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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다르게 정리된 기록

긴급 검증 안건이 통과된 뒤, 엘런의 감사 권한으로 사고 보고서의 디지털 원본 계층까지 열람할 수 있게 됐다. 공개 스캔본과 마이크로필름만 보던 도경에게는 처음 열린 층이었다. 커서가 서명 필드 위에서 세 번 튀었다. 도경은 로그 뷰어의 확대율을 낮추고, 같은 문서의 원본 패킷 해시를 옆 창에 붙였다. 시스템실 공조음이 바닥 아래에서 길게 울렸다. 모니터 여섯 대가 낮은 열을 뿜었고, 엘런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은 채 손목만 움직였다.

"생성 시각과 승인 시각이 붙어 있어요."

"얼마나."

"17초."

엘런이 눈썹을 올렸다. 놀람보다 계산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보고서 본문 42쪽, 부록 9개, 현장 음향표 3개를 붙이고 결재까지 17초면 사람이 한 일이 아니거나, 사람이 보지 않은 거죠."

도경은 대답 대신 파일 속성을 다시 열었다. 공식 사고 보고서의 작성자는 당시 합동조사반 공용 계정이었다. 수정자는 다른 기관 파견 계정. 승인자는 해양안전국 임시 계정. 셋 모두 존재했지만, 셋 모두 너무 깨끗했다. 이름이 아니라 역할만 남은 손들.

"메타데이터는 증언이 아니에요." 엘런이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때 버릇을 남깁니다."

도경은 원자료 묶음의 타임스탬프를 보고서와 대조했다. 현장 중계선에서 올라온 음향 원자료는 사고 추정 시각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열람됐다. 공식 보고서는 그 열람 기록보다 먼저 완성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순서가 맞지 않았다.

"이건 유실이 아니네요."

"아직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엘런은 말끝을 끊고, 포렌식 도구의 결과 탭을 열었다. 문서 내부에는 복사된 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셀 너비가 부록 원본과 달랐고, 각주 번호가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사람이 수동으로 옮겼을 때 생기는 종류의 흠이었다.

"조작이라고 말하기엔 이릅니다. 대신 문서가 한 번에 작성된 게 아니라는 건 말할 수 있어요."

"공식본은 원자료를 따라 만든 게 아니고."

"원자료 일부를 뒤늦게 맞춰 넣었습니다."

도경은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눌렀다. 차가운 합판이 손톱 아래를 밀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화면 어디에도 없었다. 서도진은 탑승자 명단과 사망 추정자 목록에만 있었다. 그 줄을 보지 않으려 할수록 검은 글자가 더 또렷했다.

"서명 키는요."

"정상입니다. 키가 위조된 흔적은 없어요."

"그럼 누가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정리했다는 뜻이네요."

엘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무 급했습니다."

도경은 공식 보고서 첫 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결론 항목에는 '장비 결함에 따른 잠항 중 사고'라고 적혀 있었다. 원자료 폴더의 마지막 열람 시간은 그 문장보다 뒤에 있었다. 먼저 결론이 놓였고, 자료가 나중에 따라붙었다. 처음 요약의 '악천후 통신 두절'은 어느새 '장비 결함에 따른 잠항 사고'로 바뀌어 있었다. 같은 사건에 두 개의 직접 원인이 시차를 두고 붙었다. 재분류의 흔적이었다.

시스템실 문이 열렸다. 아마라가 태블릿을 든 채 들어왔다. 눈 밑에 오래 깨어 있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기관 경로 찾았어요?"

도경은 화면을 돌렸다.

"경로는 있어요. 문제는 순서예요."

*

아마라는 태블릿을 메인 화면에 연결했다. 기관별 접수 기록이 색으로 나뉘어 펼쳐졌다. 해양안전국, 연안수색본부, 대학 연구윤리위원회, 보험감정기관, 그리고 당시 장비 납품업체의 기술지원실. 선들은 서로를 향해 뻗다가, 중간마다 끊겼다.

"처음에는 실종 보고였어요." 아마라가 말했다. "그다음 구조 지연, 장비 결함 가능성, 그리고 갑자기 사고 종결."

"갑자기라는 말 빼요." 엘런이 바로 받았다. "시간으로 말합시다."

아마라는 숨을 짧게 내쉬고 파일을 확대했다.

"실종 접수 후 31시간 12분. 구조 가능성 평가가 닫히기 전에 사고 분류 코드가 먼저 바뀌었어요."

도경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코드 하나가 바뀌자 문서의 말투가 달라졌다. 수색은 조사로, 조사는 정리로, 생존 가능성은 추정 사망으로 접혔다. 사람이 사라진 일이 행정 칸 안에서 처리 가능한 사건이 되었다.

"누가 바꿨죠."

"해양안전국 재난처리실. 단독 결정은 아니고, 연안수색본부 의견서가 붙어 있어요. 다만 의견서 원본은 누락."

엘런이 키보드를 당겨 원문 번호를 조회했다. 결과는 빈 칸이었다. 삭제 표시도 아니었다. 이관 중 유실로 처리된 상태였다.

"모두 조금씩 밀었군요." 엘런이 말했다. "아무도 전체를 승인하지 않았고, 아무도 전체를 거절하지 않았어요."

아마라가 다음 문서를 띄웠다. 대학 연구윤리위 회신이었다. 사고 원인 판단은 관할 밖, 장비 결함 여부는 감정기관 소관, 현장 음향의 의미는 연구자료라 행정 판단에 부적합. 문장은 예의 바르게 서로의 손을 놓고 있었다.

도경은 그 예의가 싫었다. 화를 낼 곳이 없어서 더 나빴다. 누군가 도장을 찍었다면 따라가면 됐다. 그런데 여기에는 도장을 피한 자리만 줄지어 있었다.

"세이렌 자료는 어디서 들어와요."

아마라는 화면을 넘겼다. "장비 납품업체가 나중에 세이렌 컨소시엄에 인수됐어요. 당시 문서에는 세이렌 법인이 없습니다. 기술지원 로그도 별도 회사명이고요."

"직접 개입은 없다는 뜻이네요."

"기록상으로는 없습니다. 계약 당사자도 아니고, 결재선에도 없어요."

엘런이 고개를 들었다. "중요합니다. 세이렌을 넣으면 설명은 쉬워지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도경은 입술 안쪽을 한 번 눌렀다. 쉬운 설명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았다. 거기에 기대면 아버지를 빼앗은 얼굴 하나가 생긴다. 미워할 대상이 생기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하지만 화면은 그런 친절을 주지 않았다.

"그럼 여러 기관이 책임을 나눠 피한 거예요."

"피했다는 표현도 아직 강해요." 엘런이 말했다. "정확히는 각자 자기 관할 밖으로 밀었고, 마지막 시스템은 그것을 사고로 정리했습니다."

"결국 사고가 됐잖아요."

"예. 부정확하게."

아마라는 팔짱을 풀고 도경 쪽을 보았다. "우리가 잡은 건 이거예요. 미제를 끝내려고 한 흔적. 덮으려는 설계가 아니라, 빨리 닫으려는 행정."

도경은 화면 속 경로도를 다시 보았다. 화살표가 아니라 회피선 같았다. 서로 이어져 있지만 누구도 끝까지 쥐지 않은 선. 그 끝에서 서도진은 장비 결함 사고의 한 줄이 되어 있었다.

"교차 확인하죠." 도경이 말했다.

엘런이 바로 새 문서를 열었다. 아마라는 기관별 원본 요청 목록을 정리했다. 세 사람의 손이 다른 키보드 위에서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누구도 동맹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같은 문장을 지우고 같은 표현을 남겼다. 조작. 삭제. 은폐. 모두 보류. 부정확한 재분류. 남김.

*

"판정문으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엘런은 화면을 읽지 않고 말했다. 이미 머릿속에서 문장이 정리된 사람의 속도였다.

"공식 사고 보고서는 원자료 전체를 근거로 작성되지 않았다. 일부 자료는 결론 이후에 첨부되었고, 결재 경로는 기관 간 이관 과정에서 단절됐다. 그러나 서명 키 위조나 외부 법인의 직접 수정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도경은 '외부 법인' 부분을 가리켰다.

"세이렌이라고 명시해요."

"좋습니다. 세이렌 컨소시엄의 직접 개입 흔적은 없다."

문장이 입력되자, 도경은 잠깐 화면에서 눈을 뗐다. 기대가 하나 꺾이는 소리가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에 왔다. 도경은 펜을 잡았다 놓았다.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말은 잔인하지만 단단했다. 부정확한 행정에 묻혔다는 말은 더 헐거웠다. 헐거워서 빠져나갈 곳이 많았다.

"그럼 아무도 덮지 않은 건가요."

엘런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저장 버튼을 누르고, 버전 번호를 남긴 뒤에야 도경을 보았다.

"덮었다는 말은 의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건 의도가 아니라 절차 실패예요. 더 정확히는, 불확실성을 감당하지 못한 절차."

"20년 동안요."

"예. 부정확한 문장이 20년을 버틴 겁니다."

도경은 그 말을 받아 적었다. 부정확한 문장. 손글씨가 조금 기울었다. 서도진의 마지막을 사고라고 부른 문장 하나가 학교 서류, 보험 서류, 가족관계 처리, 연구 기록, 어머니의 침묵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정확한 거짓보다 부정확한 공식이 더 오래 산다. 아무도 다시 열지 않으면, 틀린 문장도 제도 안에서는 사실처럼 굳는다.

"원자료와 공식 기록이 다르다는 건 확정이죠."

"확정입니다. 차이의 성격은 재분류 오류. 혹은 미완성 사건의 조기 종결."

"오류라고 하면 너무 가볍습니다."

"그래서 부정확이라고 합시다. 가볍지도, 음모도 아닙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라기보다 항복에 가까웠다. 원하는 적을 얻지 못했다. 대신 더 다루기 어려운 물증을 얻었다. 공식기록은 원자료와 달랐다. 그 차이는 누군가의 완벽한 설계가 아니라, 여러 기관의 짧은 손과 급한 결론에서 생겼다.

아마라가 프린터에서 나온 비교표를 가져왔다. 종이는 따뜻했다. 도경은 첫 장을 들고, 표 맨 아래 행을 보았다. '복귀 절차 완료' 항목 옆에 원자료 대조값이 붙어 있었다.

미확인.

공식 보고서에는 완료로 되어 있었다. 원자료에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행, 다시 봐야 해요."

엘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복귀 절차?"

"지난번에 복원한 중계 로그요. 복귀 신호 지연. 공식본에는 닫혀 있었는데, 원자료에는 닫히지 않았어요."

아마라가 낮게 말했다. "그러면 사고 분류의 핵심 조건 하나가 비어 있습니다."

도경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구김이 생기면 안 될 것 같았다.

*

저녁이 되자 시스템실 조명은 더 하얗게 보였다. 아마라와 엘런은 기관 요청 문안을 고치러 나갔다. 도경은 혼자 남아 복귀 절차 행만 따로 뽑았다. 화면에는 두 개의 시간이 나란히 있었다. 공식 보고서의 복귀 완료 시각. 원자료의 마지막 자동 핑 수신 시각.

둘 사이에는 18분 44초가 있었다.

도경은 중계 로그를 재생했다. 스피커 볼륨은 낮췄다. 물속 장비가 보내는 짧은 전기음, 통신 지연으로 늘어지는 잡음, 빈 채널을 긁는 듯한 낮은 소리. 사고 기록에서는 잘려 나간 구간이었다. 원자료에는 남아 있었다.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결론에 넣지 않았다.

도경은 아버지 이름이 적힌 탑승자 목록을 열지 않았다. 대신 복귀 프로토콜 표를 옆에 띄웠다. 잠항 장비가 복귀를 시작하면 자동 핑 간격이 줄고, 수면 접근 신호가 붙는다. 그런데 마지막 구간에서는 간격이 줄지 않았다. 신호는 같은 깊이에 머문 것처럼 반복됐다.

사고가 아니라는 말은 아직 쓸 수 없었다. 장비가 고장 났을 수도 있고, 수신기가 흔들렸을 수도 있고, 기록 시간이 어긋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식 문장처럼 복귀가 완료됐다고도 쓸 수 없었다. 그게 오늘 얻은 답이었다.

도경은 새 파일을 만들고 이름을 붙였다. `return_delay_recheck`.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가, 한국어 메모를 첫 줄에 적었다.

복귀 완료 아님. 지연 또는 보류 상태.

두 번째 줄은 더 늦게 썼다.

서도진은 그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문장을 보고 있으니 윤서란의 서랍이 떠올랐다. 누렇게 변한 테이프, 검은 매직 자국, 닫히던 소리. 도경은 파일 저장 위치를 유품 조사 폴더로 바꾸었다. 문서가 가리키는 곳은 결국 물건이었다. 공식 기록의 틈은 종이 위에서 벌어졌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현장 물증이 답해야 했다.

도경은 비교표 세 장을 스캔해 증거 묶음에 넣었다. 메타데이터 이상, 기관 간 재분류 경로, 복귀 지연 재확인. 세 항목이 같은 폴더에 놓이자 흐릿하던 선이 좁아졌다. 여러 기관이 미제를 서둘러 사고로 정리했다. 세이렌의 손은 보이지 않았다. 조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부정확했다.

도경은 그 단어를 오래 보지 않고 닫았다. 오래 보면 용서처럼 보일 것 같았다. 부정확은 용서가 아니었다. 부정확은 틈이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아버지가 정해진 시각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올라왔다.

도경은 윤서란에게 보낼 메시지를 열었다가 지웠다. 지금 필요한 건 설득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상자 안에 현장 노트가 있든, 음성펜이 있든, 아니면 아무것도 없든 다음 검증은 그곳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로그를 외장 저장소에 복사했다. 완료음이 짧게 울렸다. 답은 바뀌었다. 공식 기록은 원자료와 달랐고, 그 차이는 음모가 아니라 서둘러 닫은 부정확이었다. 질문은 더 좁아졌다. 그렇다면 서도진은 무엇 때문에 그 18분 44초 동안 돌아오지 않았나.

도경은 비교표를 가방 안쪽에 넣고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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