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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컵 바닥의 물때가 손톱에 걸렸다. 도경은 싱크대 앞에서 멈추지 않고 솔을 한 번 더 밀었다. 창밖 도로에서는 배달 오토바이가 젖은 아스팔트를 긁고 지나갔고, 냉장고 모터가 짧게 떨었다. 바다는 보이지 않는 숙소였다. 그래도 벽 너머 배관을 지나는 물소리는 매번 낮은 주파수처럼 귀에 남았다.

몇 달이 지났다. 달력의 날짜는 바뀌었고, 관제실 출입증은 회수됐다. 임시 조사위원회는 도경의 단독 집행 책임을 남겨 두었다. 벌금 고지서와 출석 요구서가 식탁 한쪽에 쌓였다. 세이렌의 소송 서류는 더 두꺼웠다. 김도현은 감사관 감독하에 조건부로 풀려나 재판을 기다렸고, 빅터 한과 세이렌 책임자들에 대한 별도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개인만 벌받고 구조는 남았다고 말하기엔, 남은 조사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도경은 봉투를 크기대로 다시 정리했다. 읽지 않은 것은 없었다. 답장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었다.

오전에는 항만학교에서 장비 검교정 강의를 했다. 학생들은 수중 마이크를 장난감처럼 들어 올렸다가, 케이블이 꺾이면 노이즈가 어떻게 생기는지 듣고 표정을 바꿨다. 도경은 웃지 않았다. 대신 샘플 파일을 틀었다. 펌프 소음, 프로펠러 캐비테이션, 먼 고래의 낮은 반복, 그리고 인간이 만든 침묵. 마지막 파일에서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이건 아무 소리도 아닌데요.”

도경은 스펙트럼을 확대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인지 확인하려면 먼저 무엇을 지웠는지 봐야 합니다.”

수업은 거기서 끝났다. 복도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바깥 공기가 짠 냄새를 조금 묻혀 들어왔다. 도경은 학생들이 떠난 뒤 마이크를 하나씩 케이스에 넣었다. 폼 안쪽에 닿는 금속의 둔한 소리가 하루의 첫 확인처럼 작았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미역국은 싱거웠고, 생선가스의 튀김옷은 기름을 오래 머금고 있었다. 도경은 반쯤 남긴 밥 위에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았다. 휴대폰에는 새 메시지가 세 개 와 있었다. 변호사, 특별심의부 사무국, 윤서란. 어머니의 메시지만 열었다.

밥 먹었니.

도경은 한참 뒤에 답했다. 먹었어요. 서도진의 이름은 쓰지 않았다. 쓰지 않았지만, 엄마가 다시 보낸 짧은 점 하나가 그 이름의 자리를 차지했다. 도경은 화면을 끄고 컵에 남은 물을 마셨다. 물은 플라스틱 냄새가 났다.

*

조약 감시판은 공용 웹으로 전환되어 있었다. 도경의 계정은 열람 권한만 남았다. 그래도 매일 같은 시간에 접속했다. 채굴 제한 구역은 유지 중. 전조 감시망은 북태평양 세 줄, 남극해 두 줄, 인도양 한 줄에서 지연 응답을 보였다. 빨간색은 없었다. 노란색은 줄지 않았다.

삼종 공동 승인 절차는 여전히 느렸다. 인간 위원회가 제출한 긴급 보수 신청은 해류의 위험 예측에서 두 번 보류됐고, 모계 대표 신호를 대리하는 관찰단은 침로 간섭 가능성을 이유로 답을 늦췄다. 기사 제목들은 같은 단어를 돌려 썼다. 비효율. 무책임. 종간 관료주의. 도경은 제목만 보고 닫았다.

해류의 공개 로그는 전보다 짧아졌다. 해석보다 상태가 많았다.

입력: 남서 해역 산소 농도 하강 후보: 계절 변동 / 미생물 증식 / 채굴 잔류 영향 p: 0.31 / 0.44 / 0.29 상태: 단독 결론 금지 ⟨보류⟩ 삼종 검토 요청

침묵 임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름만 조금 바뀌었다. 재난 보고서에서는 ‘지연된 문턱’이라 불렀고, 세이렌은 ‘관리 가능한 변동’이라고 불렀다. 도경은 둘 다 믿지 않았다. 지연은 구원이 아니었다. 시간을 산 것뿐이었다. 산 시간이 누구의 손에 넘어가는지가 다음 문제였다.

특별심의부는 존속했다. 불완전한 절차라는 꼬리표도 그대로였다. 회의록에는 도경의 이름이 자주 나왔다. 일부 위원은 도경을 위험한 선례라고 불렀고, 일부는 필요한 위반이라고 불렀다. 도경은 어느 쪽에도 답변서를 내지 않았다. 필요한 위반이라는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예외를 만들고, 예외는 곧 권력이 된다.

오후 네 시, 감시판의 한 칸이 깜박였다. 동쪽 이동로의 부표 둘이 동시에 낮은 잡음을 올렸다. 시스템은 생물성 가능성을 표시했다. 도경은 습관처럼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확대 권한은 없었다. 요청할 수는 있었다. 사유를 적고, 임시 접근을 신청하고, 해류와 인간 심의관의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도경은 신청하지 않았다. 몇 초 뒤 깜박임은 회색으로 돌아갔다. 원본은 보존됐고, 라벨은 붙지 않았다. 도경은 그 상태가 유지되는지 확인한 뒤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모르는 채 둘 권리도 감시 대상.’

그 문장은 보고서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노트에는 필요했다.

퇴근 무렵, 항만 방송이 선박 이동 제한을 알렸다. 낮은 벨이 세 번 울렸다. 사람들은 짐을 챙기며 불평했다. 조약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바다가 사람 일정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도경은 가방 끈을 고쳐 멨다. 예전 같으면 반박했을 말들이 혀끝까지 오지 않았다. 반박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이미 줄어들었다. 대신 고정된 제한선이 아직 화면에 남아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마라의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도경은 횡단보도 앞에서 듣지 않고, 건물 현관에 들어선 뒤 재생했다. 잡음 사이로 아마라의 목소리가 낮게 끊겼다. “다음 회의엔 네 이름이 빠질 거야. 내가 막을 수 없었어. 그래도 기록 검증은 네 방식으로 남았어.”

메시지는 거기서 끝났다. 사과도 약속도 없었다. 도경은 그 점이 좋았다.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없는 관계는 덜 잔인했다. 답장은 짧았다. 알고 있어요. 고마워요. 보내고 나서 두 단어 모두 모자라다고 느꼈지만, 더 긴 문장은 빚처럼 보였다.

김도현은 가끔 장비 사진을 보냈다. 말은 적었다. ‘이 케이블 규격 기억나?’ ‘부표 전원부 아직 버틴다.’ 오늘 온 사진에는 낡은 수신기 옆에 새 잠금 태그가 붙어 있었다. 인간 단독 해석 금지. 도현은 태그 아래에 손글씨로 작은 점을 찍어 두었다. 도경은 그 점을 확대했다. 농담인지 표시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채로 저장했다.

서도진은 돌아오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실종이었다. 시신이 없으니 사망 확인서의 빈칸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도경에게 그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심해에 남기로 한 선택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경은 알았고, 그 앎에는 기적의 자리가 없었다. 실종이라는 법적 단어는 그래서 너무 얇았다. 도경은 아버지의 마지막 기록 사본을 금속 상자에 넣어 책장 아래칸에 두었다. 매주 열지는 않았다. 오늘은 열었다. 파일명은 바꾸지 않았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숨긴 기록, 딸에게 넘긴 계산, 끝내 직접 묻지 않은 선택이 거기 있었다.

도경은 재생하지 않고 첫 화면만 보았다. 정지된 파형은 산맥처럼 보였고, 그 아래 서도진의 짧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 ‘들릴 때까지 보존.’ 도경은 메모 옆에 붙여 둔 자기 주석을 손끝으로 눌렀다. ‘보존은 위임이 아니다.’

용서한다고 말한 날 이후로도, 그 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자주 다시 필요했다. 그래도 파일을 지우지 않았다. 방식은 거부했고, 기록은 남겼다. 그 둘을 같은 손으로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상자 뚜껑을 닫을 때, 금속 걸쇠가 작게 물렸다. 그 소리가 끝이 아니라 잠금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삼종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절차 안에 있었다. 인간은 고래의 침묵을 자꾸 의사로 읽으려 했고, 고래 쪽 관찰단은 인간의 지연을 공격으로 의심했다. 해류는 계산 가능한 위험을 줄였지만, 계산되지 않는 거부를 자주 놓쳤다. 완벽한 공존이라는 말은 회의 자료에서 빠졌다. 대신 최소 규약, 보류, 취소권, 원본 보존 같은 딱딱한 말들이 남았다.

도경은 그 딱딱함을 신뢰했다. 다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정한 척하지 않아서였다. 이해하지 못해도 물러서는 규칙. 아끼지 않아도 해치지 않는 제한. 서로의 언어를 완전히 갖지 못한 채 같은 바다를 덜 망가뜨리는 방법. 그것이 지금 가능한 전부에 가까웠다.

밤이 오기 전, 윤서란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반찬을 보냈다고 했고, 도경은 냉장고 자리가 있다고 거짓말했다. 둘 다 서도진을 말하지 않았다. 통화 끝에 어머니가 아주 낮게 물었다. “오늘은 좀 잤니.”

“조금요.”

“그럼 됐다.”

전화가 끊긴 뒤 도경은 빈 냉장고 칸을 하나 비웠다. 오래된 소스 병 두 개를 버리고, 선반을 닦았다. 누군가의 반찬이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일은 작고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견딜 만했다.

*

저녁 바다는 항만 끝에서 검게 눌려 있었다. 도경은 출입 제한선 바깥 난간에 섰다. 관제실도, 발신 콘솔도, 승인 창도 없었다. 손에는 낡은 휴대용 수신기 하나뿐이었다. 송신 기능은 제거되어 있었다. 도현이 보내 준 것이었다. 케이스에는 긁힌 자국이 많았고, 이어폰 단자는 한 번 비틀어야 맞았다.

수신기는 바다의 낮은 층을 천천히 긁어 올렸다. 먼 엔진, 밧줄이 부딪히는 소리, 방파제 아래 물이 빈 공간을 치는 소리. 도경은 녹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기록해야 할 때와 그냥 들어야 할 때를 아직도 자주 헷갈렸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 파일도 만들지 않기로 했다.

배제 통지서는 가방 안에 있었다. 기소 의견서도 같이 있었다. 재판 날짜는 다음 달로 잡혔다. 도경은 변호사의 조언대로 공개 발언을 줄였고, 기관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름은 빠졌지만, 귀는 남았다. 누군가 공식 직함을 빼앗아도 듣는 행위까지 회수할 수는 없었다. 다만 듣는 자로 남는 일은 생각보다 덜 영웅적이었다. 벌금과 피로, 잘못된 기사, 끊어진 초대, 대답 없는 밤이 따라왔다.

수신기에서 짧은 튐이 났다.

딱, 먼 잡음 딱, 딱 긴 낮음 끊김

도경은 화면을 보지 않았다. 고래인지, 케이블 접촉인지, 항만 구조물의 반향인지 알 수 없었다. 분류하지 않아도 소리는 있었다.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지나갔다. 도경은 이어폰을 조금 느슨하게 끼웠다. 귀를 완전히 막지 않으려는 자세가 이제는 손에 익었다.

바다 쪽 감시등이 제한된 밝기로 켜졌다. 조약 이후 항만 조명은 수면을 직접 때리지 않게 바뀌었다.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았고, 어선 몇 척은 아직도 우회로를 욕했다. 그래도 어둠은 조금 덜 찢겼다. 물 위에 빛이 길게 누웠다가 파도에 잘렸다. 도경은 그 잘린 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세 번째 인간이라는 말은 회의실에서 여러 번 오염됐다. 누군가는 새 윤리의 이름으로 썼고, 누군가는 책임 회피의 구호로 썼다. 도경에게 그것은 아직 답이 아니었다. 지배하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삭제하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말하지 않는 상대 앞에서 자기 불안을 처리할 수 있는지. 그 질문들은 정책 문장보다 오래 남았다.

수신기는 다시 낮게 떨었다. 응답인지 아닌지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도경은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녹음하지 않았다. 확대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내지도 않았다.

바다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도 바다였다. 조약은 유지되고, 위기는 미뤄졌고, 상실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그래도 세계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도경은 난간에 기대어 오래 들었다. 묻지 않은 질문이 물 위에 남았고, 도경은 그것을 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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