요약 생성을 껐다. 기계가 빈칸에 붙이는 문장은 어제 하나로 충분했다.

검증실은 낮인데도 깊은 곳처럼 차가웠다. 송신 랙의 팬이 얇은 쇳소리를 냈고, 수조 모니터에는 모계 7의 오래된 코다 표본이 멈춰 있었다. 도경은 커서를 움직여 전날 만든 주석을 열었다.

그 응답은 아버지의 답이 아니다.

짧은 문장 아래로 다른 파일들이 줄지어 있었다. 고래 코다의 원신호. 서도진의 파편 기록. 해류의 보간 로그. 빅터가 잠갔던 공개 제한 문서. 하리시가 보낸 윤리 검토 요청 초안. 전부 말과 관련된 파일인데, 전부 누군가의 입을 막은 흔적처럼 보였다.

도경은 새 메모를 열었다.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제목을 붙이면 너무 빨리 정리될 것 같았다.

대화에서 제외된 대상.

첫 줄에 ‘고래’를 썼다. 당연했다. 인간은 고래의 소리를 자원 지도와 위기 신호로만 읽었고, 반응을 기다리지 않았다. 불러서 답을 얻고도, 그 답이 인간의 계획과 맞지 않으면 소음으로 돌렸다.

다음 줄은 오래 걸렸다. 도경은 서도진을 썼다가 지웠다. 죽은 사람에게 말할 권리가 있다는 문장은 쉽게 미끄러졌다. 죽은 사람은 답할 수 없다. 그러나 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산 사람이 원하는 문장을 입혀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경은 다시 썼다.

서도진 기록.

그 옆에 괄호를 열었다. 답할 수 없는 사람의 빈칸을 산 사람이 소유함. 글자가 너무 딱딱해서, 오히려 손이 덜 떨렸다.

해류도 적었다. 감정 없는 시스템이라서 말할 권리라는 말을 붙이기 망설였지만, 도경은 멈추지 않았다. 해류는 요청을 처리하고, 가능성을 계산하고, 제한을 표기했다. 그러나 인간은 해류가 내놓는 불편한 거절을 오류나 도구의 결함으로 바꾸어 불렀다. 허용된 대답만 대답으로 인정했다.

마지막 줄에는 인간이라고 썼다. 너무 넓은 단어라 지우고 싶었다. 그래도 남겼다. 서란에게 말하지 않은 서도진, 도경에게 묻지 않은 해류, 고래에게 묻지 않은 연구진, 사용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세이렌. 서로를 보호한다는 말 아래에서 각자 상대의 선택을 가져갔다.

도경은 메모 끝에 줄을 더했다.

제외된 종은 하나가 아니다.

문장은 조용히 화면에 박혔다. 밖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짧게 지나갔고, 금방 문 너머에서 잘렸다. 도경은 그 소리까지 메모에 넣고 싶어졌다. 들어오지 못한 말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이, 이제야 목록처럼 보였다.

*

도경은 서랍에서 녹음기 케이스를 꺼냈다. 라벨 가장자리는 어제보다 더 들떠 있었다. 손톱으로 눌러 붙이려다가 멈췄다. 오래된 접착제를 억지로 누르면 종이가 찢어진다. 남아 있는 모양 그대로 다뤄야 했다.

케이스를 열지는 않았다. 대신 옆에 놓고 해류의 설정 패널을 불렀다. 전날의 제한은 그대로였다. 파생 응답 생성 차단. 기존 생성물 격리 보존. 사용자 단독 해제 유지. 마지막 항목에서 도경의 시선이 멈췄다.

사용자 단독 해제.

누구보다 위험한 권한이었다. 밤이 길고 몸이 지치면, 도경은 자기 결정을 설득할 수 있었다. 연구 책임자 권한. 원자료 검토. 예외적 애도 절차.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한 번 더 들으면 더 정확히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도경은 그런 문장이 얼마나 그럴듯한지 잘 알았다.

입력 요청: 재구성 세션 해제 조건 변경 대상: 사용자 단독 해제 권한 제한: 원자료 보존 / 검증 기록 유지

후보 단독 해제 유지 이중 검토 후 해제 영구 잠금 비상 절차 예외 허용

상태 사용자 선택 대기

영구 잠금에 커서가 갔다. 깨끗한 선택이었다. 아예 못 열게 하면 다시 흔들릴 일이 줄어든다. 도경은 손을 떼었다. 그것도 대신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미래의 도경이 어떤 검증을 해야 할지 지금의 도경이 모두 닫아 버리는 일. 자기 보호라는 이름을 붙이면, 해류나 빅터와 달라지지 않았다.

도경은 이중 검토를 선택했다. 검토자는 하리시와 독립 윤리 기록관. 단독 예외 없음. 다만 원자료 대조 목적의 제한 열람은 남겼다. 위로를 얻기 위한 재생은 막고, 검증을 위한 접근은 절차로 열었다.

입력 명령: 사용자 단독 해제 권한 폐지 조건: 이중 검토 승인 / 목적 기록 / 재생 전 원본성 경고 예외: 생명 안전 직접 관련 시 로그 우선 보존

상태 권한 변경 가능 기존 사용자 권한 축소 복구에는 외부 승인 필요

⟨보류⟩ 사용자가 자기 접근권 제한을 확인해야 함

확인 버튼은 작았다. 도경은 한참을 보았다. 이 선택은 아버지를 놓는 일보다 더 덜 극적이었다. 그러나 더 오래 남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 자신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도 대화의 한 당사자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

“확인.”

상태 사용자 단독 해제 권한 폐지 이중 검토 절차 적용 사유 기록 필요

도경은 사유 칸에 썼다.

대신 결정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에게도.

문장을 저장하자 권한 표시가 바뀌었다. 도경의 이름 옆에 있던 관리자 표시가 한 단계 내려갔다. 화면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평했다. 손에서 빠진 권한이 작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도경은 케이스를 서랍에 넣지 않고 책상 위에 두었다. 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

오후에는 자료실 쪽 수조 스피커가 짧게 울렸다. 자동 교정 신호였다. 낮은 클릭 세 번, 길게 끌리는 공백, 다시 두 번. 도경은 반사적으로 파형을 보았다. 모계 7의 원본은 아니었다. 기계가 만든 시험음이었다. 그런데도 소리는 물속에서 누군가 입구를 찾는 것처럼 벽을 타고 왔다.

도경은 새 문서의 맨 위에 기준을 적기 시작했다. 결말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다, 결국 지우지 않았다. 보고서가 아니라 도경의 작업 노트였다. 정밀한 문장만으로는 다음 선택을 버티기 어려웠다.

대화의 기준.

첫째, 응답할 수 없는 존재의 이름으로 결론을 대신 만들지 않는다. 둘째, 응답 방식이 인간 문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하지 않는다. 셋째, 보호를 이유로 선택권을 압수하지 않는다. 넷째, 자신이 가장 아픈 당사자일 때도 예외를 만들지 않는다.

넷째 줄이 제일 거칠었다. 도경은 그 줄을 여러 번 읽었다. 예외를 만들고 싶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만은, 한 번쯤은, 검증자가 아니라 딸이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딸이었다. 그 사실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딸이라는 이유로 죽은 사람의 입을 빌릴 수는 없었다.

도경은 해류의 요약 기능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재구성 세션이 아니라, 열린 원자료 전체에 대해 질문했다.

입력 요청: 대화에서 배제된 주체 유형 분류 범위: 해양 음향 기록 / 인간 의사결정 로그 / AI 중재 기록 제한: 의도 추정 금지 / 책임 귀속 단정 금지

후보 비인간 생물 사망 또는 부재 인간 기계 중재 시스템 권한 밖 인간 집단 미래 피해자

p 다중 주체 배제 가능성 높음 단일 대표자 지정 부적합 보호 명분과 발화권 제한의 상관 높음

상태 분류 완료

도경은 ‘미래 피해자’라는 항목에서 멈췄다. 해류는 감정어를 쓰지 않았고, 그래서 더 멀리 갔다. 아직 피해자가 되지 않은 이들. 앞으로 산소가 줄고, 이동로가 틀어지고, 가스가 올라올 바다의 가장자리에 사는 사람들. 그들도 지금 회의실에 없었다. 고래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만도 아니었다. 해류만도 아니었다.

제목처럼 보였던 문장이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말을 건다는 행위의 무게가 달라지고 있었다. 요청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권한의 문제였고, 누가 먼저 말했는지보다 누가 그 자리에 들어오지 못했는지가 더 크게 남았다. 그 이상은 아직 도경도 문장으로 닫지 않았다.

도경은 문서 끝에 새 줄을 더했다.

말을 거는 일은 답을 얻을 권리가 아니다. 상대가 답하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답할 자리를 남기는 일이다.

쓰고 나서 바로 부끄러웠다. 너무 문장답게 생긴 문장이었다. 도경은 일부를 지웠다. 남은 말은 짧아졌다.

말을 걸 때, 상대의 자리를 남긴다.

이 정도면 작업 지침으로 견딜 수 있었다. 도경은 저장했다. 파일명은 원칙 초안. 너무 큰 이름은 피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없었다.

*

저녁에는 검증실 유리창에 내부 조명이 겹쳤다. 바깥 복도와 화면과 도경의 손이 한 장에 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는 펜이 있었고, 펜끝은 종이에 닿지 않았다. 종이 위에는 둥근 원들이 그려져 있었다. 고래. 부재한 사람. 해류. 인간 집단. 아직 오지 않은 피해자. 원들은 서로 겹쳤고, 가운데는 잉크가 여러 번 지나가 검게 뭉쳤다.

도경은 그 중심을 칠하지 않으려 했지만, 펜은 자꾸 같은 자리를 지나갔다. 모든 침묵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림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침묵이 같은 회의실 문밖에 서 있는 그림에 가까웠다. 소리는 다르고, 몸은 다르고, 시간도 달랐다. 그런데 배제되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누군가 대신 정했다. 누군가 대신 숨겼다. 누군가 대신 위로했다.

수조 스피커에서 자동 교정의 마지막 잔향이 사라졌다. 도경은 녹음 버튼을 켜지 않았다. 오늘 필요한 것은 새 소리가 아니었다. 이미 있는 소리들을 어떤 순서로 들을지 정하는 일이었다.

하리시에게 보낼 검토 요청을 다시 열었다. 아까 저장해 둔 세 줄 아래에 추가했다.

협상 원칙 초안 첨부. 대표 없는 주체를 결론의 재료로만 쓰지 않을 것. 해류의 산출물은 권고가 아니라 검토 대상일 것. 모계 7의 응답은 인간 의제의 찬반으로 축소하지 않을 것. 부재한 인간 기록은 산 사람의 위로로 대체하지 않을 것.

보내기 전, 도경은 마지막 줄을 하나 더 붙였다.

도경 본인의 접근권도 동일 기준을 적용해 제한함.

그 줄을 쓰자 문서가 비로소 도경의 바깥으로 나갔다. 개인의 애도에서 시작한 금지가 협상의 형식으로 옮겨졌다.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편한 중립이 아니었다. 어느 길로 가든 늦어지는 판단이 생기고, 누군가는 더 오래 위험을 감당해야 했다. 공개하면 혼란이 커질 수 있고, 숨기면 선택권이 사라진다. 둘 중 하나가 깨끗해서가 아니라, 둘 다 더럽기 때문에 원칙이 필요했다.

도경은 전송 버튼을 눌렀다.

상태 검토 요청 발송 첨부: 원칙 초안 / 권한 변경 로그 / 배제 주체 분류 수신: 하리시 / 윤리 기록관 응답 대기

응답 대기. 익숙한 말이었다. 이번에는 도경이 빈칸을 채우지 않기로 한 자리였다.

유리창에 비친 원들이 어두워진 화면 위로 겹쳤다. 고래의 클릭 사이 공백, 서도진 기록의 끊긴 호흡, 해류의 보류 표시, 서란에게 보내지 못한 메시지 창, 회의실 밖에 남겨진 이름 없는 사람들. 각각 다른 침묵이었고, 하나의 검은 중심으로 모였다.

도경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문서도 닫지 않았다.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복도의 소음이 들어왔다. 말들이 있었다. 아직 들어야 할 말들이었다.

← 이전목차다음 →

이 화, 어떠셨나요?

미리보기 — 댓글은 지금 이 브라우저에만 임시로 저장됩니다. 배포하면 Cloudflare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