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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부른 사람

문 손잡이가 덜 잠긴 채 밀렸다. 도경은 삐걱거리는 금속음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옛 동료의 거처는 연구동 뒤편 임시 숙소였다. 벽에는 소금기가 말라 흰 테가 남았고, 바닥의 케이블은 누군가 급히 밀어 둔 모양으로 휘어 있었다.

“늦었군.”

옛 동료는 침대가 아니라 작업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름표가 떼어진 방호복 위에 낡은 담요를 걸쳤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얇은 호스가 떨렸다. 도경은 문을 닫고 녹음기를 꺼내지 않았다.

“기록으로 남길 수 있습니까.”

“남길 수 있는 건 이미 다 남겼어. 오늘은 네가 들으면 된다.”

“증언은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널 불렀지. 믿으라고 부른 게 아니야.”

도경은 접이식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의 모래 알갱이를 긁었다. 옛 동료는 그 소리에 눈을 찡그렸다가, 책상 위의 투명 케이스를 밀어 주었다. 안에는 서도진의 필기 사본과 오래된 추천서 초안, 당시 연구소 출입 로그가 들어 있었다.

“네가 처음 우리 쪽에 들어왔을 때, 넌 계속 같은 질문을 했어. 누가 나를 여기로 보냈나.”

도경은 케이스를 열지 않았다.

“그 질문을 오늘 끝내자는 겁니까.”

“끝내야 네가 다음 걸 할 수 있다. 네 아버지 이야기는 너무 오래 네 뒤에 붙어 있었어.”

벽걸이 단말이 낮은 경고음을 냈다. 옛 동료는 보지도 않고 전원을 껐다. 화면이 어두워지자 방 안의 먼지가 더 선명해졌다. 도경은 손가락을 무릎 위에 놓고, 천천히 폈다. 아버지의 이름이 나온 뒤마다 굳던 습관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말하세요.”

옛 동료는 한동안 호스의 물방울만 바라보았다. 그 짧은 지연이 변명처럼 들릴까 봐 도경은 먼저 재촉하지 않았다.

‘왜 이제야.’ 도경이 묻기 전에 옛 동료가 먼저 답했다. 사고 조사 때 자기 추천이 서도진 유족을 팀에 끌어들였다는 말이 나오면, 검증 전체가 편향으로 몰릴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참고 자료에 묻고 입을 다물었다고. 지금 꺼내는 건, 도경이 아버지의 부름을 스스로 짊어지려는 걸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없는 부름을.

“서도진은 너를 지목하지 않았다.”

*

도경은 케이스의 잠금쇠를 눌렀다. 딸깍, 작은 소리가 났다. 옛 동료는 말의 순서를 고르듯 종이 세 장을 꺼냈다.

“이건 네 아버지가 남긴 분석 절차야. 개인 유언이 아니고, 특정 수신자를 정한 편지도 아니었어. 공개 보관소에 넣은 방식 설명서였지.”

도경은 첫 장을 읽었다. 표본 선택 기준, 잡음 제거 방식, 인간 명령으로 변환하지 말 것. 글씨는 익숙했다. 너무 익숙해서 첫 줄을 보는 순간 어머니의 서랍 냄새까지 따라왔다. 도경은 종이 모서리를 손톱으로 누르다가 멈췄다.

“그럼 추천서는요.”

옛 동료가 두 번째 장을 밀었다. 수신자는 당시 검증팀장이었다. 작성자는 옛 동료 본인이었다. 서도진의 이름은 참고 자료 목록에만 있었다.

“내 판단이었다. 너는 이미 수중음향 검증에서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고, 세이렌 쪽 자료를 의심할 배짱도 있었어. 나는 그게 필요했다.”

“아버지의 방식과 닮아서?”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닮았다는 건 호출이 아니야.”

도경은 눈을 들었다. 옛 동료의 얼굴에는 오래 버틴 사람의 피로가 있었다. 책임을 피하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원망을 걸 곳이 하나 줄었다.

“당신은 예전에 말했습니다. 내가 오게 될 줄 알았다고.”

“그건 예측이 아니라 기대였어. 틀릴 수도 있는.”

“그 말을 왜 그때 그렇게 했습니까.”

“내가 비겁했으니까. 네가 서도진의 딸이면 더 쉽게 버틸 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네 힘으로 버틴 걸, 나는 한동안 혈통의 문제처럼 다뤘어.”

도경은 추천서 초안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당시 후보 명단이 있었다. 도경의 이름은 가운데가 아니라 끝쪽에 적혀 있었다. 옆에는 짧은 주석이 붙었다. 현장 잡음 판독 강함. 지휘 명령 수용 낮음. 도경은 그 두 줄을 오래 보았다.

“아버지가 길을 깐 게 아니군요.”

“아니다.”

“해류 접근 권한도요.”

“네가 따냈다. 불쾌할 정도로 끈질기게.”

옛 동료의 입가가 잠깐 움직였다. 웃음까지 가지 못했다.

“서도진이 남긴 건 방법이야. 묻는 법. 멈추는 법. 인간 문장으로 덮지 않는 법. 그걸 네가 들고 온 건 네 선택이지, 그의 설계가 아니다.”

도경은 세 번째 장을 펼쳤다. 출입 로그였다. 도경이 처음 연구동에 들어온 날, 서도진의 파일 열람 기록은 없었다. 도경이 먼저 현장 보고서를 냈고, 그 뒤에야 옛 동료가 서도진의 공개 기록을 연결했다. 시간순은 단순했다. 단순해서 오래 왜곡하기 좋았다.

“당신은 나를 속였습니다.”

“일부는. 전부는 아니야.”

“그 차이가 당신에게는 중요합니까.”

“지금은 네게 중요해야 한다.”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 위의 글씨가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도경을 밀어 넣지 않았다. 옛 동료는 도경을 이용했지만, 도경이 걸어온 길을 만들지는 않았다. 체화는 도경의 일이었다. 밤마다 같은 파일을 다시 듣고, 틀린 번역을 지우고, 세이렌의 매끈한 결론을 거절한 것은 누구의 예언도 아니었다.

“왜 이제 말합니까.”

“네가 더 이상 아버지를 핑계로 붙잡을 필요도, 아버지 탓으로만 밀어낼 필요도 없어 보여서.”

도경은 종이를 케이스에 넣었다. 잠금쇠는 닫지 않았다.

“그 판단도 늦었습니다.”

“안다.”

그 말 뒤에 사과가 붙지 않았다. 도경은 그것이 차라리 나았다. 사과가 붙으면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 하나의 절차가 생겼을 것이다.

*

복도는 비어 있었다. 도경은 연구동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단참에 섰다. 아래층 기계실에서 펌프 진동이 올라왔다. 발바닥으로 먼저 느껴지고, 늦게 귀에 닿는 소리였다.

케이스 안의 종이가 팔에 닿았다. 얇은 플라스틱 너머로 모서리가 느껴졌다. 그 안에는 생각보다 작은 답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도경을 부르지 않았다. 미래를 설계하지도 않았다. 공개된 기록을 남겼고, 사라졌다. 묻지 않은 채, 가족에게도 동료에게도, 바다에게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도경은 난간에 팔꿈치를 올렸다. 금속은 차가웠고, 녹슨 부분은 손목 안쪽을 거칠게 긁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모든 시작점이어야 했다. 그래야 미워할 모양이 생겼다. 그래야 따라온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다. 선택된 사람이라면 실패도 상속이고, 상처도 증거가 됐다.

그 문장이 빠지자 남은 것은 더 작고 무거웠다.

도경이 지원서를 냈다. 도경이 첫 현장선을 탔다. 도경이 해류의 번역을 거절했고, 도경이 고래의 경고를 경고로 남겼다. 누가 등 뒤에서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있었다면 부재였다. 대답하지 않고 떠난 사람의 빈자리. 그 빈자리 때문에 더 오래 들여다본 것은 맞았다. 그러나 빈자리가 손을 잡아 끈 것은 아니었다.

도경은 주머니에서 어머니가 남긴 작은 천 조각을 꺼냈다. 병실 커튼을 줄여 만든 것이었다. 낡은 가장자리가 손끝에서 풀렸다.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끝까지 깔끔하게 만들지 않았다. 원망하는 날에는 원망했고, 찾는 날에는 낡은 녹음을 들었다. 도경은 그 태도를 비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하나만 고르는 쪽이 더 쉬운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죄는 길을 깐 것이 아니었다. 묻지 않고 사라진 것. 남은 사람들이 그 부재를 각자 다른 이름으로 메우게 둔 것. 도경은 그 죄를 작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다른 죄를 덧씌우지도 않았다.

단말이 진동했다. 해류의 검증 요청이었다. 침묵 임계 관련 새 표본, 지연 가능성 계산 필요. 도경은 화면을 잠시 보고, 닫지 않았다. 손가락은 실행 버튼 위에 멈췄다.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면, 거절도 가능했다. 떠나는 것도 가능했다. 누구도 도경을 여기 묶어 둔 적이 없다면, 남는 일은 더 이상 명령이 아니었다.

도경은 실행을 눌렀다.

입력: 새 표본 검증 요청 수락 상태: 분석 대기 권한: 서도경 직접 승인 ⟨보류⟩ 결과 확정 불가

기계실 진동이 발아래에서 계속 올라왔다. 도경은 천 조각을 접어 다시 넣었다. 손끝에 남은 실밥 하나가 떨어지지 않아, 짧게 비틀어 떼어 냈다. 아주 작은 끊어짐이었다. 그래도 손이 가벼워졌다.

*

저녁의 접안로에는 사람보다 장비가 많았다. 봉쇄선의 등은 멀리서 낮게 깜박였고, 해면 위에는 부표 신호가 일정한 간격으로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도경은 케이스를 방수 가방에 넣고, 난간 밖 물길을 보았다.

아무도 깔지 않은 길이라는 말은 너무 깨끗했다. 실제로는 녹슨 사다리, 엉킨 케이블, 젖은 장갑, 잘못 분류된 파일, 누군가의 늦은 증언이 이어져 있었다. 길이라 부르기엔 끊어진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도경은 그 끊어진 곳마다 발을 옮겼다. 한 번도 완전히 밀려온 적은 없었다.

하리시의 호출이 들어왔다.

“검증실로 복귀 가능한가. 새 계산이 필요하다.”

“가능합니다.”

“상태는?”

도경은 바다 쪽을 보았다. 먼 수면 아래에서 낮은 저음이 한 번 울렸다. 스피커를 거치지 않은 소리는 몸 안쪽보다 난간을 먼저 흔들었다.

“개인 기록 하나를 정리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보고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짧은 침묵 뒤, 하리시가 말했다.

“영향의 방향은.”

“대체할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제가 승인한 것만 제 판단으로 처리합니다.”

“그 말은 더 느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네.”

“그래도 진행하나.”

도경은 난간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에 녹가루가 묻었다. 바지 옆선에 문지르려다 멈추고, 그대로 두었다.

“진행합니다.”

통화가 끊겼다. 결정은 작게 끝났다. 허가가 아니었다. 거절도 아니었다. 도경에게 돌아온 것은 자기 이름으로 눌러야 할 버튼들이었다.

해류의 창이 휴대 단말에 떠올랐다.

입력: 침묵 임계 지연 모델 후보: 인간 선단 후퇴 / 이동로 재배치 / 신호 간격 보존 p: 지연 가능 0.41 상태: 추가 검증 필요 ⟨보류⟩ 멈춤 판단 불가

멈춤이 아니었다. 아직 답은 지연뿐이었다. 그 차이는 잔인할 만큼 선명했다. 도경은 단말을 잠그지 않고 접안로 끝으로 걸었다. 발밑의 금속판은 중간마다 비어 있었고, 아래로 검은 물이 보였다. 한 칸씩 건널 때마다 신발 밑창이 다른 소리를 냈다.

끝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다. 환영도, 지목도, 오래전부터 준비된 문장도 없었다. 도경은 그곳에 섰다. 뒤에는 사람이 만든 불빛이 있었고, 앞에는 아직 대답하지 않은 바다가 있었다. 부른 사람은 없었다. 도착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도경은 녹 묻은 손으로 단말의 승인 창을 열었다. 질문은 하나로 줄어 있었다. 위기는 멈추는가. 화면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경이 먼저 자기 이름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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