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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침묵하는 무리

음향대가 갑자기 비었다. 도경은 이어컵을 손바닥으로 눌렀다가 바로 떼었다. 장비 문제인지 확인하기 전에 수심 숫자가 먼저 흔들렸다.

수심 331. 거리 512. 주변 개체 여섯.

방금 전까지 이랑 주변을 얇게 채우던 클릭들이 사라졌다. 합창이라고 부르기엔 불규칙했지만, 몸들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낮은 박동은 있었다. 지금은 중간층만 도려낸 듯 비었다. 표층 잡음과 선체 진동만 남아, 물이 갑자기 넓어 보였다.

도경은 송출 채널을 열지 않았다. 어제 해류가 추가 송출을 권장하지 않았고, 이랑도 낮은 꼬리 앞에서 몸을 닫았다. 오늘은 듣는 쪽이었다. 듣기만 하는 것도 침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늦게 따라왔지만, 손은 이미 기록을 시작하고 있었다.

“무인기 삼 번, 방위 유지. 출력 올리지 마.”

화면 오른쪽에서 이랑의 흰 삼각 무늬가 잠깐 잡혔다. 그 곁에 붙어 있던 두 개체가 먼저 방향을 틀었다. 뒤따르던 세 개체가 간격을 좁혔다. 무리는 이동로를 바꾸었다. 먹이층 쪽이 아니었다. 우리 선박과 이랑 사이를 가르는 선이었다.

입력: 주변 개체 음향 중단/대형 개체 위치 변화 후보: 포식자 회피 0.12, 인간 장비 회피 0.28, 내부 신호 차단 0.33, 미분류 0.22 p: 0.33 상태: 합창 붕괴 ⟨보류⟩ 원인 판정 불가

도경은 방위도를 확대했다. 이랑은 같은 깊이에 머물렀고, 침묵한 무리는 반원을 그리며 위쪽으로 올라왔다. 올라온다고 해도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선체와 이랑 사이의 물을 먼저 점유하는 움직임이었다.

클릭 없음. 저주파 없음. 마찰음 없음.

소리가 없는데 방해가 보였다. 도경은 그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고래는 소리로만 남지 않았다. 몸의 간격, 회전 각도, 서로의 그늘이 모두 문장이 될 수 있었다. 도경이 가진 번역기는 그중 하나를 간신히 붙잡을 뿐이었다.

“접촉을 피하는 게 아니라 막고 있어.”

말이 낮게 나갔다. 누구에게 한 말인지 정하지 못했다. 이랑은 멀어지지 않았다. 침묵한 무리는 이랑 앞을 비켜 주지도 않았다. 큰 몸들이 느리게 교차했고, 물속 카메라에는 회색 벽이 몇 번 지나갔다. 그 벽 사이로 흰 삼각 무늬가 다시 사라졌다.

도경은 로그 첫 줄을 고쳤다. ‘주변 소음 감소’가 아니었다. ‘주변 개체 음향 중단 및 경로 차단.’ 단어를 바꾸자 상황도 바뀌었다. 이건 빈자리의 관측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빈자리의 관측이었다.

*

이랑은 깊이를 내리지 않았다. 도경은 그 점에 오래 걸렸다. 몸을 틀어 빠져나갈 수 있고, 더 아래로 내려가 무리를 떼어 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랑은 침묵한 반원 안쪽에서 느리게 머물렀다. 꼬리만 아주 작게 움직였다.

수심 334. 거리 548. 이랑 추정 개체 속도 1.2노트.

침묵한 무리의 첫 개체가 측면을 내밀었다. 카메라는 피부의 흰 흠집과 오래된 상처를 잡았다가 놓쳤다. 이어 두 번째 몸이 낮은 각도로 지나갔다. 둘은 이랑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비켜 선 채 이랑이 향하던 물길을 계속 좁혔다.

도경은 원신호를 세 겹으로 나눴다. 이랑 주변의 잔향, 침묵한 무리의 빈 구간, 멀리 떨어진 다른 모계 소리. 빈 구간은 분석하기 어려웠다. 없음을 측정하려면 있어야 할 기준이 필요했다. 어제까지의 패턴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오늘의 무리는 어제의 결여로만 읽혔다.

“기준을 어제 것으로 두지 마.”

입력: 현재 구간 독립 분석/과거 기준 제외 후보: 동시 침묵 0.41 위치 차단 0.36 이랑 단독 잔향 0.18 상태: 군집 간 상호작용 감지 ⟨보류⟩ 관계명 없음

관계명 없음. 도경은 그 줄을 그대로 두었다. 적대, 보호, 의식, 경고 같은 단어들은 너무 빨랐다. 그러나 대립은 보였다. 같은 물길에서 서로 다른 결정을 하는 몸들이 있었다. 하나는 남아 있고, 하나는 가로막았다.

클릭 — 긴 침묵 클릭, 클릭 — 낮은 흔들림

이랑 쪽에서 아주 약한 신호가 들어왔다. 어제의 마지막 단독 클릭과 닮았지만 같지 않았다. 도경은 자동 번역을 끄고, 파형만 올렸다. 그러자 침묵한 무리 중 가장 가까운 개체가 몸을 돌렸다. 소리는 여전히 없었다. 대신 이랑과 선박 사이에 있던 간격이 더 촘촘해졌다.

“반응했어.”

해류는 늦게 따라왔다.

입력: 이랑 약신호/주변 개체 위치 변화 후보: 응답 억제 0.26, 통과 차단 0.31, 내부 충돌 0.29 p: 0.31 상태: 의미 축 경쟁 ⟨보류⟩ 단일 모계 가정 부적합

단일 모계 가정 부적합.

도경은 손가락으로 그 문장을 가렸다. 가려도 이미 본 뒤였다. 고래를 하나의 오래된 지성처럼 묶어 말하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보고서, 강연, 세이렌의 홍보 문구, 환경 단체의 영상 자막.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쉽게 하나로 만든다. 보호해야 할 자연도, 두려워할 미지도, 모두 한 얼굴을 갖게 만든다.

물속 화면에는 얼굴이 없었다. 몸과 몸 사이의 압력만 있었다. 이랑은 신호를 냈고, 다른 무리는 소리 없이 막았다. 그 사이에서 도경의 장비는 의미를 잃은 채 숫자를 세었다.

도경은 표시명을 붙이지 않았다. 침묵한 무리, 그 정도만 임시로 적었다. 이름을 붙이면 아는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지금 아는 것은 더 적었다. 이랑과 그들은 같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이랑이 인간 쪽으로 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갑판의 발소리가 빨라졌다. 도경이 헤드셋을 벗자 바람보다 먼저 김도현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무인기 둘, 케이블 장력 올라갑니다.”

“회수하지 마. 깊이만 낮춰.”

“낮추면 선체 아래로 들어옵니다.”

“그럼 속도를 죽여.”

말이 끝나기 전에 경고음이 짧게 울렸다. 침묵한 무리 중 한 개체가 무인기 둘의 진행 방향을 가로질렀다. 충돌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가까웠다. 무인기 알고리즘은 안전회피를 시작했고, 회피 경로가 선박 음향 케이블과 겹쳤다.

도경은 패널을 잡아당겼다. 수동 조종 권한이 김도현에게 넘어가 있었다. “도현 씨, 좌현 십 도. 속도 절반.”

“좌현 십 도면 이랑 놓칩니다.”

“놓쳐. 장비 먼저 살려.”

수중 화면이 기울었다. 회색 몸이 지나가고, 부유물이 흰 점처럼 튀었다. 음향 케이블 장력이 한 번 더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도경은 이를 악물지 않았다. 턱에 힘을 주면 이어폰 안의 낮은 소리가 뼈를 타고 왜곡된다. 대신 손목을 책상 모서리에 붙였다.

입력: 무인기 회피/대형 개체 접근/케이블 장력 상승 후보: 우발 근접 0.17, 장비 차단 0.39, 이동로 압박 0.25 p: 0.39 상태: 탐사 교란 ⟨보류⟩ 공격 판정 불가

“공격은 아니야.”

옆에서 엘런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아직은.”

도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공격이라는 단어는 보고서에 들어가는 순간 현장을 바꾼다. 세이렌 참관인이 갑판 난간 쪽에서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노아 박은 젖은 바닥을 신경 쓰지 않고 가까이 왔다. 눈은 도경이 아니라 해류 패널에 박혀 있었다.

“저건 의도적 접근입니까?”

“장비를 방해하는 패턴입니다.”

“고래가 장비를 이해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렇게 쓰지 마세요.”

노아의 시선이 잠깐 도경에게 왔다. 웃지는 않았다. “저는 기록만 합니다.”

“기록이면 더 정확해야 합니다. 이해가 아니라 반복된 차단입니다.”

하리시가 뒤에서 끼어들었다. “세이렌 기록은 통제실 원본과 대조합니다. 현장 해석은 우리 쪽 승인 전까지 외부 공유 금지.”

노아는 태블릿을 내리지 않았지만 한 걸음 물러섰다. 권한의 줄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도경은 그 틈에 다시 음향 화면으로 돌아갔다.

무인기 둘은 안전 거리 밖으로 빠졌다. 대신 이랑의 표식도 잃었다. 카메라에는 침묵한 무리의 꼬리 하나가 마지막으로 잡혔다. 위로 오르지 않고, 옆으로 밀어내는 움직임이었다. 선박이 만든 소리의 가장자리를 따라 몸들이 지나갔다.

김도현이 숨을 길게 뱉었다. “장비 손상은 없습니다. 기록은 끊겼고요.”

“끊긴 것도 기록이야.”

도경은 곧바로 후회하지 않았다. 말은 정확했다. 다만 너무 아버지 같았다. 서도진은 실패한 구간에도 이름을 붙였다. 끊긴 선, 빈 주파수, 응답 없음. 도경은 어릴 때 그 단어들을 싫어했다. 집에 없는 사람의 변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같은 말을 쓰고 있었다.

패널 아래에 새 항목을 만들었다. 교란 구간, 장비 손상 없음, 이랑 추적 실패, 침묵 무리 차단 지속. 마지막 줄은 조금 늦게 썼다. 인간 접촉 거부 개체군 존재.

썼다가 개체군을 지웠다. 무리로 바꿨다. 아직 그들의 경계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

저녁이 되자 통제실 조명이 물빛을 잃었다. 도경은 혼자 남아 낮의 음향을 다시 열었다. 재생 속도를 낮추자 빈 구간이 더 선명해졌다. 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야 할 교환이 같은 순간마다 끊겼기 때문이다.

해류의 결과는 짧았다.

입력: 낮 구간 통합/이랑 식별 표식/침묵 무리 경로 후보: 단일 집단 내 변동 0.14 하위 무리 간 접촉 정책 차이 0.38 이랑 개체 특이 행동 0.22 미분류 0.19 p: 0.38 상태: 집단 균열 가능성 상승 ⟨보류⟩ 분열 축 불명

도경은 ‘정책’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해류가 인간 조직의 말을 빌려온 것이다. 고래에게 정책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차이는 있었다. 몸으로 확인했고, 장비가 밀려났고, 이랑은 가려졌다. 어제까지의 질문은 이랑이 왜 닫히는가였다. 오늘 질문은 더 넓어졌다. 누가 이랑과 인간 사이를 막는가.

도경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컵 안쪽에 말라붙은 갈색 선만 손끝으로 돌렸다. 아버지 기록을 열면 비슷한 공백이 있을지도 몰랐다. 서도진이 남긴 마지막 구간들. 구조 신호를 거부하고 남았던 사람. 모계와 접촉하려 했던 사람. 도경은 파일 목록 앞에서 멈췄다. 열지 않았다. 오늘의 고래를 다시 아버지의 사건으로 접어 넣으면, 낮에 본 몸들이 모두 낡은 의문에 종속될 것 같았다.

대신 낮의 영상을 하나씩 붙였다. 이랑의 흰 삼각 무늬. 그 앞을 가로막은 상처 많은 몸. 무인기 경로를 밀어낸 긴 꼬리. 소리가 없는 채로 움직인 반원.

평화로운 고래.

도경은 그 말을 빈 메모장에 썼다. 그리고 바로 지웠다. 평화롭다는 말은 인간 쪽에서 편한 거리로 붙인 이름이었다. 고래가 인간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인간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같지 않았다. 더구나 오늘 본 것은 받아들임의 반대에 가까웠다. 그들은 인간을 피한 게 아니라 이랑과 인간 사이를 끊었다.

해류 패널이 마지막 그래프를 띄웠다. 이랑의 약신호가 아주 얇은 선으로 남아 있었다. 그 위를 침묵한 무리의 이동선이 덮었다. 소리와 몸이 같은 지점에서 겹치자, 그래프는 검은 매듭처럼 보였다.

도경은 보고서 결론을 한 줄로 줄였다.

고래는 단일 접촉 주체가 아니다.

문장을 저장하자 화면 오른쪽 위에 완료 표시가 떴다. 손에 남은 건 하나였다. 인간 접촉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무리가 있다. 이랑은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실패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만든 끊김이었다.

도경은 마지막으로 원신호를 한 번 더 재생했다.

클릭 — 긴 침묵 클릭, 클릭 — 낮은 흔들림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합창이 끊긴 자리가 남아 있었다. 도경은 그 빈 구간에 표시선을 그었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축. 이 분열은 무엇을 기준으로 갈라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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