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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복원된 신뢰

경고 코다가 들어오자 수신창이 먼저 흔들렸다. 도경은 젖은 헤드셋을 한쪽 귀에서 떼지 않은 채 증폭값을 낮췄다. 갑판 아래 수중 마이크 배열이 세 번 짧게 떨고, 긴 저음이 뒤따랐다.

클릭, 클릭, 클릭 — 낮게 접힌 울림 클릭 — 끊김 클릭, 클릭 — 멀어지는 압력

해류가 원신호 옆에 후보를 띄웠다.

입력: 모계 7 반복 코다/저산소층 회피 경로/탐사선 음향 장비 출력 후보: 거리 유지 0.33, 음향 중단 0.28, 이동로 회피 0.24, 미분류 0.12 p: 0.33 상태: 행동 지시 불명확 ⟨보류⟩ 핵심 구간 신뢰도 부족

도경은 커서를 마지막 줄에 댔다. 핵심 구간. 바로 그 부분만 흐렸다. 앞뒤 패턴은 또렷했다. 무리 위치, 수심 변화, 발성 간격. 그런데 무엇을 하라는 지시만 흐릿하게 비어 있었다.

“원신호 재분리.”

해류는 같은 파형을 네 개 층으로 쪼갰다. 선박 엔진 잔향, 세이렌 비콘 잔류음, 생물성 클릭, 바닥 반사. 도경은 비콘 대역을 더 깎았다. 고래의 클릭이 조금 선명해졌지만, 번역 후보는 더 벌어졌다.

입력: 비콘 대역 제거/저주파 반사 보정/반복 구간 2차 정렬 후보: 정지 0.29, 후퇴 0.27, 음향 차단 0.26, 미분류 0.15 p: 0.29 상태: 분기값 근접 ⟨오류⟩ 행동 지시 확정 불가

오류인지, 자료 부족인지, 해류의 모델이 버티지 못하는 경계인지 알 수 없었다. 도경은 답을 강제로 고르지 않았다. 어제 같으면 후보값을 더 밀어붙였을 것이다. 오늘은 숫자들이 서로의 목을 물고 있었다.

탐사선 하부에서 짧은 펄스가 나갔다. 장비 점검 루틴이었다. 이랑의 위치표가 한 칸 바깥으로 밀렸다. 도경은 손목 단말을 잡고 바로 중지 명령을 열었다가 멈췄다. 정확한 뜻을 모른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은 충분히 정확했다.

수면 아래에서 다시 긴 저음이 왔다. 이번에는 낮게, 더 가까이.

클릭 — 클릭 — 넓게 벌어진 빈칸 클릭, 클릭, 클릭

도경은 해류가 새 후보를 만들기 전에 원신호를 잠갔다. 번역창은 여전히 흐렸다. 흐릿한 창을 오래 본다고 물속의 행동이 기다려주지는 않았다.

*

도경은 확정 대신 최악을 골랐다. 가장 위험한 해석이 맞다고 가정하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탐사선의 능동 음향을 끄고, 이동로에서 물러나며, 세이렌 비콘 잔향을 더 차단하는 것.

“하부 펄스 전부 정지. 음향 장비는 수동 청음만 남깁니다.”

통신망에서 김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검증 전 정지는 로그에 사유가 필요합니다.”

“사유 남깁니다. 행동 지시 불명확. 생물 반응 악화 가능성.”

“그 문장으로는 부족합니다.”

“부족한 문장이 낫습니다. 틀린 문장보다.”

도경은 장비 제어권을 현장 모드로 돌렸다. 경고창이 두 번 떴다. 탐사 효율 저하. 측정 손실 가능. 도경은 모두 승인했다. 하부 펄스 표시는 노란색에서 회색으로 죽었다. 선체 아래를 치던 규칙적인 짧은 진동이 사라졌다.

다음은 위치였다. 탐사선의 현재 선로는 이랑 무리의 우회 경로와 800미터 안쪽에서 겹쳤다. 위험한 거리는 아니었다. 인간 기준으로는. 도경은 조타 보조창을 열어 남서쪽으로 느린 후퇴 경로를 찍었다. 먹이층 상단과 저산소층 경계 사이를 건드리지 않는 선이었다.

“이 속도면 표본 하나를 놓칩니다.” 엘런이 뒤에서 말했다.

“놓칩니다.”

“해석이 틀리면요?”

도경은 난간 너머 검은 물을 보았다. 물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틀린 해석으로 가만히 있는 게 더 나쁩니다.”

엘런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산소 지도 위에 후퇴 선로를 겹쳤다. 탐사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케이블 장력이 조금 풀렸다. 도경은 수동 마이크 감도를 낮췄다. 듣기 위해 덜 밀어붙이는 설정이었다. 해류는 새 출력을 띄웠다.

입력: 능동 음향 중단/선박 후퇴/비콘 대역 차단 후보: 교란 감소 0.41, 경고 대응 0.31, 우연 동시 0.14, 미분류 0.09 p: 0.41 상태: 관찰 지속 ⟨보류⟩ 의미 해석 금지

의미 해석 금지. 도경은 그 줄을 그대로 두었다. 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다. 의미를 모를 때도 줄일 수 있는 위험은 있었다. 과학은 때로 대답이 아니라, 더 망치지 않는 순서를 고르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쓰던 낡은 현장 노트가 떠올랐다. 서도진은 여백에 자주 ‘말보다 조건’이라고 적었다. 집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많던 사람이었다. 도경은 그 문장을 오래 미워했다. 지금은 같은 문장을 손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수치심이 손등을 스치듯 지나갔다. 도경은 장갑을 더 조였다.

후퇴 경로가 확정되자 통제실 알림이 조용해졌다. 바다 쪽 소음 바닥도 조금 내려갔다. 도경은 원신호를 다시 열었다. 코다는 더 오지 않았다. 대신 긴 간격이 남았다. 기다림인지, 감시인지, 단순한 이동인지 아직 모른다.

그래도 탐사선은 물러나고 있었다.

*

수심 70미터, 압력이 선체 아래로 눌러 붙었다. 이랑의 위치점은 한동안 멀어졌다가 멈췄다. 도경은 화면 확대를 하지 않았다. 숫자를 키운다고 거리가 줄지는 않는다. 대신 원신호의 진폭만 낮게 살폈다.

처음에는 경계음이 남았다. 짧고 단단한 클릭이 탐사선 외곽을 훑고 지나갔다. 거리 계산용인지, 밀어내는 신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도경은 응답 신호 목록을 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 선택도 행동이었다.

세이렌 비콘 잔향은 차단벽 안에서 가늘게 남았다. 김도현이 조용히 말했다. “완전 차단은 못 합니다. 하드웨어 우회로가 있습니다.”

“새 펄스만 막아도 됩니다. 잔향은 기록하세요.”

“이랑이 구분할까요?”

도경은 답하지 않았다.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더 물러났다. 인간의 사정은 물속에 번역되지 않는다.

십여 분 뒤, 이랑의 점이 조금 안쪽으로 돌아왔다. 무리의 바깥 개체들은 여전히 깊은 쪽을 피했지만, 중심 점 하나가 후퇴한 선박의 빈자리를 따라 느리게 접근했다. 도경은 숨을 세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마이크 출력 제한값만 다시 확인했다.

클릭 — 낮은 울림 클릭, 클릭 — 길게 누운 저음 — 침묵

해류가 지연된 출력을 냈다.

입력: 접근 궤적/인간 음향 중단 후 반응/반복 코다 후보: 경계 완화 0.39, 거리 재측정 0.26, 이동로 확인 0.19, 미분류 0.11 p: 0.39 상태: 접근 허용 가능성 증가 ⟨보류⟩ 신뢰 단정 금지

도경은 ‘신뢰’라는 단어를 보고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해류가 먼저 쓰기에는 너무 매끄러운 단어였다. 그러나 이랑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번역이 맞아서가 아니었다. 인간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틀림의 반경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수면 위로 낮은 분출음이 한 번 올라왔다. 아주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갑판의 금속판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경은 난간에 손을 올렸다. 젖은 쇠가 차가웠고, 손바닥에는 소금이 박혔다.

멀리 물이 갈라지며 검은 등이 잠깐 드러났다. 등지느러미의 흰 흠집이 모니터 속 식별 사진과 맞았다. 모계 7. 도경이 마음속으로만 이랑이라 부르던 존재가 선박의 옆선을 비껴 지나갔다. 다가왔지만 닿지 않았다. 물러났지만 떠나지 않았다.

도경은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선체 조명 하나를 껐다. 표층 반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사소했다. 그러나 고래가 보는 인간은 거대한 장비와 갑작스러운 빛과 이해 못 할 펄스의 묶음일 것이다.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였다.

이랑은 다시 잠겼다. 위치점은 선박과 평행하게 움직였다. 거리가 일정했다. 도경은 그 선을 오래 보았다. 뭉클하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에는 이렇게 썼다. 능동 음향 중지와 후퇴 이후 모계 7 접근. 번역 성공으로 판단하지 말 것. 행동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볼 것.

마지막 문장을 쓰는 동안 손끝이 한 번 미끄러졌다. 도경은 오타를 지우고 다시 입력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거리에서 먼저 생겼다.

*

저녁, 갑판 장비함의 표시등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선박은 낮은 속도로 우회 경로를 유지했고, 수동 청음만 검은 화면에 얇은 선을 그렸다. 도경은 해류 로그를 따로 복사해 원신호와 나란히 놓았다.

문제의 구간은 여전히 흐렸다. 재처리해도 행동 지시 부분만 확정되지 않았다. 다른 구간의 후보값은 오히려 조금 올라갔다. 도경은 그 차이를 보고 파일명 옆에 별표를 붙였다. 이유는 쓰지 않았다. 쓸 수 없었다.

입력: 사후 재처리/원신호 보존/인간 행동 로그 후보: 자료 부족 0.35, 잡음 간섭 0.22, 모델 경계 0.21, 미분류 0.18 p: 0.35 상태: 원인 불명 ⟨보류⟩ 추가 학습 금지

추가 학습 금지.

도경은 그 줄에서 멈췄다. 해류는 필요할 때마다 더 많은 자료를 달라고 했고, 더 많은 자료가 들어갈수록 더 그럴듯한 말을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지를 붙였다. 맞는 판단일 수도 있었다. 불명확한 행동 지시를 학습시켜 더 확신 있는 오답을 만드는 일은 위험했다. 그래도 도경은 창을 닫지 않았다. 해류가 옳은 말을 할 때도, 그 옳음의 경계가 더 선명해졌다.

“로그 잠글까요?” 김도현이 물었다.

“원신호, 제어 명령, 해류 출력 전부 분리 보관하세요. 같은 폴더에 두지 말고.”

“해류 출력도요?”

“특히요.”

그는 짧게 알겠다고 했다. 말 뒤에 작은 의문이 남았지만, 도경은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만큼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오늘 이랑이 가까워진 이유를 해류의 성공으로 쓰면 안 된다. 불명확한 번역을 우회한 인간 행동이 먼저였다.

수동 마이크에 낮은 울림이 다시 잡혔다. 낮보다 길고, 더 깊은 쪽에서 올라왔다. 이랑의 위치점은 선박 옆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 열렸다. 그 아래, 지도에서 비워 둔 더 깊은 골짜기 쪽으로 선이 뻗었다. 무리 전체가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중심점 하나가 길을 보이는 듯이 느리게 흔들렸다.

도경은 항로 변경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따라가겠다는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대신 현재 위치에서 완전 정지를 요청했다. 따라붙지 않는 것이 오늘 얻은 거리의 값을 지키는 길이었다.

클릭, 클릭 — 긴 저음 클릭 — 더 낮은 울림 — 침묵

해류는 번역을 내지 못했다. 상태창에는 짧은 줄만 남았다.

입력: 심층 방향 코다/접근 후 이탈 궤적 후보: 미분류 0.61 p: 0.61 상태: 대응 가능한 언어층 없음 ⟨보류⟩ 관찰만 권고

도경은 이번에는 해류의 권고를 따랐다. 불신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말할 수 없는 층 앞에서 말하지 않는 선택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서도진의 오래된 파일을 열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아버지도 이런 소리를 들었을까. 들었다면 누구에게 숨겼을까. 도경은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가 내렸다. 오늘의 기록에 죽은 사람의 빈칸을 섞지 않기로 했다. 원망은 오래된 버릇처럼 돌아왔고, 그리움은 그 뒤에서 낮은 발소리를 냈다. 도경은 둘 다 기록하지 않았다.

이랑의 점은 더 깊은 골짜기 입구에서 멈췄다. 선박과의 거리는 유지됐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낮에 도경이 만든 거리 그대로였다. 그 거리가 이제 명령보다 단단한 문법처럼 화면에 남았다.

도경은 로그 마지막 줄에 썼다. 모계 7, 인간 선박의 후퇴 이후 심층 방향으로 제한 접근 허용. 번역 불가. 행동 기반 관계 형성.

저장 표시가 떴다. 바깥 물에서 낮은 숨소리가 한 번 올라왔다. 이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깊은 곳을 등지고, 도경이 따라오지 않는지 확인하듯 같은 거리에서 천천히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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