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의 마을
나룻배가 물살을 가르며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물은 흙빛이었다. 비가 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강가의 갈대 밑동에는 젖은 진흙이 묻어 있었고, 낮은 집들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물결 위로 길게 끌렸다. 강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널판을 얹어 만든 길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집과 집 사이에는 땅보다 물이 많았고, 사람들은 걸을 때도 물소리를 밟았다.
진소백은 배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보따리는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그 안에는 스승의 편지와 부러진 검, 백옥 비녀, 그리고 스물세 사람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있었다. 자기 이름 옆에 적힌 한 글자, ‘已’가 자꾸만 눈 안쪽에 남았다.
뜻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스승이 마지막에 왜 그에게 이곳을 가라 했는지, 왜 하필 수향인지, 왜 ‘하 노인’을 찾으라 했는지. 진소백에게 남은 것은 이름 하나뿐이었다.
“저, 어르신.”
뱃사공은 노를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등은 굽었고 목덜미는 햇볕에 검게 말라 있었다.
“이 마을에 하 노인이라는 분이 계십니까?”
노가 물을 한 번 깊이 눌렀다. 배가 잠깐 비틀렸다.
뱃사공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런 이름은 물 위에서 크게 묻는 게 아니오.”
진소백은 입을 다물었다.
뱃사공의 말투는 거칠지 않았다. 겁을 주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바람이 처마 밑의 작은 종을 흔들었다. 딸랑이는 소리가 물 위로 낮게 퍼졌다.
“귀가 많은 동네요.”
그 말만 남기고 뱃사공은 다시 노를 저었다.
나루라 부르는 곳은 강기슭의 흙바닥이 아니라 물 위에 띄운 넓은 판자마루였다. 말뚝에 묶인 배들이 서로 부딪치며 둔한 소리를 냈다. 생선 비린내와 삶은 국수 냄새, 젖은 나무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장사꾼들이 물건을 내리고 있었고, 아이 하나가 굴러가는 박을 잡으려다 어른에게 팔을 잡혀 끌려갔다.
진소백이 배에서 내리자 판자가 발밑에서 출렁였다. 의원 마당의 단단한 흙과 달랐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바닥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 마을 전체가 물 위에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는 뱃삯을 건네고 돌아서려 했다. 그때 나루 끝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두 자리 값이다.”
진소백의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갔다.
검은 조끼를 걸친 사내 둘이 서 있었다. 허리에 짧은 몽둥이를 찼고, 한 사람은 손가락에 은빛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낡은 배를 묶어 둔 뱃사공 하나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얼굴은 기름 빠진 종이처럼 누렇게 떠 있었다.
“나리, 어제도 냈습니다. 오늘은 손님도 없고 짐도 빈 배라서……”
“빈 배가 물길을 지나면 물이 안 젖나?”
사내 하나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짧았다.
주변 사람들이 잠깐 그쪽을 보았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생선을 손질하던 여인은 칼질을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고, 말린 연근을 늘어놓던 노인은 물건의 위치를 괜히 고쳤다.
뱃사공은 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냈다. 사내는 그 손을 쳐다보지도 않고 발로 배의 옆구리를 찼다. 낡은 배가 말뚝에 부딪히며 흔들렸다.
“곽서 어른 물길을 공짜로 밟겠다는 거냐?”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루가 조금 조용해졌다.
진소백은 그 변화를 느꼈다. 말이 끊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을 삼킨 듯했다. 입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낮아졌고, 눈은 물가로 내려갔다. 곽서라는 이름 하나가 젖은 널판 위에 떨어진 돌처럼 주위의 물결을 눌렀다.
뱃사공은 더듬더듬 동전을 보탰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조끼 입은 사내가 그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밀었다. 뱃사공의 몸이 뒤로 밀려 배 안에 주저앉았다.
진소백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나아갔다.
“그만하시는 게……”
말을 끝내기 전에 은반지를 낀 사내가 그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진소백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말도 무게를 가진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뭐라고?”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널판이 그의 발밑에서 삐걱거렸다. 진소백은 보따리를 더 꼭 쥐었다. 부러진 검은 그 안에 있었다. 검이기는 했으나 검이 아니었다. 스승의 유품일 뿐이었다.
“외지인이냐?”
진소백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내가 그의 어깨를 손가락 끝으로 툭 밀었다. 세게 민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진소백은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 발밑의 판자가 흔들리자 몸이 더 굳었다.
“여기서 입값도 내나?”
다른 사내가 웃었다. 웃음소리를 따라 몇몇 사람이 억지로 입꼬리를 움직였다가 곧 멈췄다.
진소백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는 의원에서 자랐다. 아픈 사람을 보면 손을 뻗었고, 피가 흐르면 눌렀고, 열이 나면 물수건을 얹었다. 누군가 약한 사람을 밀치는 광경 앞에서 한마디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목은 말랐다. 어깨를 밀린 자리에는 통증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곳이 무거웠다. 그는 맞서지 않았다. 주먹을 쥐지도 않았다. 보따리를 품 안쪽으로 당기고, 눈을 내렸다.
사내가 가까이 다가와 그의 귀 옆에 낮게 말했다.
“물 위에서는 발 디딜 곳을 먼저 봐라. 잘못 디디면 소리도 못 지르고 빠진다.”
비린내가 섞인 숨결이 뺨을 스쳤다. 진소백은 그 말을 들으며 한 걸음 더 물러났다.
그제야 사내는 흥미를 잃은 듯 돌아섰다. 뱃사공의 동전을 낚아채고, 두 사람은 나루 안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의 소리도 조금씩 돌아왔다. 그러나 방금 전의 자리는 물이 빠진 뒤 남는 진흙처럼 질척하게 남았다.
진소백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보따리 끈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물러서는 법.
그는 방금 그것을 처음 배운 기분이었다.
나루에서 이어진 장터는 좁았다. 두 사람이 마주 지나가려면 어깨를 비켜야 했고, 짐꾼이 오면 모두가 처마 밑으로 붙어야 했다. 양쪽으로 매달린 등과 천막이 햇빛을 잘라 물 위에 얼룩을 만들었다. 말린 생선이 줄에 걸려 있었고, 갓 부친 전 냄새가 바람에 섞였다.
진소백은 몇 사람에게 하 노인을 물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다음에는 더 낮은 목소리로.
젊은 장정은 못 들은 척 지나갔다. 항아리 앞에 앉은 중년 여인은 그의 얼굴을 보더니 손님이 아니라는 듯 뚜껑을 덮었다. 말린 약초를 파는 노파만이 한참 그를 훑어보았다.
“하씨를 찾는다고?”
진소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는 주변을 살폈다. 그 눈길은 진소백보다 골목과 처마, 다리 위를 더 오래 지나갔다.
“낮에 큰길에서 그 이름을 묻지 마라. 특히 밤에는 물가로 나가지 말고.”
“왜입니까?”
노파는 대답 대신 마른 손으로 생강 조각을 뒤적였다.
“한 달째다. 밤마다 사람이 죽어 나온다. 물이 사람을 토하듯 아침이면 물가에 걸려 있지. 어제 아침 것이 넷째였다.”
진소백은 숨을 늦게 들이마셨다.
“관아에는……”
“관아 사람도 배를 타야 오지.”
노파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리고 밤 물길은 관아 것만은 아니야.”
곽서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오지 않은 이름이 더 또렷하게 들렸다. 노파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
“사람들은 살인귀라 하고, 어떤 이는 저주라 한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밤에 문을 닫는 이유가 그것 하나뿐인 줄 알면 오래 못 산다.”
진소백은 더 묻고 싶었다. 하 노인이 어디 사는지, 왜 그 이름을 두려워하는지, 죽은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지. 그러나 노파의 눈이 갑자기 그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
“가라.”
짧은 말이었다.
진소백은 돌아보지 않고 물러났다. 장터를 벗어날 때까지 등 뒤가 간질거렸다. 좁은 널판길 아래에서는 물이 계속 출렁거렸고, 집들 사이의 그림자는 햇빛 속에서도 어두웠다.
그는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뒤에야 알았다.
처음에는 발소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 위의 마을은 본래 소리가 많았다. 노가 물을 찍는 소리, 항아리가 부딪치는 소리, 젖은 밧줄이 말뚝을 문지르는 소리. 그러나 그 속에서도 같은 간격으로 따라오는 발걸음이 있었다.
등 굽은 사내 하나가 뒤쪽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진소백이 멈추면 사내도 멈췄다. 진소백이 장터의 붉은 천막 밑으로 들어가면 사내는 반대편 생선 좌판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얼마 뒤에는 젊은 장정 하나가 골목 끝에 나타났다. 그는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서 같은 골목을 두 번 지나갔다.
진소백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가 빈손임을 깨달았다. 의원에서 약초칼을 들고 다니던 버릇도 여기까지 오며 사라졌다. 보따리 안의 부러진 검은 꺼내 쓸 물건이 아니었다. 꺼낸다 해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객잔을 찾기로 했다.
수향의 객잔은 땅 위의 객잔과 달랐다. 큰 집 한 채가 아니라 넓은 물마루 위에 여러 방을 덧댄 모양이었다. 간판은 습기를 먹어 글자가 번졌고, 문 앞에는 작은 배 두 척이 묶여 있었다. 들어서자 젖은 나무 냄새와 묵은 술 냄새가 먼저 닿았다.
주인은 마른 얼굴의 사내였다. 계산대 뒤에 앉아 대나무 꼬챙이로 이를 쑤시고 있었다. 진소백이 하룻밤 묵을 방을 묻자, 주인은 위아래를 훑어본 뒤 말했다.
“해 지면 문 닫는다.”
“방은 있습니까?”
“돈 먼저.”
진소백은 삯을 냈다. 주인은 동전을 세고도 한동안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마치 그 동전들이 물에 젖었는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밤에 나갈 생각이면 방값은 돌려주지 않는다.”
“밤에 꼭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요?”
주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외지인은 밤에 꼭 나갈 일이 없다.”
그 말끝에 객잔 안쪽에서 웃음 비슷한 숨소리가 들렸다. 술병을 앞에 둔 노인 하나가 진소백을 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성글었고, 눈꺼풀은 축 처졌으나 눈빛은 흐리지 않았다.
“주인장, 젊은 손님에게 물 한 사발이나 주시오. 길에서 많이 굳어 온 얼굴이오.”
주인은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잠시 뒤 작은 사발 하나를 밀어 주었다.
진소백은 노인과 마주 앉았다. 노인은 자기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허씨라 부르면 되오. 다들 허 영감이라 하지.”
“진소백입니다.”
“외지인 이름은 곧잘 길게 남지. 여긴 물이 빨라서.”
허 영감은 웃지 않았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인데 웃음이 없었다.
진소백은 사발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에서도 나무 냄새가 났다.
“하 노인을 찾고 있습니다.”
허 영감의 손이 잔 위에서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다. 곧 그는 잔을 들어 입술에 댔다.
“그 이름을 여기서도 크게 꺼내면 안 되오.”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모두 오래 살고 싶은 게지.”
객잔 밖으로 누군가 지나가며 문살에 그림자를 남겼다. 진소백은 저도 모르게 그쪽을 보았다. 허 영감은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누가 보내서 왔소?”
진소백은 망설였다. 스승의 편지를 떠올렸다. 보따리 속 종이는 아직 마르지 않은 기억처럼 무거웠다.
“고진명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이번에는 멈춤이 길었다.
허 영감의 얼굴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눈가의 주름 사이로 오래 덮어 둔 먼지가 일어난 듯했다. 그는 진소백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오랜만에 들었소.”
진소백의 가슴이 뛰었다.
“스승님을 아십니까?”
“젊을 적에 이름만 들었지. 이름을 안다는 것과 사람을 안다는 것은 다르오.”
허 영감은 술잔을 손가락으로 굴렸다.
“그 사람이 자네를 보냈다면, 자네는 지금보다 더 조용해야 하오.”
진소백은 입술을 다물었다.
밖에서 물새 우는 소리가 났다. 해가 기울며 객잔 안의 빛이 누렇게 바뀌었다. 주인은 문 옆의 등을 하나씩 살폈다. 아직 불을 붙이지 않았는데도 문 닫을 준비를 하는 몸짓이었다.
“하 노인의 집은 어디입니까?”
허 영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진소백의 얼굴이 아니라 보따리였다. 그러나 손을 뻗지는 않았다.
“걸어가면 오래 걸리지 않소. 하지만 큰길로 가면 안 되오. 다리 위에는 보는 눈이 있고, 물목에는 곽서의 사람이 있소.”
그 이름이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객잔 주인이 꼬챙이를 내려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듣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허 영감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목소리를 더 낮췄다.
“해가 완전히 지면 이 객잔 뒷문으로 나가시오. 부엌 뒤에 작은 배가 하나 묶여 있소. 노를 세 번만 저으면 썩은 버드나무 말뚝이 보일 것이오. 그 옆 좁은 물길로 들어가면 하씨 집 뒤편 담장이 나오오.”
“지금은 갈 수 없습니까?”
허 영감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가면 자네가 묻는 것이 먼저 도착할 거요. 자네보다 빠른 것은 발이 아니라 입이오.”
진소백은 그 말을 이해했다. 이 마을에서는 소문도 물길을 탔다. 그리고 어떤 이름은 물보다 빨랐다.
“밤에는 살인귀가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도 틀리진 않소.”
허 영감은 창밖을 보았다. 해가 낮은 지붕들 뒤로 걸려 있었다.
“한 달 전 첫째가 나왔소. 새벽에 그물에 걸렸지. 둘째는 나루 밑 말뚝에 걸렸고, 셋째는 하씨 집에서 두 집 건너 사내였소. 그 집 여인이 지금도 하씨 문 앞에 밥을 놓고 간다 하오. 남편 죽은 뒤로 말이 줄었다지.”
“왜 하 노인 문 앞에 밥을……”
“묻지 마시오.”
허 영감은 단호하게 잘랐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더 물을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객잔 안에는 손님이 몇 있었으나 누구도 이쪽을 보지 않는 척했다. 젓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작게 났다.
“어제 아침 것이 넷째라 들었습니다.”
“맞소.”
“그런데도 모두 이렇게 조용합니까?”
허 영감은 진소백을 보았다.
“자네는 사람이 죽으면 마을이 들끓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진소백은 대답하지 못했다.
의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울음이 있었다. 통곡이 있었고, 누군가 바닥을 치고, 누군가 의원을 원망하고, 누군가 망자의 손을 놓지 못했다. 죽음은 조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의 죽음은 낮은 목소리로만 오갔다. 마치 크게 울면 다음 차례가 될까 봐 모두가 숨을 줄이는 것 같았다.
허 영감이 말했다.
“밤마다 사람이 죽는 것도 무섭지. 하지만 밤 물길을 누가 막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소. 살인귀는 그림자고, 곽서의 사람은 문 앞에 서 있소. 사람은 보이는 칼을 먼저 피하는 법이오.”
진소백은 나루에서 밀린 어깨를 떠올렸다. 통증도 없는 그 자리가 다시 무거워졌다.
“곽서라는 자가 이 마을을 다스립니까?”
허 영감은 대답 대신 술을 마셨다. 주인이 헛기침을 했다. 그 소리에 진소백은 더 묻지 않았다.
해가 지자 객잔은 빠르게 닫혔다. 주인은 창문에 나무 빗장을 걸고, 앞문 안쪽에 굵은 막대를 끼웠다. 밖의 장터 소리는 물에 젖은 천처럼 가라앉았다. 등불 하나가 켜지자 객잔 안의 사람들 얼굴이 작아 보였다.
진소백은 방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허 영감도 일어서지 않았다. 두 사람은 부엌 쪽에서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허 영감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지금.”
진소백은 보따리를 멨다. 허 영감은 먼저 일어나 부엌 뒤쪽으로 걸었다. 주인은 보고도 못 본 척했다. 뒷문은 낮았다. 허리를 숙여 나가자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뒤편 물길은 앞쪽보다 훨씬 좁았다. 집들의 뒷벽이 물 위로 바로 내려와 있었고, 창문마다 불빛이 얇게 새어 나왔다. 작은 배 하나가 정말로 묶여 있었다. 노는 배 안에 누워 있었다.
“말뚝까지 가시오. 썩은 버드나무. 그 뒤로는 길이 좁아 혼자 가야 하오.”
허 영감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진소백은 배 안에 발을 넣었다. 배가 흔들렸다. 그는 중심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가 젖은 벽을 짚었다. 손끝에 이끼가 묻었다.
“허 영감님.”
“말하시오.”
“스승님은 왜 저를 여기로 보냈을까요?”
허 영감은 어둠 속에서 진소백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등불이 닿지 않아 반쯤 지워져 있었다.
“그건 하씨에게 물으시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길뿐이오.”
진소백은 노를 잡았다.
그때 위쪽 다리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진소백은 고개를 들었다. 다리 난간 위에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등 뒤의 어둠과 앞쪽의 희미한 등불 사이에 몸의 윤곽만 걸려 있었다. 마치 얼굴을 물에 씻어 지운 그림자 같았다.
허 영감도 그쪽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진소백은 노를 물에 넣지 못하고 잠시 굳어 있었다. 다리 아래 물은 검었다. 낮에는 흙빛이던 물이 밤이 되자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처럼 변해 있었다.
“가시오.”
허 영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진소백은 노를 저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배가 좁은 물길을 따라 미끄러졌다. 다리 밑을 지날 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군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목덜미에 붙었다.
썩은 버드나무 말뚝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밤의 물길은 낮보다 길고 낯설었다. 같은 집도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 창에서는 갓난아이 울음이 잠깐 새어 나왔다가 곧 막혔다. 어느 문 앞에는 작은 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밥이 식어 굳어 있었고, 그 위에 젓가락 한 벌이 가지런히 놓였다.
하씨 문 앞에 밥을 놓고 간다는 여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진소백은 배를 멈추려다 다시 노를 저었다. 아직 그 집이 어디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허 영감은 썩은 버드나무 말뚝을 말했지만, 물길은 갈라지고 또 갈라졌다. 뒤에서 물소리가 났다. 노를 젓는 소리인지, 집 밑을 치는 물살인지 알 수 없었다.
골목 끝, 푸른 등이 하나 흔들렸다.
그 등 아래로 사람이 지나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진소백이 눈을 크게 뜨는 사이, 그 사람은 옆 물길로 사라졌다. 젖은 소매 끝만 잠깐 빛을 받아 푸르게 보였다.
진소백은 노를 멈췄다.
가야 했다. 하 노인의 집을 찾아야 했다. 스승의 편지가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러나 물 위의 길들은 서로 비슷했고, 그림자는 너무 많았다. 그는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때 멀리서 종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한 번이 아니었다. 쇠붙이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이어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물 위를 타고 왔다. 처음에는 바람인가 했으나 곧 목소리가 섞였다.
“서쪽 물목이다!”
“등 가져와!”
“또 나왔다!”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닫혔던 문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나왔다. 조용하던 마을이 한순간에 물결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그 소란도 이상하게 낮았다. 고함은 있었으나 끝이 눌려 있었다. 누구도 이름을 크게 부르지 않았다.
진소백은 배를 돌렸다. 서쪽이 어디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등불들이 모이는 쪽은 보였다. 물 위에 노란 점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사람들은 좁은 널판길과 배 위에 모여 있었다. 어떤 이는 입을 막았고, 어떤 이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 하나가 울려 하자 어른이 품에 끌어안고 입을 막았다.
진소백은 가까이 가지 못했다. 배들이 물목 앞을 막고 있었다. 그 사이로 젖은 천 같은 것이 보였다. 사람의 팔이 물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다. 흰 손가락 끝이 등불을 받아 유난히 밝았다.
다섯째.
누군가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아니면 진소백이 속으로 세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보따리 끈을 붙잡았다. 스승의 편지, 부러진 검, 백옥 비녀, 스물세 이름과 ‘已’. 그 모든 것이 어깨를 눌렀다. 그는 하 노인의 이름 하나를 붙잡고 이 마을에 왔다. 그러나 낮에는 그 이름을 크게 묻지 못했고, 밤에는 그 집 앞까지 가지도 못했다. 나루에서는 가난한 뱃사공이 밀리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신을 밀친 사내 앞에서 그는 물러났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마을이었다. 살인귀라는 말이 물 위를 떠다녔고, 곽서라는 이름은 그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다. 물길도, 자리도, 밤도 누군가의 것이었다. 힘없는 사람은 물가로 밀려났고, 말없는 사람은 더 오래 숨을 쉬었다.
진소백은 그제야 알았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스승의 이름만으로는 부족했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부러진 검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베지 못했다.
그는 아직 아무 힘도 없었다.
등불들이 서쪽 물목에 모여 흔들렸다. 진소백은 그 빛을 바라보며 노를 다시 쥐었다. 손바닥의 땀이 식어 차가웠다. 그래도 그는 배를 돌리지 않았다. 물은 어둡고, 길은 좁고, 이 마을은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야 했다.
이 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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