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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재현성이라는 문

마이크가 켜지자 천장 스피커가 짧게 울렸다. 도경은 손목 단말의 녹화 표시를 확인하고, 심의장 가운데 놓인 검은 탁자 앞에 섰다. 유리벽 너머로 통역 부스가 층층이 떠 있었다. 각국 위원들의 이름표 아래에는 새로 붙은 문구가 있었다. 비인간 기록·당사자성 특별심의부.

하리시가 의사봉 대신 화면 잠금 아이콘을 눌렀다. “오늘 절차는 법적 지위 심사의 예비 단계입니다. 대상은 고래 전승의 진실성이 아닙니다. 번역 절차가 재현 가능한가입니다.”

말이 끝나자 반대석에서 작은 소음이 번졌다. 세이렌 쪽 법률 대리인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 지난 폭로 이후의 오류 목록을 띄웠다. 동일 코다의 상이한 번역, 결측 구간 보간, 해류 모델의 사용자 개입 가능성. 숫자는 공격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모계 7의 기록을 당사자 진술로 다루려면,” 대리인이 말했다. “먼저 그 진술이 인간 측 프로그램의 산물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도경은 물컵을 잡지 않았다. 손이 움직이면 카메라가 잡았다. “동의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의미 해석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동일 원신호와 동일 전처리 조건에서 출력이 반복되는지부터 보겠습니다.”

엘런이 위원석 뒤쪽에서 팔짱을 풀었다. 반대편 증인석이었다. 도경 편이라고 불리기 싫어 스스로 그 자리를 택했다.

한 위원이 물었다. “반복되면 전승을 증거로 인정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반복은 문 하나입니다. 그 너머에 맥락, 당사자성, 피해 관련성이 따로 있습니다.”

하리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결정은 1단계입니다. 번역 재현성의 제한적 인정 여부. 이후 판단은 열지 않습니다.”

도경은 그 문장이 필요했다. 너무 많이 얻으려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첫 침묵의 지층은 물리 기록이었다. 그러나 전승은 소리였다. 소리는 번역기를 지나야 심의장 문법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번역기는 이미 한 번 의심받았다.

세이렌 대리인이 말했다. “서도경 박사는 원자료 접근권과 모델 운용권을 동시에 가진 사람입니다. 검증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입니다.”

“그래서 복제본을 격리했습니다.”

도경은 보안 담당자를 보았다. 투명 박스 안의 저장 장치 세 개가 봉인 띠를 달고 들어왔다. 심의장의 공기가 더 차게 느껴졌다. 청문은 이제 말에서 시연으로 넘어갔다.

*

첫 번째 복제본은 외부망이 끊긴 검증실에서 켜졌다. 벽면 화면에는 모계 7의 원신호 일부가 파형으로 놓였다. 도경은 파일명을 읽지 않았다. 검증팀이 만든 무작위 번호만 보였다. 두 번째, 세 번째 복제본도 같은 입력을 받았다. 셋 모두 해류의 공개된 안정판에서 분기한 모델이었다. 학습 갱신은 막혔고, 사용자 메모리도 비어 있었다.

엘런이 유리 너머에서 말했다. “전처리 로그부터.”

도경은 손짓으로 확대했다. 잡음 제거값, 수심 보정, 거리 감쇠 보정. 하나씩 잠금 표시가 붙었다. 여기서 조작하면 번역이 아니라 편집이었다. 그래서 값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원신호가 재생됐다.

클릭, 클릭, — 낮은 맥동 클릭, 클릭, 클릭 긴 정지 하강음, 끊김, 반복

복제본 하나가 먼저 출력했다.

입력: 모계 7 원신호 / 고정 전처리 / 격리 실행 후보: 하강 문턱 / 되돌림 실패 / 위치 기억 p: 0.61 상태: ⟨보류⟩

두 번째 화면이 뒤따랐고, 세 번째도 같았다. 후보도, 확률도, 상태 표시까지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았다. 방 안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지만 도경은 화면만 보았다. 같은 입력에 같은 출력. 그것은 의미가 맞다는 뜻이 아니었다. 소프트웨어가 일관된다는 것이지, 번역이 참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진짜 재현성은 다른 기관의 독립 구현이나 다른 장비 녹음에서 같은 구조가 나올 때 시작된다. 오늘 통과한 것은 그 최소 조건, 모델이 매번 다른 이야기를 지어내지는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엘런이 마이크를 켰다. “다른 구간.”

검증팀은 블라인드 묶음에서 다음 파일을 골랐다. 이번에는 결측이 많은 신호였다. 도경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발끝을 바닥에 눌렀다. 빈칸 많은 소리는 번역기의 약점을 드러냈다.

입력: 결측 원신호 / 고정 전처리 / 격리 실행 후보: 이동 중단 / 군집 이탈 / 원인 불명 p: 0.43 상태: ⟨오류⟩

세 복제본은 또 같았다. 그러나 상태는 오류였다. 세이렌 대리인이 바로 말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출력은 같지만 진술이 아닙니다.”

도경은 고개를 돌렸다. “맞습니다. 오류를 진술로 쓰면 안 됩니다.”

심의장 쪽 화면에 짧은 메모가 올라왔다. 반복성 있음. 해석 가능 범위 제한 필요. 불신의 벽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벽에 작은 선이 생겼다.

엘런이 다시 물었다. “동일 출력은 운용권자의 영향이 없었다는 최소 조건이지, 고래가 그렇게 말했다는 증거는 아니야. 그 차이를 보고서 첫 줄에 넣을 수 있나?”

“넣겠습니다.”

도경은 답을 짧게 했다. 엘런의 질문은 공격이었고, 동시에 통로였다. 통로를 통과하려면 방어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하리시가 시연 종료를 알렸다. “특별심의부는 제한 조건부로 재현성 자료를 접수합니다. 최종 증거능력은 별도 심리로 미룹니다.”

도경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부분 입증. 그 단어만 남았다. 완전한 신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번역을 모두 버리라는 말은 잠시 멈췄다.

*

이관실의 조명은 심의장보다 낮았다. 도경은 보관함 앞에서 서명 패드를 받아 들었다. 원본 녹음 묶음의 목록이 길게 내려갔다. 모계 7 첫 접촉, 단절 직전 응답, 저주파 군집 합창, 결측 구간. 독점 접근권자 칸에는 서도경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아마라가 맞은편에서 기다렸다. 고래 측 대리기구의 임시 대표로 등록된 뒤 처음 보는 공식 배지였다. 사람의 제도 안에 만든 자리였고, 충분히 좁았다. 그래도 세이렌 서버보다 나았다.

“사본이 아니라 원본 접근권까지 넘기는 겁니까?” 아마라가 물었다.

“원본은 물리적으로 공동 보관. 접근 승인권은 대리기구와 특별심의부가 나눕니다. 제 단독 키는 폐기합니다.”

“협상 카드가 줄어듭니다.”

“카드로 쥐고 있으면 전승이 다시 포획물입니다.”

도경은 서명했다. 손끝이 서명 패드 위에서 잠깐 미끄러졌다. 서도진이 남긴 기록도 한때 누군가의 카드였을까. 숨긴 것인지 빼앗긴 것인지 아직 구별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여기에 넣고 싶지 않아, 도경은 목록 하단의 개인 주석란을 비워 두었다.

보안 담당자가 단독 키 폐기 절차를 시작했다. 화면에 긴 해시값이 뜨고, 곧 회색으로 죽었다. 권한 삭제 완료. 간단한 문장이었다. 몇 달 동안 도경의 손에만 묶여 있던 소리들이 다른 문으로 옮겨 갔다.

다음 장소는 바다였다. 재현 실험에 쓰였던 임시 센서 격자가 철거 목록에 올라 있었다. 모계 7의 이동로 가장자리, 인간이 듣기 좋게 촘촘히 박아 둔 장치들. 도경은 원격 작업 화면에서 하나씩 위치를 확인했다. 수중 드론의 영상은 탁했고, 금속 지지대에 조류가 얇게 붙어 있었다.

김도현의 음성이 들어왔다. “남쪽 세 개는 빼면 빈 구간 생깁니다. 다음 접촉 때 놓칠 수 있어요.”

“그 구간은 음향 금지구역으로 묶습니다.”

“완전 침묵은 어렵습니다. 항로 경보, 연구선 핑, 구조 채널도 있어요.”

“고래에게 닿는 주파수부터 닫아요. 안전 채널은 위원회가 따로 분리하고.”

도현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럼 우리가 덜 듣게 됩니다.”

“그래야 합니다.”

첫 센서가 뽑혔다. 화면 아래 수심 숫자가 흔들리고, 지지대가 모래를 흐렸다. 두 번째, 세 번째. 지도 위 녹색 점들이 꺼졌다. 도경은 꺼지는 점을 보며 이상하게도 아까운 마음을 눌렀다. 더 많이 들으면 더 빨리 알 수 있었다. 그 욕심 때문에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이 연구라는 이름으로 가까이 붙었다.

음향 금지구역 초안이 올라왔다. 재현 장소 반경, 통과 제한, 저주파 송신 금지, 비상 예외. 도경은 예외 조항을 두 번 읽었다. 넓히고 싶었지만 근거 없는 확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속될 만큼만 묶어야 했다.

아마라가 이관 확인서에 마지막 서명을 했다. “이제 이 자료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래야 했습니다.”

말하고 나서 입안이 말랐다. 생색처럼 들릴까 봐 더 붙이지 않았다. 도경은 확인서를 저장하고 화면을 닫았다. 독점권이 사라진 자리에 빈 공간이 생겼다. 그 빈 공간은 가볍지 않았다.

*

저녁 회의실에는 사람보다 꺼진 화면이 많았다. 도경은 심의부 임시 결정문을 다시 읽었다. 번역 재현성은 제한적으로 인정. 의미 해석과 당사자성은 보류. 격리 복제본의 동일 출력은 절차 안정성을 보강하나, 고래 전승 자체의 진실성을 대체하지 않는다.

답은 차가웠다. 제도는 번역을 믿느냐고 묻지 않았다. 반복 가능한가, 오류를 표시하는가, 인간이 끼어든 자리가 남는가를 물었다. 그 질문에는 오늘 일부 답했다. 그러나 전승을 지층과 대조하려면 더 깊은 구간이 남았다. 순서는 번역기 혼자 만들 수 없었다.

해류가 결정문 옆에 요약을 띄웠다.

입력: 심의부 결정 / 복제본 시연 / 원본 이관 / 센서 철거 후보: 재현성 제한 인정 / 독점 접근 종료 / 추가 당사자 확인 필요 p: 0.77 상태: 검증 가능

“당사자 확인을 앞으로.”

입력: 우선순위 변경 후보: 고래 측 확인 필요 / 재현성 제한 인정 / 접근권 재편 p: 0.79 상태: 검증 가능

도경은 빈 회의실 유리에 비친 얼굴을 보지 않으려 문서만 확대했다. 단독 키가 사라지자 할 수 있는 일이 줄었다. 마음대로 원본을 열 수도, 접촉 지점에 센서를 더 박을 수도 없었다. 대신 누구도 도경이 소리를 붙잡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이 같은 무게인지 계산되지 않았다.

서도진의 메모 파일이 작업 목록 아래에 남아 있었다. 도경은 열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록을 남겼고, 일부를 숨겼고, 어떤 문턱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원망은 여전히 손에 걸렸다. 그런데 오늘 도경도 하나를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일이 언제나 깨끗한 선택은 아니었다. 때로는 다음 질문 앞에서 더 이상 손에 쥘 수 없어서 놓는 것이었다.

해류가 새 창을 열었다. 수신처 목록은 비어 있었다. 도경은 망설이다가 모계 7의 대리 통신 채널을 선택했다. 이랑이라는 이름은 공식 목록에 없었다. 식별명만 있었다. 그래도 도경의 머릿속에서는 낮은 맥동과 긴 정지가 함께 떠올랐다.

메시지 본문에는 많은 말을 넣지 않았다. 지질 기록의 순서, 번역 재현성의 제한, 원본 이관과 센서 철거 완료. 그리고 질문 하나. 첫 침묵의 전승에서 저산소, 탄소의 꺾임, 미생물 폭증, 경계의 반복이 어떤 순서로 남아 있는지 확인을 요청한다는 문장.

도경은 마지막 줄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 우리는 듣기 위해 줄였습니다. 이 문장은 변명 같았다. 지웠다. 대신 절차 문구만 남겼다. 음향 금지구역 설정을 완료했고, 추가 접촉은 고래 측 신호가 있을 때만 시도한다.

전송 버튼은 눌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화면에 접수 대기 표시가 떴다. 답이 올지는 알 수 없었다. 등 돌린 고래에게 다시 묻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요청이었다.

도경은 꺼진 센서 지도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재현성의 문은 조금 열렸고, 독점권은 닫혔다. 전승을 증거로 쓰려면 이제 번역기가 아니라 고래 자신에게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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