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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조류를 읽는 자들

회색 궤적이 조류를 거슬렀다. 도경은 무인기 3번의 수심 로그를 열고, 자동 보정값을 껐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느린 점 셋이 한 박자 늦게 방향을 바꾸었다.

수심 321. 거리 798. 음압 낮음. 발성 거의 없음.

이랑의 푸른 선은 먼 쪽에 있었다. 거부 무리의 붉은 선은 그보다 안쪽에서 물길을 닫았다. 회색 점들은 둘 사이로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렸다. 두 신호군이 겹쳐 해류의 후보가 흐려지는 순간마다, 바깥쪽으로 반 원을 그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빠졌다.

도경은 재생 속도를 반으로 낮췄다. 회색 점 하나가 선박과 평행하게 흘렀다. 도망도 접근도 아니었다. 배가 만드는 낮은 진동에 몸을 맞춘 뒤, 일정 거리에서 머물렀다. 방위각이 세 번 흔들렸고, 그때마다 선체 하부의 비콘 로그에 희미한 잔선이 생겼다.

클릭 — 짧은 마찰음 클릭, 클릭 — 길게 누운 침묵

원신호는 빈약했다. 뜻을 내세우기보다 위치를 맞추는 소리에 가까웠다. 거부 무리처럼 끊지 않았고, 이랑처럼 여지를 남기지도 않았다. 반응했다. 그것도 너무 고르게.

도경은 지난 열두 시간의 항로 데이터를 겹쳤다. 회색 점들은 먹이층 변화보다 인간 장비의 주기에 더 잘 맞았다. 비콘이 켜진 뒤 18초에서 23초 사이, 선박이 낮은 출력으로 회전할 때, 원격 부이가 상태 신호를 갱신할 때. 자연스러운 호기심이라면 흩어질 타이밍에도 같은 간격을 지켰다.

입력: 외곽 저음향군/비콘 주기/선박 회전음/무인기 위치 후보: 장비 회피 0.29, 장비 추종 0.26, 우발 동조 0.14, 미분류 0.24 p: 0.29 상태: 행동 반복성 증가 ⟨보류⟩ 학습 경로 불명

학습 경로 불명.

도경은 그 줄을 보고 메모를 바꾸었다. 목적 미상 외곽 축. 너무 느슨했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신호가 오면 비켜서고, 길이 열리면 따라붙고, 강한 차단이 올라오면 깊이를 낮췄다. 경고도 거부도 아니다. 순응에 가까웠다.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이 붙인 이름은 쉽게 죄를 만든다. 도경은 대신 임시 표식을 달았다. 이용 무리. 확정 이름이 아니라, 행동을 잃지 않기 위한 손잡이였다.

무인기 화면 아래, 회색 점 하나가 비콘 잔향이 사라진 곳을 다시 통과했다. 지나간 자리를 핥듯 느리고 정확했다. 학습된 냄새가 났다. 바다는 냄새 대신 간격을 남겼다.

*

갑판 난간은 소금으로 거칠었다. 도경은 장갑을 끼지 않은 손끝으로 표면을 훑고, 세이렌 참관인이 서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빅터 한이 보낸 참관인 노아 박은 오늘따라 통제실 유리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장비 박스 옆에서 바다를 보다가, 손목 단말을 한 번 돌렸다.

짧은 진동음은 갑판 소음에 묻혔다. 도경은 못 들은 척했다. 대신 휴대 수신기의 로컬 로그를 켰다. 선박 통신망에 올라오지 않는 저출력 송신이 있었다. 지속 0.7초. 주파수는 해양 표준 비콘 대역 가장자리. 허가 목록에는 없었다.

참관인은 팔을 내렸다. 몸짓은 작았다. 누군가를 부르는 손짓도, 명령하는 손짓도 아니었다. 다만 손목을 바깥쪽으로 꺾고 엄지를 두 번 눌렀다. 그 직후 물속 회색 점 셋이 동시에 깊이를 바꿨다.

수심 321에서 327. 이동각 14도. 반응 지연 6.2초.

도경은 수신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오래 보면 들킨다. 참관인이 고개를 돌렸고, 도경은 무인기 고정 레버를 확인하는 척 몸을 숙였다. 레버는 이미 잠겨 있었다. 발밑 철판이 엔진 저주파에 맞춰 떨었다.

“갑판에서 송출 허가 받은 장비가 더 있습니까?”

참관인은 한 박자 늦게 웃었다. “검증팀 장비는 박사님이 더 잘 아시겠죠.”

“세이렌 장비를 물었습니다.”

“관찰 장비입니다. 관찰자는 관찰을 기록합니다.”

대답은 매끈했지만, 손목 단말 화면은 바로 꺼졌다. 도경은 그 화면 가장자리에 떠 있던 작은 녹색 막대를 기억했다. 전송 중 표시. 바다로 나간 신호인지, 본선으로 간 신호인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회색 무리는 반응했다.

도경은 난간 너머로 눈을 내렸다. 수면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파도 무늬만 접혔다 펴졌다. 그런데 수신기 로그에는 새 선이 있었다. 참관인의 송출, 회색 무리의 깊이 변화, 선박 하부 비콘의 약한 반복. 셋은 같은 시간대에 붙었다.

참관인이 옆으로 왔다. “문제가 있습니까?”

“있으면 보고하겠습니다.”

“저희에게도 공유됩니까?”

“공식 채널에 올라가는 것만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도경은 그 변화를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면 아직 증거가 아닌 표정까지 증거처럼 보일 수 있었다. 대신 손목 단말의 제조사 로고와 송출 시간만 적었다. 세이렌과 회색 무리는 얽혀 있었다. 어떤 말로 얽혔는지는 아직 비어 있었다.

갑판 끝에서 비콘 상태등이 한 번 깜박였다. 물속 회색 점 하나가 다시 방향을 낮췄다. 도경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제 감시받는 쪽만은 아니었다.

*

엘런은 파형을 세 번 보고도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 통제실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고, 목소리는 더 건조했다.

“언어라고 쓰면 안 됩니다.”

“나도 그렇게 안 썼습니다.”

도경은 화면을 넘겼다. 참관인 송출 구간과 회색 무리 반응 구간을 나란히 놓았다. 같은 패턴이 네 번 있었다. 송출 뒤에 접근, 강한 비콘 뒤에 이탈, 선박 회전 뒤에 재정렬. 다만 원신호에는 문장으로 묶을 만한 교환이 없었다.

입력: 비인가 저출력 송신/외곽군 깊이 변화/반복 보상 가능성 후보: 조건화 반응 0.38, 경로 유도 0.21, 탐색 반응 0.17, 미분류 0.18 p: 0.38 상태: 언어성 근거 부족 ⟨보류⟩ 보상 항목 미확인

엘런이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보상 항목이 없습니다. 그러면 조건화도 아직 가설입니다.”

“반응 지연이 일정합니다. 신호 종류가 바뀌면 행동도 바뀌고요.”

“개가 종소리에 침 흘린다는 비유를 쓰지 마십시오.”

“안 씁니다. 고래니까요.”

엘런은 짧게 숨을 뺐다. 웃음은 아니었다. “문제는 세이렌이 이걸 거래로 포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상호 이해처럼요.”

도경은 해류의 이전 번역 기록을 열었다. 세이렌이 넘긴 과거 파일에는 완전 번역 성공을 주장하는 문서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원신호와 맞춰 보면 빈칸이 많았다. 반응을 맞힌 기록은 있었지만, 뜻을 붙인 기록은 없었다. ‘허락’, ‘동의’, ‘요청’ 같은 단어들은 인간 보고서에서만 선명했다.

“해류도 언어로 못 묶습니다. 특징량은 잡는데 의미 후보가 낮아요.”

“그럼 더 조심해야 합니다. 못 알아들은 쪽이 먼저 계약서를 쓰는 일이 제일 위험합니다.”

도경은 참관인 송출 음원을 잘라 작은 창에 띄웠다. 짧은 상승음, 낮은 진동, 끊김. 반복하면 회색 무리가 특정 깊이로 이동했다. 이동 뒤에는 선박 주변 잔류 먹이층이 흔들렸고, 부유 센서의 플랑크톤 밀도값이 조금 올라갔다. 보상이라고 부르기엔 약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값은 아니었다.

“조건화 신호라고 쓰겠습니다. 언어 대화 아님. 보상 항목 미확인.”

엘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렌이 완전 번역에 성공했다는 표현도 금지하십시오. 그 문장 하나가 나중에 허가서가 됩니다.”

도경은 보고서 문장을 고쳤다. 인간-고래 거래 정황. 지웠다. 인간 장비 신호에 대한 이용 무리의 조건화된 행동 교환 가능성. 확증 보류. 너무 길었지만, 부정확한 짧은 문장보다 나았다.

해류가 새 후보를 띄웠다.

입력: 송출음 제거 후 원신호 단독/행동 로그 비교 후보: 자발 이동 0.18, 조건화 잔류 0.35, 군집 내 표지 0.16 p: 0.35 상태: 외부 자극 의존 가능성 ⟨보류⟩ 원인-대가 분리 필요

대가.

도경은 그 낱말을 소리 내지 않았다. 세이렌이 고래와 말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 반복되는 자극과 작은 보상으로 길을 만든 흔적이 있었다. 그것도 대화보다 더 위험할 수 있었다. 상대가 무엇을 이해했는지 묻지 않아도 움직임은 얻을 수 있으니까.

엘런이 파일 잠금 권한을 걸었다. “이건 공유 범위를 줄입시다.”

“세이렌 참관인이 보면요?”

“그래서 줄이는 겁니다.”

결정은 남았다. 도경은 잠긴 폴더에 원신호와 로컬 로그를 따로 넣었다. 확증은 아직 없었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바뀌었다.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주고 어떤 움직임을 샀는가.

*

저녁 통제실은 사람 수가 줄어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환풍기, 키보드, 먼 갑판의 발걸음. 도경은 세 개 레이어를 한 화면에 고정했다. 푸른 선은 이랑. 붉은 선은 거부 무리. 회색 선은 이용 무리.

경고하는 축. 막는 축. 이용하는 축.

문장으로 쓰자 너무 단순했다. 물속에서는 훨씬 더 거칠고 느렸다. 이랑은 인간 쪽으로 잔향을 열었다. 거부 무리는 그 통로를 닫았다. 이용 무리는 닫히고 열리는 사이에서 인간 장비의 반복을 배웠다. 세 축은 같은 답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의 바다라는 말도 당분간 금지였다.

도경은 공개 보고서에는 ‘외곽 반응군’이라고 적었다. 내부 메모에는 ‘이용 무리’라고 남겼다. 두 이름 사이의 거리만큼 증거가 부족했다. 그래도 지형은 바뀌었다. 이제 이랑을 따라가는 일은 세이렌이 만든 자극의 흔적도 밟는 일이었다.

참관인은 통제실 뒤쪽에 있었다. 유리벽에 비친 모습으로는 화면을 보는 듯했지만, 손은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다. 도경은 모니터 밝기를 한 단계 낮췄다. 반사면이 더 선명해졌다. 그의 엄지가 주머니 안에서 두 번 움직였다.

로컬 수신기에는 곧바로 짧은 선이 떴다. 이번에도 공식망에는 없었다.

도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보를 올리면 그는 다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보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차단이 아니라 반복 표본이었다. 도경은 수신기 저장 위치를 바꾸고, 선박 하부 비콘 로그와 자동으로 맞물리게 했다. 참관인 단말의 움직임을 직접 녹화하지는 않았다. 대신 갑판 감시 카메라의 공개 영상을 같은 시간대로 북마크했다. 규정 안에 있는 것들만 묶었다.

입력: 로컬 송출 감지/공식망 기록 없음/외곽군 수심 변화 대기 후보: 비인가 자극 0.41, 장비 오작동 0.12, 우발 간섭 0.09, 미분류 0.25 p: 0.41 상태: 감시 대상 추가 ⟨보류⟩ 송출 주체 확정 전

도경은 ‘감시 대상’이라는 말을 지우지 않았다. 해류가 붙인 말이지만, 이번에는 쓸 수 있었다. 감시받는 사실도 그대로 두었다. 세이렌 참관인이 도경의 보고 범위를 재고 있다면, 도경도 그의 반복을 재야 했다.

아버지의 오래된 파일을 열고 싶은 충동이 잠깐 올라왔다. 서도진도 누군가의 장비 주기를 따라가다 사라졌을까. 아니면 스스로 다른 깊이를 골랐을까. 도경은 손을 멈추고 파일 목록을 닫았다. 지금 그 이름을 끌어오면 판단이 흐려진다. 원망도, 그리움도, 아직 검증 도구가 아니었다.

회색 점 하나가 다시 움직였다. 참관인의 손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뒤 6.4초. 수심은 5미터 낮아졌고, 거부 무리의 붉은 선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랑의 푸른 선만 먼 곳에서 얇게 흔들렸다.

도경은 새 감시 규칙을 실행했다. 참관인 송출 의심 구간 자동 표시. 이용 무리 깊이 변화 자동 연결. 세이렌 공유 폴더 제외. 저장 버튼을 누르자 로그 번호가 올라갔다.

거래처럼 보이는 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조건화된 신호와 행동의 교환이었다. 그렇다면 그 움직임의 대가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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