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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증거인가 자원인가

공청장 스피커가 첫 코다를 찢어 먹었다. 낮은 클릭 뒤에 붙은 침묵이 회의실 천장으로 번졌다가, 통역 장비의 잡음에 잘렸다. 도경은 손가락으로 재생 표시를 멈췄다. 원신호가 한 번 훼손되면, 그 뒤의 말은 모두 쉬워진다.

앞줄의 활동가가 먼저 일어섰다. 회색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는 자료철을 높이 들었다.

“이건 증언입니다. 사고 은폐와 해양 생태 손상의 증언. 살아 있는 개체가 보관한 기억이면, 법정에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세이렌 컨소시엄 대리인은 바로 마이크를 켰다. 넥타이핀에 새겨진 파도가 불빛을 받았다.

“증언이라고 부르려면 진술 주체와 확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현재로선 희귀 음향 패턴입니다. 녹음권과 재현 이용권을 분리해 관리해야 합니다.”

도경은 물병 뚜껑을 닫았다. 이용권. 단어가 나오는 순간 몇몇 위원의 펜이 움직였다. 살아 있는 기억이 계약서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였다.

정부 쪽 좌석에서는 더 짧았다.

“남쪽 해역의 좌표와 집결 조건이 포함된 자료는 안보상 민감합니다. 공개 범위는 부처 협의 뒤 결정합니다.”

하리시는 고개를 낮게 숙인 채 메모만 했다. 팀의 입장은 가장 마른 이름이었다. 연구자료. 검증 전 원시 관측값. 공개도 금지도 아닌 임시 저장소. 도경은 그 단어가 편한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연구자료는 쉽게 복사되고, 쉽게 이동하고, 누가 책임지는지 흐려진다.

위원장이 도경을 불렀다.

“서 박사님. 기술적으로는 무엇입니까.”

도경은 마이크를 당겼다. 입술 가까이 금속 냄새가 났다.

“기술적으로만 답하면, 같은 코다가 특정 장소 조건에서 과거 흔적을 현재 신호 위로 끌어올리는 현상입니다.”

“그러면 기록입니까?”

“기록이라고 부르면 보존 책임이 생깁니다. 자원이라고 부르면 채굴 권리가 생깁니다. 기밀이라고 부르면 당사자 접근이 막힙니다. 연구자료라고 부르면 책임자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세이렌 대리인이 웃음 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아무 이름도 붙이지 말자는 겁니까?”

“아니요. 이름을 붙이기 전에, 그 이름이 누구에게 권한을 주는지 먼저 적어야 합니다.”

공청장 뒤편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올라왔다. 위원장은 의사봉 대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 번 눌렀다. 도경의 화면에는 멈춘 파형이 그대로 있었다. 같은 침묵이 네 개의 이름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

복도는 회의실보다 더 시끄러웠다.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고, 법무 보좌관들이 답을 피해 지나갔다. 도경은 음향 로그가 든 단말을 품 안쪽으로 넣었다. 엘런이 벽에 기대 있다가 따라붙었다.

“방금 말은 보호 쪽으로 기운 거야.”

“기울지 않으면 세이렌이 먼저 가져갑니다.”

“검증자는 기울면 안 된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도경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유리벽 너머로 항만 모형이 보였다. 작은 배들이 투명한 수면 위에 고정돼 있었다.

“중립은 원신호에만 요구할 수 있어요. 해석에 붙는 제도는 중립이 아닙니다.”

엘런은 코트를 팔에 걸쳤다. “그 말도 정치적이야.”

“맞아요.”

짧게 답하자 엘런이 더 묻지 않았다. 도경은 빈 회의실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자동 조명이 늦게 켜졌다. 책상 위에 단말을 놓고 네 개의 문서를 나란히 띄웠다. 활동가들이 제출한 의견서, 세이렌의 권리 제안서, 정부의 비공개 요청, 연구팀의 검증 프로토콜.

같은 원신호를 붙였는데 밑줄 친 곳이 달랐다. 활동가 문서에는 긴 침묵 뒤의 반응이 표시돼 있었다. 살아남은 증언. 세이렌 문서에는 반복 가능한 패턴과 상업적 응용 가능성이 강조돼 있었다. 정부 문서에는 좌표와 집결 위험이 빈 구간으로 지워져 있었다. 연구팀 문서에는 신뢰구간과 관측 부족만 빼곡했다.

도경은 해류에 최소 질의를 넣었다.

입력: 동일 코다의 해석 차이 요약 후보: 법적 지위 미정으로 인한 목적별 재분류 p: 0.77 상태: 다의성 증가 ⟨보류⟩

“다의성 증가라.”

엘런이 화면을 읽고 팔짱을 꼈다. “번역이 애매할수록 다들 자기 언어로 가져가네.”

도경은 원신호를 낮게 재생했다.

클릭, 클릭, — 긴 끊김 낮은 맥동 클릭, — 클릭

활동가 쪽 번역안은 ‘남겨진 상처’에 가까웠다. 세이렌 쪽 감정 분석 보고서는 ‘반복 가능한 반응군’이라고 썼다. 정부 보안 문서는 ‘집단 이동 유도 가능 신호’라고 표시했다. 연구팀 내부 초안은 ‘장소 의존 재연 후보’였다.

하나의 코다가 네 개의 문장으로 갈라졌다. 어느 것도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나빴다. 거짓이라면 제거하면 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은 제도 안에서 오래 산다.

엘런이 의자를 빼 앉았다. “서 박사, 네 검증 보고서가 제일 위험할 수도 있어. 네가 반복 가능성을 인정하면 세이렌은 자원이라고 할 거고, 네가 위험을 인정하면 정부는 막을 거야.”

도경은 커서를 움직여 ‘중립 자료’라는 항목을 지웠다. 잠시 빈칸이 생겼다.

“그렇다고 모호하게 쓸 수는 없어요.”

“명확할수록 누군가의 무기가 돼.”

“모호하면 가장 돈 많은 쪽의 무기가 됩니다.”

엘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동의도 반박도 아니었다. 도경은 새 항목을 만들었다. ‘검증 결과의 사용 제한’. 문장이 법률가의 말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필요했다. 기억은 중립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기억을 부르는 절차도, 번역하는 문장도, 제출하는 표도 이미 방향을 갖고 있었다.

*

수조실의 조도는 낮았다. 직접 바다와 이어진 시설은 아니었지만, 이랑의 음향 중계가 들어올 때마다 바닥 진동이 달라졌다. 도경은 헤드셋을 쓰고, 네 명칭 자체가 아니라 각 명칭에 딸린 인간 행동을 코다로 재구성해 보냈다. 가져가는 손, 가리는 손, 되풀이해 요구하는 손,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손. 증언·자원·기밀·연구자료라는 단어는 도경의 화면에만 있었고, 바다로 내려간 것은 그 네 가지 행동의 형태였다.

해류가 중계 간격을 맞췄다.

입력: 인간 법적 분류어 4종에 대한 모계 7 반응 비교 후보: 대응 개념 불충분 p: 0.69 상태: 의미 압축 실패 ⟨보류⟩

도경은 원신호를 껐다. 말이 많을수록 닿지 않는 것들이 생겼다.

잠시 뒤 낮은 응답이 돌아왔다. 클릭은 짧고, 간격은 길었다. 수조 벽의 진동판이 미세하게 떨렸다.

클릭— 낮은 울림. 클릭, 클릭. 긴 멈춤. 낮은 하강음.

해류가 후보를 띄웠다.

입력: 모계 7 응답 후보: 나눔 불가 / 떼어냄 불가 / 함께 울린 것의 부분 소유 불가 p: 0.52 상태: 대응 불안정 ⟨보류⟩

도경은 ‘나눔 불가’를 오래 보았다. 인간 법정에서 나눌 수 없다는 말은 대개 소유권 다툼의 끝이었다. 그러나 이랑의 소리는 끝처럼 들리지 않았다. 더 가까운 것은 당혹이었다. 물결을 칼로 잘라 접시에 올리라는 말을 들은 쪽의 반응.

도경은 마이크를 켰다. “인간 기관들이 같은 울림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에 따라 접근권이 바뀝니다.”

해류가 문장을 낮은 패턴으로 압축했다. 도경은 정확한 번역인지 알 수 없었다. 응답은 늦었다.

울림은 수심을 따라 내려갔다가 되돌아왔다. 먼 거리에서 여러 몸이 같은 경계를 만지는 듯한 압력이 중계음을 흔들었다. 《여럿-하나》의 흔적이 풀렸다가 다시 묶였다. 지나간 것이 현재의 살을 빌려 올라올 때, 그것을 한쪽 손에 담아 가르는 개념은 붙을 곳을 찾지 못했다. 《깊이-시간》의 층은 소유자가 아니라 반복하는 몸들을 요구했다. 낮은 클릭이 끊겼다. 《부르지 않은 이름》처럼 아직 형태를 갖지 못한 답이 남았다.

도경은 헤드셋을 조금 내렸다. 관점이 돌아오자 수조실의 환기음이 먼저 들렸다. 해류 출력은 여전히 보류였다. 이랑도 정답을 준 것이 아니었다. 다만 곤혹은 분명했다. 인간 쪽에서 기억을 나누어 가지려는 방식이, 이랑에게는 기억을 망가뜨리는 방식과 구분되지 않는 듯했다.

아마라가 문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렸다. 들어오지는 않았다. 도경은 손으로 잠시 기다리라는 표시를 했다.

“모계 7, 재연을 요구하는 쪽과 보호하려는 쪽이 같은 원신호를 서로 다르게 씁니다.”

해류가 전달한 뒤, 짧은 맥동이 돌아왔다.

입력: 후속 응답 후보: 부르는 자와 가져가는 자 구분 요구 p: 0.47 상태: 신뢰 낮음 ⟨보류⟩

도경은 그 낮은 확률을 지우지 않았다. 부르는 자와 가져가는 자. 인간 법에는 요청권과 이용권이라는 말이 있었다. 고래의 곤혹도 거기 어딘가를 찌르고 있었다. 같은 곤경이었다. 도경은 아버지의 방수시계를 주머니 안에서 한 번 눌렀다. 찾고 싶은 사람의 흔적도, 지켜야 할 씨족의 울림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다른 이름으로 팔릴 수 있었다.

*

저녁이 되자 공청 기록 접근 로그가 올라왔다. 세이렌 법무팀, 해양안보국, 시민연대, 연구재단. 같은 파일에 네 방향의 손이 닿아 있었다. 도경은 자동 동기화를 끊고 읽기 권한을 다시 묶었다. 늦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 닫아야 했다.

검증실 벽면에는 낮의 발언들이 텍스트로 정렬돼 있었다. 증거. 자원. 기밀. 연구자료. 도경은 각 단어 밑에 예상되는 다음 절차를 붙였다. 증거가 되면 제출 명령이 온다. 자원이 되면 독점 계약이 붙는다. 기밀이 되면 당사자에게도 가려진다. 연구자료가 되면 실험 반복 요청이 늘어난다.

모두 살아 있는 씨족을 움직이게 하는 길이었다.

도경은 자신의 보고서를 열었다. 문장은 깨끗했다. 관측망, 파형, 지연값, 장소 조건, 재연 가능성. 주관적 표현은 없었다. 그러나 깨끗한 문장이 깨끗하게 쓰인다는 보장은 없었다. 반복 가능성이라는 한 줄은 세이렌의 채굴권 논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 노출 위험이라는 한 줄은 정부의 전면 비공개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보호 절차라는 한 줄은 활동가들의 소송 전략에 붙을 수 있었다.

도경은 결론란 앞에서 멈췄다. 검증은 사실을 세우는 일이라고 배웠다. 지금은 사실을 세우는 순간, 사실을 가져갈 통로도 같이 세워졌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꺼내려는 도경의 질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손끝이 방수시계의 긁힌 뒷면을 만졌다가 떨어졌다. 오래 찾았다는 이유로 더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해류에 마지막 질의를 넣었다.

입력: 공청 후 재연 관련 위험 변화 후보: 접근 주체 증가 / 분류 경쟁 심화 / 집결 조건 추정 가능성 상승 p: 0.81 상태: 위험 증가 ⟨보류⟩

도경은 화면을 캡처하지 않았다. 캡처도 또 하나의 유통이었다. 대신 접근 기록 해시만 남기고, 원신호의 세부 좌표를 별도 격리 저장소로 옮겼다. 파일명에는 ‘보호 검토 전 공유 금지’라고 적었다. 인간 쪽 도구가 또 파일뿐이라는 점은 여전히 우스웠고, 조금 수치스러웠다.

하리시에게 보낼 보고 초안을 열었다.

재연 코다는 현재 단일 법적 지위로 처리할 수 없음. 소유권 이전 논의 중단. 접근 절차, 당사자 동의, 노출 책임을 먼저 정해야 함. 검증 보고서는 원신호와 분리 제출. 위치 조건은 비공개가 아니라 보호 사유와 함께 제한 공개.

도경은 ‘비공개’라는 말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 정부의 기밀과 같은 단어가 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위험이 실재하지 않으면 보호 주장은 구호가 된다. 실재해야 했다.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빨리 다가오는지 확인해야 했다.

도경은 공청장 녹취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재생했다. 찢어진 스피커 잡음 뒤로 원래의 코다가 아주 낮게 남아 있었다.

클릭, 클릭, — 긴 끊김. 낮은 맥동. 클릭.

같은 코다였다. 네 세력은 그것을 정반대로 불렀다. 그것만은 분명해졌다. 살아 있는 기억은 인간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 증거이면서 자원이고, 기밀이면서 연구자료가 될 수 있었다.

도경은 보고서를 저장하고 관측 대시보드를 열었다. 남쪽 해역의 저산소 경고 위에 미세한 생물 발광 데이터가 새로 겹쳐졌다. 아직 결론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적 다툼이 빈말인지, 바다가 이미 값을 치르고 있는지 확인할 표식은 생겼다.

살아 있는 기억은 곧 분할될 수 있었다. 통제될 수도 있었다. 도경은 좌표 없는 경고 지도 앞에 앉아, 먼저 바다가 실제로 변했는지부터 검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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