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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2/30

문틈의 바람

느티나무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소백은 대문 빗장을 들어 올리다 말고 마을 어귀를 보았다. 밤새 비를 머금은 흙이 아침볕을 받아 눅눅하게 말라 가고 있었다. 굵은 느티나무 줄기 옆에는 닭 한 마리가 흙을 파헤쳤고, 어젯밤 그림자처럼 서 있던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으니 더 눈에 걸렸다.

“뭘 그렇게 내다보냐.”

뒤에서 고진명의 목소리가 났다. 진소백은 괜히 빗장을 한 번 더 흔들었다.

“어제 그 사람 말입니다. 밤에도 거기 서 있던 것 같아서요.”

고진명은 물동이를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허리춤을 두드리는 손놀림은 평소와 같았다.

“밤에 쓸데없이 눈 부릅뜨고 있으면 눈만 버린다.”

“그냥 나무 그림자는 아니었습니다.”

“나무 그림자도 오래 보면 사람 흉내를 낸다.”

“사람도 오래 서 있으면 나무 흉내를 냅니다.”

고진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죽 먹기 전에 말대답부터 늘었구나.”

진소백은 입을 다물었다. 담장 너머 어둠은 늘 사람 모양을 만들었다. 빨랫줄도, 말뚝도, 휘어진 대나무도. 그래도 어젯밤의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의원 문 앞에서 기다리는 환자라면 문을 두드렸을 것이고, 길 잃은 나그네라면 물을 청했을 것이다.

“밥 안 먹을 거냐?”

“먹습니다.”

“대답만 하지 말고 쌀 씻어.”

아침은 묽은 죽과 짠 무김치였다. 고진명은 죽을 불어 먹으며 기침을 두 번 했다. 진소백이 물그릇을 밀어 주자, 그는 못 본 척 무김치를 집었다.

“오늘은 밭에 간다.”

“안개가 저렇게 꼈는데요?”

“그러니까 간다. 젖었을 때 드러나는 게 있다.”

약초밭은 마을 뒤 낮은 비탈을 조금 올라가야 했다. 밭이라 불렀지만 밭고랑은 반듯하지 않았고, 산자락에서 흘러 내려온 풀들이 약초 사이에 제멋대로 끼어 있었다. 고진명은 낡은 소쿠리를 진소백에게 넘겼다.

“오늘 쓸 것만 골라라.”

“무슨 약에 쓸 건데요?”

“네 눈에 먼저 물어 봐라.”

진소백은 쭈그려 앉았다. 잎에 맺힌 물방울 때문에 둥근 것도 길쭉한 것도 비슷해 보였다. 겉으로는 풀 한 포기였으나 손에 들어오면 달라졌다. 어떤 것은 열을 내리고, 어떤 것은 피를 멎게 하고, 어떤 것은 멀쩡한 사람의 속을 뒤집었다. 고진명은 풀을 사람처럼 보라고 했다. 얼굴만 보고 믿지 말고, 맥을 짚듯 줄기와 뿌리를 함께 보라고.

진소백은 잎 끝이 누렇게 탄 것은 제쳐 두고, 줄기가 곧되 너무 물러지지 않은 몇 포기를 골랐다.

고진명이 옆에서 내려다보았다.

“왜 그거냐.”

“물을 먹었는데 줄기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잎도 너무 번들거리지 않고요.”

“겉만 보는구나.”

“뿌리까지 보았습니다.”

“뿌리를 보았다와 뿌리를 안다는 다르다.”

진소백은 한 포기를 집어 들었다. 뿌리 끝에 흙이 단단히 붙어 있었다.

“이건 뽑다 말았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냄새가 덜합니다.”

“냄새가 덜하면?”

“덜 자랐거나 속이 상했거나요.”

“둘 중 무엇이냐.”

진소백은 손가락에 묻은 흙을 비볐다. 잘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잘라 보는 순간 그 풀은 오늘 쓸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고진명은 그 대답을 기다린 사람처럼 잠시 서 있었다. 진소백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럼 두고 가라.”

“확인도 안 하고요?”

“상처도 함부로 열면 덧난다. 모르는 걸 안다고 우기면 독을 약첩에 싸는 꼴이고, 모르겠다고 다 찢어 보면 의원이 아니라 백정이다.”

진소백은 말없이 흙을 다시 덮었다.

“사람도 그렇습니까?”

고진명이 다른 고랑으로 가다 말고 돌아보았다.

“뭐가.”

“겉은 멀쩡한데 속을 모르는 사람 말입니다.”

“강호에는 그런 놈이 풀보다 많다.”

그 말은 밭고랑 사이에 가볍게 떨어졌으나, 진소백의 귀에는 오래 남았다.

안개가 걷히자 아래쪽 마을 지붕들이 드러났다. 장터로 이어지는 길도 보였다. 이른 시각인데도 봇짐장수 둘이 벌써 느티나무 옆을 지나갔다. 한 사람은 등짐에 짚신을 매달았고, 다른 한 사람은 허리에 낡은 철척을 차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이 그 옆을 피해 뛰었다. 강호의 물건은 늘 먼저 길을 비키게 만들었다. 값싼 철이라도 몸에 매단 사람에게는 말이 조심스러워졌다.

고진명은 아래를 한 번 보았다가 다시 약초로 시선을 내렸다.

“오늘 장에는 네가 다녀와라. 종이랑 끈이 떨어졌다.”

“혼자요?”

“내가 네 나이 때는 낯선 동네에서 환자 피도 닦았다.”

“저는 종이 사러 가는 겁니다.”

“그러니 살아 돌아오겠지.”

오후 장터는 눅눅한 땅 위로 사람 소리를 올렸다. 콩을 파는 노파가 됫박을 두드렸고, 닭을 안은 사내가 값을 깎다 욕을 먹었다. 대장장이 아들은 숯 묻은 팔로 낫날을 내밀며 지나가는 농부를 붙잡았다. 주막 앞에는 먼 길 온 장사꾼 둘이 말린 국수를 씹고 있었고, 객잔 문기둥에는 지난달 현상방이 아직 붙어 있었다. 먹이 번져 얼굴은 흐렸지만 붉은 관인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그 종이 앞에서 괜히 목소리를 낮췄다.

“소백아, 고 의원님 허리는 좀 어떠시냐?”

말린 생선을 파는 최 노파가 물었다.

“늘 아프신데 늘 안 아프다 하십니다.”

“그 양반은 젊을 때부터 그랬다더라. 젊을 때 봤다는 놈마다 말이 달라서 문제지만.”

옆 좌판의 약장수가 끼어들었다.

“고 의원이 젊을 때 강남 표국하고도 오갔다던데. 손가락만 얹으면 독맥이 풀렸다나.”

“헛소리하지 마라. 표국 사람이 네 약이나 사 갔으면 네가 아직 여기 앉아 있겠냐?”

장터 사람들이 웃었다. 진소백도 종이 묶음을 고르며 웃는 척했다. 강호 이야기는 늘 그렇게 시작했다. 누가 어느 문파의 외문제자였다더라, 어느 객잔에서 흑도 둘이 술값 때문에 손목을 내놓았다더라, 먼 고을에서 불길이 났는데 그 밤에 살아 나온 자가 셋뿐이라더라. 절반은 거짓이고 절반은 부풀린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장터에 내려앉으면 사람들은 물건값보다 먼저 눈치를 셈했다.

진소백이 끈을 받아 품에 넣을 때였다.

주막 처마 밑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에 오래 묵은 봉분이 있다 들었소.”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장터의 소란 사이를 곧게 지나왔다.

진소백은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종이 묶음을 다시 고르는 척하며 눈끝으로 처마 아래를 보았다.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어제 의원에 온 자와 닮았다. 아니, 닮았다는 말보다 같은 기척을 입고 있었다. 장터를 지나는 사람들은 대개 어깨가 먼저 움직이고, 물건을 보느라 목이 흔들린다. 그 사내는 묻는 동안에도 발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처럼 옷자락에는 흙먼지가 묻었으나, 숨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허리에는 아무것도 번쩍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강호인은 때로 쇠붙이를 보이게 차고, 때로 일부러 숨긴다고 장터 사람들은 말했다. 숨긴 쪽이 더 값을 비싸게 친다는 말도 있었다.

주막 주인이 술독을 닦다 말고 웃었다.

“봉분이야 산에 많지요. 어느 집 선산 찾으시오?”

“비석이 없다고 하더군.”

웃음이 주막 처마 밑에서 끊겼다.

옆에서 엿을 자르던 사내가 칼질을 멈췄다. 콩 됫박을 들던 노파도 손을 늦췄다. 장터는 조용해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몇 사람의 소리가 빠졌고,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들렸다.

주막 주인은 걸레를 술독 가장자리에 걸쳤다.

“비석 없는 봉분이면 더 많습니다. 산이란 게 원래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품이 넓어서요.”

“길을 아는 자가 있소?”

“그걸 알아야 가르쳐 드리지요.”

주막 주인의 말끝이 가늘어졌다. 처마 밑에 앉아 있던 표객 하나가 술잔을 입에 댄 채 사내를 보았다. 그의 겉옷 가슴팍에는 낡은 표국 표식이 달려 있었다. 표객은 곧 눈을 돌렸지만, 술잔은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낯선 사내가 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구리 소리가 너무 또렷했다.

“길값은 내겠소.”

주막 주인은 동전을 보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길이 짧아서 돈 받을 일이 없습니다. 산길 잘못 들면 멧돼지 만나는 게 전부지요.”

“사람이 더 문제일 때도 있지.”

그 한마디에 처마 끝의 마른 고추가 바람을 맞아 부딪혔다. 딱딱한 소리가 장터 소란 위로 튀었다.

진소백은 종이 묶음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눌렀다. 오래 묵은 봉분. 비석 없는 무덤. 그런 것이 뒷산 어딘가에 있었나. 그는 약초밭 길과 물길은 알았지만, 무덤을 세어 본 적은 없었다. 죽은 자의 자리는 살아 있는 자가 자주 보지 않는다.

사내의 고개가 아주 조금 돌아갔다.

이번에는 분명히 진소백 쪽이었다. 얼굴은 여전히 그늘에 있었지만, 시선이 종이 좌판 위를 스친 뒤 진소백의 손에 머물렀다. 진소백은 손을 품 안으로 넣지 않았다. 넣는 순간 들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원에서 배운 것은 상처를 닫는 법이었지, 장터 한복판에서 강호인의 눈을 피하는 법이 아니었다.

“소백아, 이거 가져가라.”

종이 장수가 묶음을 내밀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진소백은 그제야 값을 치르고 몸을 돌렸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발은 저절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뛰지는 않았다. 뛰는 사람은 쫓기는 사람이고, 장터에서 쫓기는 사람은 구경거리가 된다. 진소백은 숨을 낮게 고르며 생선 좌판과 헌 솥 좌판 사이를 지나 의원 쪽 골목으로 빠졌다. 뒤에서 주막 주인의 웃음소리가 억지로 한 번 터졌다가 금세 묻혔다.

의원으로 돌아왔을 때 고진명은 마당에서 약초를 다듬고 있었다. 낮에 캔 것들이 멍석 위에 펼쳐져 있었고, 약칼이 잎과 줄기 사이를 조용히 오갔다. 진소백은 종이와 끈을 방에 들여놓고 나와 옆에 앉았다.

“늦었다.”

“끈이 비쌌습니다.”

“끈이 비싸면 네 걸음도 비싸지냐?”

진소백은 약초 하나를 집었다. 고진명이 약칼 등으로 그의 손등을 살짝 밀었다.

“그건 아직 물기 안 빠졌다. 손대지 마라.”

“아까는 저보고 고르라더니요.”

“고르는 것과 망치는 건 다르다.”

그 말투가 평소와 같아서 진소백은 잠시 장터 일을 삼킬 뻔했다. 그러나 처마 밑에서 동전이 놓이던 소리와, 장터 사람들이 말을 거두던 순간이 혀 밑에 남아 있었다.

“고진명 스승님.”

고진명의 약칼이 잎맥 위에서 멎었다.

“왜.”

“이 근처에 비석 없는 오래된 봉분이 있습니까?”

바람이 멍석 끝을 들었다 놓았다. 고진명의 손가락은 약초를 누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무덤이야 있겠지.”

약칼이 다시 움직였다. 잘린 줄기가 한쪽으로 밀렸다.

“장터에서 누가 물었습니다. 길을 아는 사람이 있냐고요.”

“누가.”

“어제 의원에 온 그 사람 같았습니다.”

“같았다?”

“이번엔 더 가까이 봤습니다. 발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장터 사람 같지는 않았고요.”

고진명은 다듬은 약초를 바구니로 옮겼다. 손놀림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진소백이 보기에는 평소와 거의 같았다. 거의.

“강호에는 장터 사람처럼 걷는 자도 있고, 장터 사람 아닌데 장터 사람 흉내 내는 자도 있다.”

“그럼 그자는 어느 쪽입니까?”

“네가 물어본 게 아니냐.”

“저는 의원 견습입니다. 사람 맥은 짚어도 그런 건 모릅니다.”

“맥도 모르면 죽이고, 사람도 모르면 죽는다.”

진소백은 고진명의 옆얼굴을 보았다. 주름진 입가는 투덜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눈은 멍석 위 약초가 아니라 그 너머 빈 마당에 붙어 있었다.

“그 봉분을 찾으면 안 되는 겁니까?”

“찾아야 할 까닭이 없으면 안 찾는 게 낫다.”

“그 사람이 돈까지 놓았습니다.”

“돈은 길을 사기도 하고 입을 막기도 한다.”

“주막 주인은 받지 않았습니다.”

“잘했군.”

고진명은 짧게 말했다. 칭찬인지 중얼거림인지 알기 어려웠다.

밤이 내려앉을 때까지 환자는 오지 않았다.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평소라면 장 끝난 뒤 술기운에 넘어진 농부 하나쯤은 코피를 들고 왔고, 아이 배앓이를 안고 오는 아낙도 있었다. 그날은 개 짖는 소리만 멀리서 끊겼다 이어졌다.

밥상을 치운 뒤 고진명은 약장 앞에 앉아 마른 약재를 병에 나누어 담았다. 진소백은 옆에서 종이를 잘랐다. 등잔불이 약장 칸마다 붙은 작은 글씨를 누렇게 흔들었다. 감초, 천궁, 백지, 독활. 이름들은 얌전했으나 병 안에 든 것들은 저마다 성질이 달랐다.

고진명이 먼저 물었다.

“장터에서 또 무슨 얘기 들었냐.”

진소백은 종이를 접으며 말했다.

“표객들이 먼 고을 얘기를 했습니다. 술 마시면 늘 나오는 옛 불길 이야기라고요.”

“어느 먼 고을.”

“사람들이 낙양이라고 했습니다.”

약재가 병 안으로 떨어지던 소리가 끊겼다.

이번에는 진소백도 놓치지 않았다. 고진명은 손에 쥔 약재를 병 입구 위에 둔 채 잠깐 멈춰 있었다. 마른 조각 몇 개가 손가락 사이에서 새어 나와 병 밖에 흩어졌다. 등잔불이 흔들리며 병 그림자를 벽에 길게 붙였다.

“방금 멈추셨습니다.”

고진명은 흩어진 약재를 주워 병에 넣었다.

“나이 들면 손이 멈춘다.”

“낙양이 뭡니까?”

“지명이지.”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럼 알았구나.”

진소백은 잘라 둔 종이를 내려놓았다.

“고진명 스승님은 제가 모르는 걸 물으면 보통 더 캐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왜 덮으십니까?”

고진명은 병뚜껑을 닫았다. 뚜껑이 맞물리는 소리가 작게 났다.

“상처에도 덮어야 나을 때가 있다.”

“썩으면요?”

“그때는 연다.”

“지금은 아닙니까?”

고진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병을 꺼냈다. 손놀림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러나 진소백은 방금 흩어진 약재 조각들이 약장 아래 어둠 속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고진명이 못 본 것이 아니라, 줍지 않은 조각이었다.

“오늘 밤은 대문 한 번 더 살펴라.”

“누가 옵니까?”

“바람이 온다.”

“바람은 빗장 안 보고도 들어옵니다.”

“그래서 더 살피라는 거다.”

말은 평소처럼 비틀렸지만, 진소백은 웃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의원의 낡은 나무문이 바람에 얇게 울었다. 고진명은 안쪽 방으로 들어갔고, 진소백은 등잔을 낮춘 뒤 마루로 나갔다. 하늘에는 구름이 얇게 끼어 별이 드문드문했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는 줄기보다 그림자가 먼저 보였다.

대문 빗장은 제대로 걸려 있었다.

진소백은 손을 얹어 확인했다. 나무는 차가웠고, 쇠고리는 제자리에 있었다. 담장 너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바람이 발치에서 올라왔다.

진소백은 고개를 숙였다.

대문 안쪽, 빗장 아래의 흙이 조금 흩어져 있었다. 낮에 마당을 쓸었으니 남아 있을 리 없는 흙이었다. 굵은 모래알 사이에 젖은 풀잎 하나가 눌려 있었다. 약초밭에서 보던 잎과 달랐다. 산길 가장자리에서 신발 밑에 묻어 들어오는 질긴 풀잎이었다.

대문은 잠겨 있었다.

흙은 안쪽에 있었다.

진소백은 손끝으로 그 풀잎을 집으려다 멈췄다. 덜 자랐는지 속이 상했는지 모르는 풀을 함부로 캐지 말라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허리를 낮춘 채 빗장과 문틈을 살폈다. 문에는 긁힌 자국이 없었다. 쇠고리도 휘지 않았다. 다만 문짝 아래쪽, 사람 발끝이 스쳤을 법한 곳에 아주 옅은 진흙 자국이 길게 끌려 있었다.

밖에서 안으로.

진소백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약초밭의 젖은 풀 냄새도, 장터의 마른 고추 냄새도 아닌 서늘한 흙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안쪽 방에서 고진명의 기침 소리가 한 번 났다.

진소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빗장에 손을 얹은 채 마당 어둠을 보았다. 약장 쪽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도 등잔을 꺼 둔 방 안에서, 병 하나가 아주 작게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딸깍.

바람만으로는 나기 어려운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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