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문
부서진 문짝 사이로 밤비가 들이쳤다.
비는 멎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진 물이 바닥에 튀고, 깨진 문살에 매달린 물방울이 등불 빛을 받아 잠깐씩 희게 번쩍였다. 젖은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약 냄새 위로 덮였다.
진소백은 약장 앞에서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들리던 의원 안에, 부서진 문이 내는 삐걱거림이 길게 남았다. 문 밖에는 낮에 왔던 사내 셋이 서 있었다. 비에 젖은 옷자락이 몸에 달라붙어 있었고, 발밑으로 검은 물이 고였다.
고진명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진소백의 어깨를 붙잡아 등 뒤로 밀었다. 힘이 세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닿은 자리가 뜨거운 듯했고, 진소백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뒤에 있어라."
그 말은 낮고 짧았다.
가장 앞의 사내가 문턱을 넘었다. 젖은 신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다. 그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진소백은 그 손끝을 보았다. 칼날이 등불 빛을 먹고 어둡게 빛났다.
고진명이 앞으로 나섰다. 진소백은 스승이 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팔을 크게 휘두르지도, 몸을 날리지도 않았다. 고진명은 다가오는 사내의 손목 안쪽을 두 손가락으로 짧게 눌렀다. 이어 팔꿈치 아래를 가볍게 밀었다. 칼을 쥔 손이 이상하게 꺾였다. 사내의 어깨가 따라 돌아가고, 중심이 무너졌다. 그는 자기 발에 걸린 사람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칼이 바닥에 떨어지며 처방철 밑으로 미끄러졌다.
진소백은 숨을 삼켰다.
왜 저기를 건드렸지.
그곳은 다친 사람의 맥을 짚을 때도, 침을 놓을 때도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손가락 두 개로 사람 하나가 무너지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고진명의 손은 늘 약초를 고르고, 붕대를 감고, 아이의 이마를 짚던 손이었다. 방금 그 손이 사내의 팔을 접어 바닥에 박았다.
두 번째 사내가 곧장 들어왔다. 그는 말없이 의자 하나를 발로 찼다. 의자가 날아와 약탕기 받침에 부딪쳤고, 뜨거운 잿불이 낮게 튀었다. 고진명은 몸을 비켜 의자를 흘리고, 사내의 가슴께로 다가갔다. 너무 가까웠다. 진소백이 보기에는 맞을 거리였다. 그러나 고진명은 주먹이 들어오기 전에 사내의 손목을 아래로 꺾고, 다른 손으로 겨드랑이 가까운 곳을 눌렀다. 사내의 숨이 컥 하고 끊겼다. 고진명이 발끝으로 그의 발 안쪽을 툭 건드리자, 사내는 무릎부터 꺼졌다.
"노인장."
문가에 남은 사내가 처음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는 비가 묻어 있었다.
"더 번거롭게 하지 마시오."
고진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사내를 끝까지 누르지 않았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진소백을 더 등 뒤에 숨겼다. 그때 진소백은 스승의 어깨가 한번 크게 들리는 것을 보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였다. 짧지만 거칠었다.
세 번째 사내가 들어오자, 먼저 넘어졌던 사내도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오른손을 털어 보더니 왼손으로 칼을 주웠다. 손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셋이 좁은 의원 안에 퍼졌다. 약장, 진찰상, 화로, 벽에 걸린 마른 약초 꾸러미. 진소백이 매일 다니던 길들이 갑자기 막혔다. 문 밖으로 빠질 틈은 있었지만 고진명의 등 뒤였다. 저녁에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산길로 가라. 뒤돌아보지 말고. 진소백은 발을 떼지 못했다.
앞의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고진명은 오른쪽 사내의 팔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기며 몸을 틀었다. 그 사내의 칼끝이 옆 사내의 소매를 스쳤다. 고진명은 그 틈에 낮게 숙여 발을 옮겼다. 손바닥이 첫 사내의 턱 아래를 지나 목덜미 옆을 스쳤고, 사내의 고개가 한쪽으로 꺾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늦었다. 왼쪽에서 들어온 손이 고진명의 옆구리를 쳤다. 칼등인지 주먹인지 진소백은 보지 못했다. 둔한 소리와 함께 고진명의 몸이 흔들렸다. 그는 쓰러지지 않았지만, 오른손이 한순간 내려갔다. 그 손가락 끝이 떨렸다.
"스승님!"
"뒤로!"
고진명이 외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진소백은 뒤로 물러나다가 약장 모서리에 부딪쳤다. 작은 서랍들이 흔들렸다. 낮에 약재를 갈아 넣어 둔 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매운 냄새 때문에 코끝이 아리던 가루였다. 눈에 들어가면 한참 눈물이 나는 물건이라, 고진명은 늘 조심하라고 했다.
앞에서는 고진명이 다시 셋 사이에 섰다. 그는 오른손을 아끼고 있었다. 왼손만으로 사내의 팔을 밀고, 어깨로 부딪치고, 발을 옮겨 길을 막았다. 조금 전보다 움직임이 무거웠다. 한 번에 사람을 눕히던 손끝이 이제는 상대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숨소리도 더 커졌다.
진소백은 서랍을 열었다. 작은 종이봉투가 손에 잡혔다. 손끝이 떨려 매듭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봉투를 찢었다. 매운 가루가 손바닥에 쏟아졌다. 화로는 진찰상 옆에 있었다. 잿불이 아직 살아 있었다. 진소백은 몸을 낮추고 약장 옆으로 움직였다. 바닥의 빗물에 발이 미끄러질 뻔했다. 그는 넘어질 듯 몸을 잡고, 손에 쥔 가루를 화로 위로 던졌다.
푸스스.
작은 소리와 함께 회색 연기가 솟았다. 곧이어 매운 기운이 방 안에 퍼졌다. 진소백의 눈이 먼저 따가워졌다. 코 안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기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놈이!"
누군가 낮게 욕을 삼켰다. 사내 하나가 눈을 감고 뒤로 물러났다. 또 하나는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등불 빛이 연기 속에서 흔들렸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벽에 커졌다 작아졌다.
고진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사내의 손등을 밟듯 눌러 칼을 떨어뜨리고, 팔꿈치 바깥을 짧게 밀었다. 사내의 팔이 꺾이며 몸이 옆으로 열렸다. 고진명은 그의 가슴을 치지 않았다. 대신 허리 옆을 손바닥으로 밀어 중심을 빼앗았다. 사내는 약탕기 받침 쪽으로 넘어져 잿불을 흩뜨렸다.
두 번째 사내가 눈을 비비며 달려들었다. 고진명은 비켜서려 했지만 발이 늦었다. 칼끝이 그의 왼팔 소매를 찢었다. 붉은 선이 번졌다. 고진명은 이를 악문 얼굴로 사내의 손목을 잡았으나, 힘이 전처럼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두 사람의 팔이 공중에서 멈췄다. 떨리는 것은 사내의 팔만이 아니었다.
진소백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닦을수록 더 매웠다. 그래도 보아야 했다. 스승이 어느 쪽에 있는지, 칼이 어디서 오는지.
연기가 조금씩 흩어졌다. 사내들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하나가 약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칼끝으로 서랍을 찍어 열었다. 말린 뿌리와 종이봉투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다른 하나는 처방철이 놓인 탁자를 뒤집었다. 낡은 종이들이 젖은 바닥으로 흩어졌다.
"없다."
짧은 말이었다.
문가에 있던 사내가 방 안을 훑었다. 그는 고진명을 보지 않고 벽과 바닥, 약장 뒤 틈을 보았다. 그러다 등잔으로 손을 뻗었다. 진소백은 그 손을 보았다. 등잔을 집어 들려는 손. 불을 옮기기 쉬운 기름 먹은 심지. 마른 약초 꾸러미는 젖은 나무보다 빨랐다.
그들은 무엇을 찾으러 온 얼굴이 아니었다. 찾지 못한 뒤의 얼굴이었다.
고진명도 그것을 본 듯했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진소백 앞을 막았다. 왼팔의 피가 손끝으로 흘러 떨어졌다. 오른손은 여전히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진소백은 처음으로 스승의 등이 좁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항상 의원 전체를 가리던 등이, 지금은 낡은 옷과 젖은 머리카락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와는 상관없다."
고진명이 말했다. 사내는 등잔을 든 채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은 낮에도 들었소."
그뿐이었다. 칼을 잃었던 사내가 바닥에서 다른 칼을 주웠다. 셋이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한꺼번에 덮치지 않았다. 하나가 고진명의 시선을 붙잡고, 다른 하나가 옆으로 돌았다. 남은 하나는 등잔을 들고 약초 꾸러미 쪽에 섰다.
고진명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옆으로 도는 사내에게 몸을 던지듯 다가가, 무릎 위를 발로 막고 어깨를 밀었다. 사내가 균형을 잃었지만 완전히 넘어지지 않았다. 고진명이 이어 손목을 잡으려는 순간, 앞쪽 사내가 들어왔다.
짧은 금속 소리.
고진명이 팔로 막았다. 피가 더 튀었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사내의 손목 안쪽을 눌렀다. 하지만 그 손가락에 힘이 모자랐다. 사내는 이를 악문 얼굴로 버텼고, 고진명의 몸이 반 박자 늦게 밀렸다.
진소백은 그 반 박자를 보았다. 스승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조금씩 닳고 있다는 것을.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어깨가 내려앉고, 발을 옮길 때마다 젖은 바닥에 발끝이 미끄러졌다. 손이 닿으면 상대가 무너졌지만, 닿기 전까지의 거리가 점점 길어졌다.
"소백아."
이번에는 이름이 작게 불렸다. 꾸짖음도 부탁도 아니었다. 진소백이 오래 아픈 아이의 손을 잡고 밤을 새울 때 들었던, 숨을 아껴 쓰는 목소리였다.
그 순간 등잔을 든 사내가 손목을 기울였다. 불이 약초 꾸러미에 닿기 직전이었다. 진소백은 몸을 날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바닥의 젖은 처방지를 움켜쥐고 사내의 발목 쪽으로 던졌다. 종이는 아무 힘도 없었다. 하지만 사내의 눈이 잠깐 아래로 내려갔다.
고진명이 돌아섰다. 그는 다친 팔로 진소백의 옷깃을 잡았다. 진소백은 스승이 왜 자신을 잡는지 알기도 전에 몸이 끌려갔다. 고진명의 힘은 마지막까지 남겨 둔 것처럼 갑자기 거칠었다.
"가라!"
한마디였다. 진소백의 등이 부서진 문틀에 부딪쳤다. 이어 몸이 밖으로 밀려났다. 그는 문턱을 넘어 마당으로 나뒹굴었다.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때렸다. 손바닥에 진흙과 나무 가시가 박혔다.
그는 바로 일어나려 했다. 문 안쪽에서 고진명의 등이 보였다. 등불과 연기 사이에 선 그 등은 진소백을 향해 있었다. 스승은 돌아보지 않았다. 진소백을 밀어낸 팔이 아직 허공에 남아 있었다.
그때 옆에서 들어온 그림자가 고진명의 뒤에 붙었다.
진소백은 소리치려 했다. 목이 막혔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둔한 소리가 났다.
고진명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한 손이 허공을 짚으려 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등불 빛이 그의 옆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진소백은 스승의 눈을 보지 못했다. 다만 무릎이 먼저 꺾이는 것을 보았다.
고진명이 쓰러졌다.
진소백은 마당 흙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소리치려 해도 목이 막혔고, 달려들려 해도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담 그늘 아래, 빗물이 고랑을 이루며 흐르는 자리에 반쯤 잠겨 있었다. 빗물이 등을 타고 흘렀다.
방 안에서 세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들은 넘어진 서랍과 흩어진 종이를 마지막으로 헤집었다. 무언가를 찾는 손이었다. 그러나 곧 그 손들이 멈췄고, 낮은 한마디가 오갔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마을 아래쪽에서 개가 다시 짖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느 집 문이 열리는 소리,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빗속에 섞였다.
세 그림자는 서두르지 않았으나 지체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부서진 문으로 하나씩 빠져나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젖은 발소리가 흙길을 밟고 멀어졌다. 그중 누구도 마당 구석을 살피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들이 자신을 보지 못한 것인지, 보고도 지나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그 순간에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빗소리가 다시 마당을 채웠다.
진소백은 젖은 흙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서진 문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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