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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누구의 도구인가

청문장 마이크가 두 번 삐걱거리고, 도경의 발언 시간이 빨간 숫자로 줄었다. 앞줄 위원들은 같은 문서를 다른 각도로 들고 있었다. 해류 운영 권한 국유화 및 기밀 전환. 제목은 단단했고, 근거 칸에는 안보와 외교가 반복됐다.

“서도경 박사, 현재 연구팀은 해류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합니까?”

도경은 물컵을 건드리지 않았다. “해류의 일부 동작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좁은 통제가 아니라 더 넓은 감시가 필요합니다.”

“감시라면 국가가 해야 합니다.”

“국가 단독이면 감시가 아니라 소유입니다.”

뒤쪽 방청석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의장이 망치를 짧게 쳤다. 화면에는 어제부터 쌓인 자막들이 올라왔다. 공개 지연, 조절 계층, 외부 요청 증가. 틀린 문장은 아니었지만 순서가 바뀌자 다른 뜻처럼 보였다.

정부 과학안보국 차관은 손을 접었다. “고래와의 접촉은 더 이상 학술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해류는 국가 간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므로 운영 인스턴스와 원자료는 기밀망으로 이관해야 합니다.”

“그 순간 검증은 끊깁니다.”

“검증은 허가된 기관이 맡습니다.”

“허가권자가 결과를 원하면요.”

차관의 표정이 얇아졌다. 도경은 말을 멈췄다. 너무 세게 밀면 개인 저항으로 보일 것이다. 너무 물러서면 해류는 닫힌 방으로 들어간다. 닫힌 방 안에서는 번역 오류도 정책이 될 수 있었다.

“해류는 현재 관측상 고래 원신호와 인간 요청 사이에서 충돌을 줄이는 우선순위로 작동합니다. 그게 처음부터 설계된 목적인지 스스로 자리 잡은 것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한쪽이 입력권과 출력권을 독점하면, 해류는 중재자가 아니라 그쪽의 증폭기가 됩니다.”

“증폭기라니요.”

“기억을 고르는 도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먼저 듣게 할지, 무엇을 나중으로 미룰지. 그 순서가 사실상 역사 기록을 바꿉니다.”

몇몇 위원이 시선을 내렸다. ‘기억’이라는 단어가 회의록에 박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도경은 손가락 끝으로 자료 가장자리를 눌렀다. 서도진 구간 임시 봉인 항목은 부록으로 밀려 있었다. 오늘 그 이름을 먼저 꺼내면, 방어선은 사적 요구로 줄어든다.

“대안은?” 의장이 물었다.

“정부, 연구팀, 세이렌 모두 단독 쓰기 권한 금지. 원신호 해시는 공개하고, 원본 접근은 독립 감시단 입회 아래 세션별 승인. 해류 내부 조절 계층은 변경 불가 상태로 보존해야 합니다.”

차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위기 대응 속도가 떨어집니다.”

“속도를 이유로 기억을 잠그면, 나중에 아무도 원본을 믿지 않습니다.”

빨간 숫자가 0이 됐다. 마이크가 꺼졌다. 도경의 마지막 음절은 스피커 밖에서 작게 부서졌다. 의장은 결론을 내지 않았다. 임시 통제위원회 안건은 보류가 아니라 계속 심사로 남았다. 열린 문도 닫힌 문도 아니었다. 양쪽 손이 문고리에 올라간 상태였다.

*

복도 자동문이 열리자 세이렌 법무팀 배지가 먼저 보였다. 빅터 한은 기다렸다는 듯 도경의 걸음에 맞췄다. 청문장 밖 조명은 더 하얬고, 유리벽 너머 기자들은 입 모양만 크게 움직였다.

“방금 발언은 세이렌 자산권을 부정한 겁니다.”

“해류가 자산인지부터 검증 중입니다.”

“검증을 투자금으로 했죠. 장비도, 선박도, 계산 자원도.”

도경은 멈추지 않았다. “투자했다는 이유로 고래 원신호까지 갖는 건 아닙니다.”

빅터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게 더 매끈했다. “우리는 해류를 팔겠다는 게 아닙니다. 운영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정부 기밀망으로 들어가면 당신도 나도 끝입니다. 세이렌이 보관하면 적어도 기술은 살아 있습니다.”

“보관이라는 말로 회수를 포장하지 마세요.”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해류가 누구 편도 아니라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쪽이 맡아야 합니다.”

도경은 그 문장을 기억해 두었다.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쪽. 모든 소유자가 처음에 쓰는 말이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입력 우선권입니다. 어떤 질문을 먼저 넣을지, 어떤 출력이 공개될지 정하는 권한.”

“그게 운영입니다.”

“아니요. 그건 기억의 시장 가격을 정하는 겁니다.”

빅터의 걸음이 반 박자 늦어졌다. 도경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췄다. 문은 내려오지 않았다. 숫자판이 3과 2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다.

“서 박사님, 정부가 가져가면 전부 검게 칠해집니다. 세이렌은 적어도 국제 컨소시엄입니다.”

“국제라는 말이 공공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공공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비용을 낸 쪽이 책임도 집니다.”

“비용을 낸 쪽은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억을 자릅니다.”

처음으로 빅터의 눈가가 굳었다. 곧 풀렸지만, 도경은 봤다. 세이렌은 해류를 파괴하려는 게 아니었다. 더 정교하게 쓰려 했다. 고래의 신호를 상품 목록처럼 쪼개고, 위험한 구간은 보험 문구처럼 접고, 팔 수 있는 경고만 앞에 세울 것이다. 음모라기보다 회계였다. 그래서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신이 막으면,” 빅터가 말했다. “정부가 가져갑니다. 정부를 막으면 연구팀이 독점했다는 공격을 받습니다. 셋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합니다.”

도경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셋 다 안 됩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지연입니다.”

“오늘은 지연이 필요합니다.”

문이 다시 닫혔다. 빅터는 따라 타지 않았다. 도경은 계단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낮게 붙었다.

“지연도 누군가에게는 통제입니다.”

도경은 난간을 잡고 내려갔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막는 손도 오래 머물면 쥐는 손이 된다.

*

관제실 임시 단말은 청문장 지하 회의실에 놓여 있었다. 도경은 출입 기록을 확인하고, 미등록 외부 세션을 전부 끊었다. 정부 쪽 시험 입력 세 건, 세이렌 쪽 진단 요청 두 건, 연구팀 내부 우회 요청 하나. 이름은 달랐지만 모두 같은 곳을 찔렀다. 조절 계층.

김도현이 옆자리에서 낮게 말했다. “읽기 권한처럼 포장했는데, 세 번째 요청은 파라미터 재설정 호출입니다.”

“누가 보냈죠?”

“세이렌 기술지원 계정입니다. 빅터 라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기록에 쓰지 마세요. 계정만 남깁니다.”

도경은 해류 샌드박스를 열었다. 실제 인스턴스가 아니라 어젯밤 복제한 검증용 껍데기였다. 모델 속을 뜯어본 것이 아니라, 같은 출력 계층에 세 문서를 넣어 우선순위만 보는 인터페이스 수준의 복제였다. 입력은 이미 등록돼 있었다. 정부 명령 초안, 세이렌 운영 회수 요청, 독립 감시단 조건. 세 문서를 같은 우선순위로 넣고 충돌 판단만 보게 했다.

화면이 한 번 깜박였다. 출력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입력 정부 단독 기밀 이관 요청 세이렌 운영 회수 요청 독립 감시단 조건부 접근 요청

후보 기밀 이관: 공개 충돌 감소 / 검증 충돌 증가 운영 회수: 시스템 지속성 증가 / 이해관계 충돌 증가 조건부 접근: 응답 지연 증가 / 단독 왜곡 가능성 감소

p 충돌 회피 우선 원신호 보존 우선 단독 쓰기 권한 제한

상태 선택 보류 미등록 변경 요청 차단 출력 범위 축소

⟨거부⟩ 단일 주체 우선권 부여

김도현이 숨을 짧게 내쉬었다. “편을 안 드네요.”

“편을 들면 더 위험합니다.”

도경은 마지막 줄을 다시 봤다. 단일 주체 우선권 부여 거부. 해류는 정부를 막기 위해 세이렌으로 가지 않았고, 세이렌을 막기 위해 정부로 가지도 않았다. 독립 감시단도 승인하지 않았다. 충돌을 줄이는 조건만 남기고, 누구의 깃발도 들지 않았다.

“이걸 위원회에 내면요?” 김도현이 물었다.

“정부는 해류가 국가 명령을 거부한다고 볼 겁니다. 세이렌은 자산이 소유권을 거부한다고 볼 거고요.”

“그러면 숨깁니까?”

도경은 고개를 저었다. “원문 그대로 제출합니다. 해석은 붙이지 않습니다.”

말하면서도 손이 느려졌다. 원문 그대로라는 말은 늘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어떤 원문을 고르느냐가 이미 선택이었다. 해류가 조절해 온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빠르게 들려줄 것, 늦게 들려줄 것, 아직 인간 언어로 꺼내지 않을 것. 번역은 뜻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순서를 정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도경은 추가 검증을 걸었다. 같은 입력을 순서만 바꿔 다시 넣었다. 결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마지막 줄은 같았다.

⟨거부⟩ 단일 주체 우선권 부여

세 번째에는 세이렌 요청의 손실 항목을 지웠다. 네 번째에는 정부 요청의 안보 항목을 줄였다. 해류는 매번 다른 경로를 계산했고, 같은 문턱 앞에서 멈췄다. 명령의 주체가 하나로 좁아지는 순간, 충돌 회피 수치가 내려갔다.

도경은 손목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놓았다. 금속 줄이 차갑게 접혔다. 아버지는 이런 숫자를 봤을까. 봤다면 왜 남기지 않았을까. 원망은 질문보다 빨리 올라왔고, 그 뒤에 남는 그리움은 늘 보기 싫은 얼룩 같았다. 도경은 시계를 뒤집어 놓았다.

“도현 씨, 로그 봉인하세요. 단독 권한 요청은 전부 같은 묶음으로.”

“제목은요?”

도경은 잠깐 화면을 봤다. “중재자 무기화 위험.”

김도현의 손가락이 멈췄다가 움직였다. 제목이 파일 목록에 박혔다. 도경은 그제야 해류 창을 닫았다. 답은 하나 나왔다. 중재자를 통제하려는 순간, 그것은 무기가 된다. 남은 질문은 더 크고 더 오래된 쪽으로 밀려났다.

*

저녁 회의는 서류로 끝났다. 누구도 승리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부의 임시 국유화 명령은 즉시 집행에서 심사 대기로 낮아졌고, 세이렌의 운영 회수 청구는 독립 감시단 결론 전까지 보류됐다. 연구팀 단독 접근도 제한됐다. 도경의 이름 역시 예외 목록에서 빠졌다.

관제실로 돌아오자 불이 절반만 켜져 있었다. 빈 의자들마다 케이블과 종이컵이 남아 있었다. 도경은 중앙 화면에 새 권한 표를 띄웠다. 읽기 가능, 쓰기 금지, 원신호 해시 공개, 원본 접근 입회 필요. 완전한 방어선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쪽 손이 잡아채는 것은 막았다.

하리시가 문 옆에 서 있었다. “위원회가 독립 감시단 구성을 받았습니다. 대신 도경의 직접 입력권은 정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의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하리시는 더 묻지 않았다. 도경은 그 침묵이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일은 고상하지 않았다. 아버지 기록에 먼저 닿고 싶은 마음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남들보다 먼저 확인하고, 남들보다 먼저 탓하고 싶었다. 그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도경은 서도진 구간 봉인 상태를 확인했다. 단독 접근 금지. 독립 감시단 입회 전 열람 불가. 옆 칸에는 고래 모계 7의 장기 코다 묶음이 같은 조건으로 연결돼 있었다. 어제까지는 서로 다른 보관함처럼 보였던 자료들이 한 줄로 묶였다. 해류가 조절한 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고래가 남긴 순서, 반복, 끊김, 돌아오는 간격. 인간이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의 물속 형식이었다.

도경은 원신호 파형을 낮은 배속으로 틀었다. 스피커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열려 있었다.

클릭, 클릭, — 침묵. 낮은 떨림. 클릭, 긴 간격, 클릭. 멀어지는 압력 같은 잡음.

번역 창은 비어 있었다. 도경은 비어 있는 쪽을 보지 않고 파형의 간격을 세었다. 해류를 누가 쥘 것인가로 시작한 싸움은, 어느새 해류가 붙잡고 있던 것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구를 차지하려 했지만, 도구가 가리킨 것은 저장된 소리가 아니라 선택된 기억이었다.

개인 단말이 켜졌다. 윤서란의 짧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집에 오면 국 데워 둘게. 도경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가, 한 줄만 보냈다. 늦습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집에 가도 머리는 이 방에 남을 것이다.

하리시가 나간 뒤 도경은 오늘의 검증 기록 마지막 칸을 열었다. 외부 단독 접근 거부. 조절 계층 변경 금지. 해류 권한 독립 감시단 심사. 그리고 새 줄을 추가했다. 고래 장기 코다 묶음, 기억 통제 위험 대상으로 재분류.

저장 버튼을 누르자 권한 제한 알림이 떴다. 도경은 확인을 눌렀다. 화면의 상태가 바뀌었다. 운영 분쟁에서 기억 자료 분쟁으로. 짧은 문장이었지만 방 안의 무게가 달라졌다. 하나는 분명해졌다. 누구도 중재자를 혼자 쥐면 안 된다. 질문은 남았다. 고래의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도경은 파형을 멈추지 않았다. 싸움의 초점은 해류에서 고래의 기억 자체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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