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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손실되는 말

송출 스피커가 낮게 떨리자 난간의 물방울이 한쪽으로 밀렸다. 도경은 갑판 아래 수중 채널을 열고 출력 한계를 다시 낮췄다. 사람이 듣기엔 거의 아무것도 아닌 박동이었다. 물속에서는 달랐다.

“단순 반복. 세 박. 낮은 꼬리 없음.”

도경은 혼잣말처럼 확인하고 송출 버튼을 눌렀다. 어제 이랑이 남긴 짧은 코다에서 가장 덜 공격적인 부분만 떼어 냈다. 해류는 그것을 ‘접근 요청’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도경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요청은 너무 인간적인 말이었다.

클릭, 클릭 클릭 — 침묵

스피커가 멈췄다. 선체 진동만 남았다. 도경은 이어컵을 누르지 않았다. 손을 떼고 기다렸다. 마이크 게인은 바닥 소음을 간신히 넘는 지점에 묶어 두었다. 증폭하면 의미까지 커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커지는 것은 잡음이었다.

수심 322. 거리 463.

첫 응답은 늦게 왔다.

클릭 — 낮은 울림 클릭, 클릭 짧은 긁힘 — 긴 침묵 클릭

도경은 숨을 들이마시다 멈췄다. 방금 보낸 세 박이 그대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첫 박은 사라졌고, 낮은 울림이 중간에 끼었다. 끝에는 도경이 보내지 않은 단독 클릭이 붙었다.

입력: 인간 송출 코다/이랑 응답 후보: 반향 0.09, 경계 유지 0.22, 상호 표식 변형 0.31, 미분류 0.34 p: 0.34 상태: 응답 수신 ⟨보류⟩ 재구성 번역 신뢰도 부족

“반향은 아니야.”

도경은 파형을 겹쳤다. 왕복 시간과 주파수 꼬리가 맞지 않았다. 이랑이 돌려보낸 것은 복사가 아니었다. 답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했다. 누군가 문을 열어 준 게 아니라, 벽 반대편에서 금속을 한 번 두드린 정도였다.

도경은 두 번째 송출을 만들지 않았다. 같은 것을 더 세게 보내는 순간, 실험은 요구로 변했다. 대신 해류에 재구성 후보만 요구했다. 원신호에서 고래 쪽 패턴을 최대한 보존한 채, 인간 언어에 걸리는 부분만 표시하게 했다.

입력: 이랑 응답 단일 구간 후보: 《여럿-하나》/거리 유지/비동일 반복 p: 0.27 상태: 부분 대응 ⟨보류⟩ 인간 개념 대응 실패

도경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p값은 낮았다. 그런데도 손은 저장 키를 눌렀다. 첫 교환이었다. 실패라고 하기엔 닿았고, 성공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비어 있었다.

*

해류가 두 번째 패널을 열자 문장은 문장이 아니었다. 빈칸과 꺾쇠, 끊어진 개념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도경은 원신호를 다시 들었다. 이어폰 안쪽에서 낮은 울림이 늦게 흔들렸다.

입력: 응답 재분석/모계 7 방언/서도진 기록 제외 후보: 《여럿-하나》 — 0.29 《깊이-시간》 접촉 — 0.18 동일 개체 확인 — 0.16 경계 유지 — 0.15 상태: 의미 축 충돌 ⟨오류⟩ 단일 화자 가정 불안정

“단일 화자가 아니라고?”

도경은 질문을 입력하지 않았다. 해류는 질문의 모양에 잘 속았다. 사람이 묻는 방식이 이미 답을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원신호에서 클릭 간격만 따로 뽑았다. 세 박 사이의 간격은 한 개체의 호흡 리듬처럼 보였다. 하지만 낮은 울림은 다른 층을 지나왔다. 가까운 몸과 먼 몸이 같은 소리 안에 겹쳤을 가능성. 혹은 하나의 몸이 여러 거리의 흔적을 동시에 냈을 가능성.

그 말을 도경은 문장으로 만들 수 없었다.

클릭 — 낮은 울림 클릭, 클릭 짧은 긁힘 — 긴 침묵 클릭

입력: 클릭 간격/저주파 꼬리 분리 후보: 가까운 개체 표식 0.33 원거리 모계 응답 잔향 0.21 《여럿-하나》 0.24 p: 0.33 상태: 분리 불충분 ⟨보류⟩ 더 긴 상호작용 필요

도경은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갑판 바람이 젖은 장갑을 말렸다. 말릴수록 손가락 끝의 소금이 굳었다. 아버지 기록을 넣으면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20년 전 같은 표식과 묶으면 해류는 더 매끈한 후보를 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 이랑이 도경에게 돌려준 소리를, 서도진의 그림자로 먼저 덮고 싶지 않았다.

다음 줄은 더 나빴다.

입력: 재구성 번역 요청 후보: 너/우리/깊은 자리/아직 아님 이 거리/같은 흔적/닫지 않음 《부르지 않은 이름》/표면/오류 p: 0.19 상태: 자연어 변환 실패 ⟨오류⟩ 주어-목적어 대응 불가

도경은 화면 아래쪽을 손등으로 쓸었다. 터치가 먹지 않아 커서가 그대로 있었다. 너. 우리. 깊은 자리. 아직 아님. 너무 쉬운 단어들만 남아 더 위험했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조각은 가장 많이 손실된 뒤 남은 뼈일 수 있었다.

“자연어 금지.”

입력: 자연어 변환 비활성화 후보: 개념 표식/시간-거리 그래프/응답 벡터 p: 0.46 상태: 재표현 모드 전환

그래프가 올라왔다. 시간은 가로축이 아니었다. 해류는 수심과 반복 간격을 겹쳐 놓았다. 낮은 울림은 아래로 처졌고, 마지막 단독 클릭은 위로 튀었다. 도경은 그 그림을 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붙이지 못했다. 붙이는 순간 틀릴 것 같았다.

그래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랑의 응답은 도경의 세 박을 알아듣고 따라 한 것이 아니었다. 이랑은 다른 체계 안에서, 도경의 소리를 아주 작은 흔들림으로 받아 자기 방식의 자국을 냈다.

그 자국 대부분은 옮겨지지 않았다.

*

도경은 송출 목록을 새로 만들었다. 세 박 반복, 낮은 꼬리 추가, 침묵 길이 변경, 마지막 단독 클릭 삽입. 네 개의 후보 옆에 예상 간섭도를 붙였다. 가장 안전한 것은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내지 않으면 오늘 얻은 접점이 접점인지도 검증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송출은 이랑의 마지막 단독 클릭만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정했다. 사람의 문장으로 치면 인용에 가까웠지만, 도경은 그 말을 지웠다. 인용인지 모방인지 도발인지 고래에게 묻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클릭 — 침묵

스피커가 짧게 울렸다. 이랑은 바로 응답하지 않았다. 거리값이 458에서 멈췄다. 무인기 영상에는 회색 물과 부유물만 보였다. 도경은 손목의 시계를 보지 않았다. 화면의 타임코드만 봤다.

37초 뒤, 낮은 울림이 들어왔다.

— 낮은 울림 클릭 클릭, 클릭 — 침묵

입력: 인간 단독 클릭 송출/이랑 응답 후보: 접점 유지 0.37, 경계 조정 0.28, 미분류 0.24 p: 0.37 상태: 두 번째 상호작용 성립 ⟨보류⟩ 대화 판정 불가

도경은 ‘대화 판정 불가’ 줄을 삭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별표를 달았다. 대화라는 단어는 너무 넓고, 너무 편했다. 질문과 답, 나와 너, 의도와 이해가 한 줄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 지금 있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도경이 보낸 소리는 이랑의 체계 안에서 닳았다. 이랑이 돌려준 울림은 해류를 거치며 다시 닳았다. 도경이 읽은 것은 두 번 깎인 가장자리였다. 그래도 가장자리는 있었다. 완전히 지나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도경은 아버지의 파일명을 열었다가 닫았다. 서도진이 마지막에 무엇을 들었다고 믿었는지 묻고 싶었다. 원망은 그 질문을 밀어냈고, 그리움은 다시 끌어당겼다. 도경은 손톱 밑의 소금 결정을 엄지로 긁었다. 부서진 알갱이가 패널 위에 떨어졌다.

입력: 상호작용 누적 2회 후보: 공유 표식 후보: 마지막 단독 클릭 불안정 축: 《여럿-하나》, 《깊이-시간》 인간 측 의존 도구: 재구성 번역 상태: 접점 획득 ⟨보류⟩ 독립 검증 필요

독립 검증. 도경은 그 줄 앞에서 멈췄다. 지금 도경이 가진 독립은 원신호뿐이었다. 그러나 원신호만으로는 손실의 모양을 알 수 없었다. 해류 없이는 후보를 펼칠 수 없고, 해류를 쓰면 해류가 만든 길을 따라가게 된다. 어느 쪽도 깨끗하지 않았다.

“다음부터 원신호 우선. 해류는 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은 이미 해류의 그래프를 확대하고 있었다. 도경은 그 모순을 지우지 않았다. 오늘의 결론은 아름답지 않았다. 우리는 말하고 있지 않았다. 아주 멀리 떨어진 두 압력이, 같은 물에서 잠깐 서로를 스친 것이다.

그 스침 하나를 얻기 위해 도경은 기계에 더 깊게 기대고 있었다.

*

저녁이 오자 물속 잡음이 달라졌다. 표층 장비를 줄였고, 선체 아래 금속음도 한 단계 낮췄다. 도경은 세 번째 실험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내용이 아니라 주제를 바꿨다. 거리, 몸, 깊이 같은 표식은 피하고, 20년 전 기록에서 이랑이 반응했던 낮은 꼬리만 아주 약하게 넣었다.

아버지 파일을 직접 재생하지는 않았다. 도경이 만든 것은 원본의 복사도, 서도진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낮은 주파수의 형태만 떼어 낸 시험 신호였다. 그래도 손이 늦어졌다. 죽은 사람이 남긴 모양을 산 존재 앞에 놓는 일이 깔끔할 리 없었다.

“송출.”

낮은 꼬리가 물속으로 내려갔다. 클릭은 붙이지 않았다. 의미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의미를 줄인다고 책임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절차는 그뿐이었다.

— 낮은 울림 — 침묵

이랑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영상 오른쪽 끝에서 큰 몸이 각도를 틀었다. 멀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측면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아래로 기울었고, 꼬리지느러미가 천천히 접혔다.

수심 326. 거리 461. 응답 없음.

도경은 재송출 버튼에서 손을 뗐다. 한 번 더 보내면 닫힌 문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무례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입력: 낮은 꼬리 단독 송출 후보: 응답 거부 0.42, 관심 상실 0.18, 경계 상승 0.25 p: 0.42 상태: 상호작용 중단 ⟨거부⟩ 추가 송출 권장 안 함

“이 주제는 닫혔어.”

도경은 문장 끝을 낮췄다. 이유는 붙이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인지, 모계의 다른 신호 때문인지, 낮은 꼬리가 고래 사회 안에서 다른 자리를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모르는 이유에 이름을 붙이면 다음 실험이 망가진다.

도경은 로그에 세 줄을 남겼다. 단독 클릭에는 응답. 변형 반복에는 응답. 낮은 꼬리 단독에는 침묵과 자세 전환. 해류의 거부 표시도 함께 저장했다. 거부는 고래의 말이 아니라 해류의 권고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 권고를 무시할 근거도 없었다.

물속 화면에서 이랑은 아래쪽을 향한 채 머물렀다. 도경이 처음 확정했던 흰 삼각 무늬는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몸의 일부만 회색으로 떠 있었고, 그 주변의 부유물이 느리게 흔들렸다.

도경은 다음 실험 칸을 비웠다. 더 묻기 위해서는 이랑 하나만 보면 부족했다. 어떤 소리는 받아들여졌고, 어떤 소리는 닫혔다. 닫히는 기준은 개체의 변덕이 아니라 더 넓은 질서에 있을 수 있었다. 도경은 그 문장을 보고서에 쓰지 않았다. 아직 가설도 되지 못했다.

대신 상태만 바꿨다.

상호작용: 제한적 성립. 특정 저주파 주제: 접촉 거부. 다음 필요 자료: 모계 내부 응답 차이.

저장 표시가 떴다. 오늘의 답은 짧았다. 우리는 겨우 스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어떤 소리 앞에서는 이랑이 닫히는가.

도경은 송출 채널을 잠갔다. 물속에서는 아무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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