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노인
밤새 물안개가 마을을 핥고 지나간 뒤라, 낮이 되었어도 골목마다 젖은 냄새가 남아 있었다.
진소백은 객잔 문턱에 잠시 서서 강 쪽을 바라보았다. 서쪽 물목에서 떠올랐다는 다섯째 시신의 소문은 아침밥보다 먼저 퍼져 있었다. 객잔 주모는 국자를 든 채 말을 줄였고, 짐꾼 둘은 밥알을 씹는 둥 마는 둥 하며 서로의 얼굴만 보았다. 누구도 큰 소리로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시끄러웠다.
진소백은 식은 차 한 모금을 넘겼다.
어젯밤 물가에서 맡았던 진흙 냄새가 아직 코끝에 붙어 있는 듯했다. 강물은 사람을 삼키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아침 햇빛 아래 반짝이는 물결은 얄미울 만큼 평온했다. 이 마을에 온 뒤로 진소백은 줄곧 죽은 사람들의 뒤를 밟고 있었다. 이름보다 먼저 시신이 되었고, 사연보다 먼저 의심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살아 있는 사람을 먼저 보고 싶었다.
하 노인.
허 영감이 술기운과 두려움 사이에서 흘린 그 이름은, 어젯밤부터 진소백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래된 나루터, 늙은 사공, 문을 걸어 잠근 사람. 고진명의 이름을 아는 듯하나 말하지 않는 사람.
진소백은 객잔을 나서며 허리춤의 작은 약낭을 확인했다. 의원으로 살던 때 몸에 밴 습관이었다. 강호에 들어와 검보다 약낭을 먼저 더듬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손끝에 익숙한 천의 감촉이 닿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 노인의 집은 서쪽 나루에서 조금 떨어진 물가 골목 끝에 있다고 했다. 마을 아이 하나가 길을 일러 주었다. 아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괜히 뒤를 돌아보고 달아났다. 그 뒷모습이 진소백의 발걸음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수향의 골목은 땅과 물이 반씩 섞인 곳이었다. 집과 집 사이에는 좁은 판자가 다리처럼 놓였고, 낮은 처마 아래에는 젖은 그물이 걸려 있었다. 어디선가 생선 말리는 냄새와 파 끓이는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조그만 배들이 담벼락에 묶인 채 물 위에서 흔들렸고, 배 밑을 치는 물소리가 골목 안쪽까지 들렸다.
하 노인의 집은 금방 눈에 띄었다.
낡았다기보다, 오래 버틴 집이었다. 문짝 아래쪽은 물기와 진흙에 삭아 있었고, 처마 끝에는 바람에 찢긴 부적 한 장이 매달려 있었다. 문고리에는 굵은 끈이 여러 번 감겨 있었다. 안에서 막아 둔 듯했다.
문 앞에는 작은 나무 소반이 놓여 있었다.
소반 위에는 밥 한 공기와 무청을 넣은 된장국, 그리고 짠지 몇 조각이 있었다. 국은 아직 미지근한 김을 조금 품고 있었다. 누군가 방금 놓고 간 모양이었다.
진소백이 문 앞으로 다가가려는 순간, 골목 저편에서 여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두고 오라니까. 문 열 사람 아니여.”
진소백은 고개를 돌렸다. 중년 여인이 빈 보자기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 얼굴은 수척했고 눈가는 밤새 울어 부은 것처럼 붉었다. 그녀는 진소백을 알아보지 못한 듯하다가, 객잔 쪽에서 몇 번 보았던 외지인임을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하 노인을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대답 대신 소반을 보았다.
“드십니까?”
“안 드셔.” 여인이 짧게 말했다. “그래도 안 놓고 갈 수가 있어야지.”
그 말 속에 원망은 없었다. 체념도 아니었다. 빚진 것처럼 굳어 버린 마음이 보였다. 진소백은 그녀가 셋째 사망자의 집 여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물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입가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여인은 보자기를 고쳐 쥐었다.
“문 두드려도 소용없어요. 해 떨어지기 전엔 더더욱.”
“왜 그렇습니까?”
“왜긴.” 여인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살고 싶으니까.”
진소백은 더 묻지 않았다. 여인은 그 침묵을 다행으로 여긴 듯, 물가 쪽으로 급히 걸어갔다. 가난한 치맛자락이 젖은 판자를 스치며 사라졌다.
진소백은 다시 문을 보았다.
“하 어르신.”
문 안쪽은 조용했다.
“진소백이라 합니다. 잠시 여쭙고 싶은 일이 있어 왔습니다.”
물소리만 들렸다. 어디선가 닭이 한 번 울었다. 진소백은 한 걸음 물러섰다. 문을 세게 두드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열리는 문이 아닌 듯했다. 오래 겁먹은 사람의 문은 손으로 여는 게 아니라, 안쪽에서 빗장을 풀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 소반 옆으로 그림자 하나가 쑥 내려왔다.
“그 밥 건드리면 손모가지 물어요.”
진소백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열둘이나 열셋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골목의 판자 난간에 한 발을 걸친 채 서 있었다.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렸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물방울이 몇 개 튀어 있었다. 등에는 낡은 노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눈매는 작고 매서웠다.
“네가 물어?”
“제가 물면 더럽게 아프대요.”
소녀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작은 몸인데도 물가에서 자란 아이 특유의 버팀이 있었다. 진소백은 저도 모르게 웃을 뻔하다가 참았다.
“밥을 훔치려던 건 아니다.”
“훔치려는 사람은 다 그렇게 말해요. 심부름값 떼먹는 사람도 다 나중에 준다 그러고.”
“심부름값을 누가 떼먹었느냐?”
소녀의 입이 잠깐 비뚤어졌다. “외지인한테 말하면 쌀이 나오나요?”
“쌀은 안 나오겠지.”
“그럼 됐어요.”
소녀는 소반 앞으로 다가와 국그릇에 손등을 대 보았다. 아직 따뜻한지 확인하는 동작이 익숙했다. 그러고는 문 아래 틈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또 안 가져갔네.”
“하 노인을 네가 챙기느냐?”
“제가 안 챙기면 누가 챙겨요.” 소녀가 툭 말했다. “나는 선화예요. 이름 물은 얼굴이라 먼저 말했어요.”
“진소백이다.”
“좋은 이름인지 나쁜 이름인지는 모르겠고, 여기 왜 왔어요?”
“하 어르신께 여쭙고 싶은 게 있다.”
“다들 있어요. 여쭙고 싶은 거.” 선화는 문짝을 흘겨보았다. “그래 놓고 어르신이 대답 안 하면 욕하고, 대답하면 더 큰일 나게 하고.”
진소백은 그 말의 끝에 묻은 경험을 들었다. 아이답지 않은 말투였다. 아니, 아이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골목이 더 늙어 보였다.
“해코지하러 온 건 아니다.”
“해코지하는 사람도 다 그렇게 말해요.”
“그럼 내가 무엇을 하면 믿겠느냐?”
선화는 진소백을 위아래로 훑었다. 약낭에서 눈길이 멈췄다.
“의원이에요?”
“의원으로 산 적은 있다.”
“산 적은 있다는 건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죠?”
진소백은 대답이 늦었다. 선화는 그 사이 소반을 들려다 말고, 문 안쪽을 향해 작게 말했다.
“하 할아버지, 밥 식어요. 안 드시면 제가 저녁에 와서 잔소리해요.”
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진소백은 어렴풋이 느꼈다. 문 뒤에 누군가 있었다. 숨을 죽인 기척이, 썩은 나무와 물냄새 사이로 아주 얇게 새어 나왔다.
“할아버지 기침이 심하다 들었다.” 진소백이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문을 열지 않으셔도 됩니다. 맥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싫으시면 약 달이는 법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선화가 눈썹을 올렸다.
문 안에서 마른 기침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오래 묵은 천식처럼 가슴 깊은 곳을 긁고 올라오는 소리였다. 기침은 금방 멎었지만, 그 뒤의 숨소리는 문짝 너머에서도 거칠었다.
진소백은 약낭을 열었다. 감초와 길경, 말린 귤껍질이 조금 있었다. 객잔 주방에서 생강을 얻으면 얕은 기침에는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러나 하 노인의 숨은 단순한 감기 소리가 아니었다. 오래 찬 물가에서 산 사람의 몸, 젖은 옷을 제대로 말리지 못한 밤들, 두려움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한 날들이 한데 엉켜 만든 소리 같았다.
“선화.”
“왜요?”
“이 밥, 안으로 넣을 방법이 있느냐?”
“문 아래로 밀면 국 엎어져요. 저번에 제가 해 봤어요.”
“그럼 네가 먹어라.”
선화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곧 가늘어졌다.
“지금 놀려요?”
“식은 밥을 문 앞에 오래 두면 파리가 꼬인다. 하 어르신이 안 드시면 네가 먹고, 저녁에 새로 따뜻한 걸 가져오면 된다. 대신 내가 국값은 내겠다.”
“국값?” 선화가 코웃음을 쳤다. “이 국값 내면 그 여인 마음값도 낼 수 있어요?”
진소백은 말문이 막혔다.
선화는 잠깐 그를 보더니, 시선을 피했다. 아이는 이겼다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다만 소반을 조심히 들어 처마 그늘 쪽으로 옮겼다. 국이 쏟아지지 않게 손목을 낮추는 모양이 야무졌다.
그때 문 안쪽에서 쇠가 나무에 닿는 소리가 희미하게 났다.
선화가 숨을 멈췄다. 진소백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라.”
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갈라지고 낮은 목소리였다.
선화가 급히 문 가까이 붙었다. “할아버지, 밥은요?”
“가져가.”
“또 굶으면 밤에 기침 더 나요.”
“가져가라니까.”
선화의 입술이 삐죽해졌다. 그래도 대들지는 않았다. 진소백은 문 앞에 무릎을 굽혔다. 문틈 아래로 안쪽의 어둠만 보였다.
“하 어르신. 저는 고진명이라는 분을 찾고 있습니다.”
문 안쪽의 숨이 끊겼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진소백은 분명히 느꼈다. 방 안에 있던 사람이 숨을 삼켰다. 선화도 그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진소백의 얼굴을 홱 보았다.
“그 이름을 아십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그분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을 뿐입니다.”
문 안에서 무언가 넘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선화가 소반을 내려놓고 문을 붙잡았다.
“할아버지!”
“가.” 하 노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 이름 입에 올리지 마라.”
“아신다는 뜻입니까?”
“모른다.”
말은 빨랐다. 너무 빨라 거짓처럼 들렸다. 진소백은 더 다그치지 않았다. 하 노인의 공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와 발등을 적시는 것 같았다. 진실은 사람을 앞으로 끌어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방 안 깊숙이 숨는다.
“알겠습니다.” 진소백은 천천히 말했다. “오늘은 그만하겠습니다.”
선화가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아마 더 캐물을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진소백은 약재 몇 가지를 작은 종이에 싸서 소반 옆에 놓았다.
“귤껍질은 너무 많이 넣으면 속이 쓰립니다. 생강 두 쪽, 물 두 사발을 한 사발이 될 때까지 달여서 밤에 드십시오. 술은 피하시고요.”
문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선화가 종이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돈 받아요?”
“안 받는다.”
“그럼 독 들어 있나?”
“의심하는 게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되느냐?”
“여기서는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진소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먼저 냄새를 맡고, 이상하면 버려라.”
선화는 약재를 코 가까이 대고 킁킁거렸다. “냄새는 그럴싸하네요.”
“생강은 객잔에서 얻어 와야 한다.”
“객잔 주모가 그냥 줄 리 없는데.”
“내 이름을 대라.”
“이름 대면 생강이 나오는 사람이에요?”
“안 나오면 내가 가서 빌겠다.”
선화가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입꼬리 한쪽이 살짝 풀린 정도였다.
“외지인 의원이 생강 빌러 다니면 볼 만하겠네요.”
그때 골목 입구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선화! 배 비었냐?”
선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진소백은 돌아보았다. 험상궂은 장정 둘이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허리에는 짧은 몽둥이를 찼고, 옷차림은 뱃사람이라기보다 물가에서 뱃사람 위에 올라앉은 부류에 가까웠다.
“지금 손님 있어요.” 선화가 말했다.
“손님? 네 배에 손님이 어딨어. 곽 형님네 짐부터 옮기라 했잖아.”
“어제도 옮겼어요. 삯도 못 받았고요.”
“삯?” 장정 하나가 웃었다. “나루에 붙어 먹으면서 삯 타령이냐? 자리세 안 밀렸으면 말을 해.”
선화는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이 약재 꾸러미를 세게 쥐었다. 진소백은 그 손가락 마디가 희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싸움을 하러 온 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도 어려웠다. 진소백은 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선화에게 건넸다.
“나를 객잔 앞까지 태워다오. 선불이다.”
선화가 눈을 깜빡였다. 장정 둘도 진소백을 보았다.
“외지인, 괜히 끼지 마쇼.”
“배를 타려는 것뿐입니다.” 진소백은 담담히 말했다. “나루에서 배를 부르는 게 끼어드는 일입니까?”
장정의 눈매가 험해졌다. 진소백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손은 검으로 가지 않았다. 그저 동전을 든 채 서 있었다. 잠시 후 장정 하나가 침을 뱉었다.
“타고 나면 바로 와라. 또 도망치면 네 할아비 배부터 끌어낸다.”
선화의 어깨가 움찔했다. 장정들은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골목에는 한동안 몽둥이가 허벅지에 부딪히던 소리가 남아 있는 듯했다.
선화는 동전을 내려다보았다.
“객잔 앞까지 걸어가도 되잖아요.”
“다리가 젖었다.”
“거짓말 못하네요. 여기 다 젖었어요.”
“그럼 물길 구경이 하고 싶었다.”
“그 말도 못 믿겠는데.” 선화는 동전을 품속에 넣었다. “그래도 태워 드릴게요. 손님이니까.”
진소백은 하 노인의 문을 한 번 더 보았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약재 꾸러미는 선화의 품에 있었다. 밥은 처마 밑에서 식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닫힌 문 앞에 놓인 대답 같았다.
배는 좁고 낮았다. 선화가 노를 잡자 작은 배는 골목 옆 물길로 미끄러졌다. 물 위에서 보는 마을은 땅에서 볼 때와 달랐다. 기둥에 기대어 선 집들, 문턱 아래까지 올라온 물때, 빨랫줄에 걸린 아이 옷, 배 위에서 파를 다듬는 할머니. 사람들은 물과 싸우기보다 물에 맞춰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선화는 생각보다 노를 잘 저었다. 마른 팔이었지만 힘의 낭비가 없었다. 물살이 배 옆구리를 밀면, 그녀는 노끝으로 살짝 받아 방향을 바꾸었다.
“하 노인은 네 친할아버지냐?”
“아니요.”
“그런데 왜 할아버지라 부르느냐?”
“밥 안 먹는 늙은이를 이름으로 부르면 더 안 먹어요.”
진소백은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선화가 흘끗 보았다.
“왜 웃어요?”
“맞는 말이라서.”
“어른들은 맞는 말 하면 더 싫어하던데요.”
“대개 그렇다.”
선화는 배를 몰며 잠시 침묵했다. 물새 한 마리가 낮게 날아 지나갔다. 진소백은 아이의 옆얼굴을 보았다. 볼살이 빠져 광대가 도드라졌고, 손등에는 잔상처가 많았다. 특별한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마을 물가에 있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너무 일찍 물살을 배운 아이였다.
“고진명이라는 이름.” 선화가 갑자기 말했다. “그거 나쁜 이름이에요?”
진소백은 대답을 고르느라 잠시 늦었다.
“나도 아직 모른다.”
“좋은 이름이면 사람들이 그렇게 겁먹지 않겠죠.”
“좋은 이름도 겁을 만들 때가 있다.”
선화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배는 객잔 근처 물계단에 닿았다. 진소백이 내리려는 순간, 골목 위쪽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날카롭다기보다 힘이 빠져 가늘게 끊기는 울음이었다.
“또 허 아저씨네 애네.” 선화가 말했다.
“아픈 아이냐?”
“늘 아파요. 엄마는 없고, 아저씨는 돈 벌러 뛰고. 의원 부르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진소백은 이미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어디냐?”
선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의원으로 산 적 있다면서요?”
“지금도 약낭은 있다.”
“따라와요.”
허봉의 집은 객잔 뒤편 좁은 골목에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남자의 허둥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좀만 참아라. 물 식힌다. 식힌다니까.”
진소백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흔 안팎의 사내가 사발을 들고 우왕좌왕하다가 멈칫했다. 그는 어깨가 넓었지만 살이 빠져 옷이 헐렁했고,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방 한쪽에는 다섯 살쯤 된 아이가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얼굴이 붉고 입술이 말라 있었다.
“누, 누구시오?”
“아이를 봐도 되겠습니까?”
사내는 선화를 보았다. 선화가 말했다.
“약 냄새 나는 외지인이에요. 하 할아버지한테 약 줬어요.”
“약 냄새 나는 외지인이라니.” 진소백이 중얼거렸지만, 사내는 이미 반쯤 매달리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의원이시오? 돈은 지금 없소. 정말 없소. 쌀독도 바닥이고, 어제는 그릇 하나 팔았고, 내일이면 뭘 팔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돈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나중에도 없을 수 있소.”
“그럼 더 나중에 하겠습니다.”
사내의 얼굴에 어이없는 웃음이 스쳤다. 그 웃음은 금방 걱정에 묻혔다.
진소백은 아이 곁에 앉아 손목을 잡았다. 맥은 빠르고 얕았다. 이마를 짚자 열이 높았고, 목 아래 림프가 조금 부어 있었다. 혀를 보게 하니 태가 끼고 입안이 말랐다. 방 안에는 젖은 빨래와 묵은 연기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창은 닫혀 있었고, 화로의 재는 아직 따뜻했다.
“언제부터입니까?”
“그제 밤부터 열이 올랐소. 어제는 좀 내리는가 싶더니 밤에 또 오르고. 물을 먹이면 토하고, 죽을 먹이면 울고. 아이고, 이놈아, 아비 속을 왜 이렇게 태우냐.”
사내가 아이의 머리맡을 쓸었다. 투박한 손이었다. 아이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이름은요?”
“허만복이오. 복이 많으라고 지었는데, 이름이 너무 무거웠나 보오.” 사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허봉이오. 이 근처에서 짐 나르고, 배 밀고, 남들이 시키는 일은 대충 다 하오. 잘하는 건 없고 몸만 튼튼했는데, 요즘은 그 몸도 빚쟁이들이 먼저 가져간 것 같소.”
선화가 옆에서 작게 말했다. “아저씨, 말이 많아요.”
“겁나면 말이 많아지는 걸 어쩌냐.”
진소백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부엌에는 보리쌀이 조금 남아 있었고, 마른 대추 두 알이 종지에 있었다. 물항아리 옆에는 깨진 부채가 기대어 있었다.
“창을 열겠습니다. 화로는 치우시고요. 열이 있는 아이를 덥게만 싸 두면 더 힘듭니다.”
허봉은 곧바로 움직였다. 허둥대다가 화로 손잡이를 놓칠 뻔했고, 선화가 “뜨거워요!” 하고 소리치자 머쓱하게 웃었다. 그 사이 진소백은 아이의 옷깃을 느슨하게 풀고, 미지근한 물로 목과 겨드랑이를 닦아 냈다.
“찬물은 안 됩니다. 열을 놀라게 하면 몸이 더 움츠러듭니다.”
“열도 놀랍니까?”
“사람 몸은 겁이 많습니다.”
허봉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몸이 요즘 말을 안 듣는 것도 그래서였군.”
선화가 작게 피식 웃었다. 방 안의 긴장이 아주 조금 풀렸다.
진소백은 약낭에서 곽향과 박하를 조금 꺼냈다. 많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진한 약보다 묽게 달인 물을 조금씩 먹이는 게 나아 보였다. 그는 허봉에게 물을 끓이게 하고, 대추 하나를 쪼개 넣었다. 쓴맛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한 번에 많이 먹이지 마십시오. 숟가락으로 조금씩. 토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허봉은 두 손으로 사발을 받쳐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귀한 법문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살겠소?”
그 물음은 너무 곧았다. 진소백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의 병은 지금 당장 목숨을 앗아갈 만큼 깊어 보이지 않았지만, 가난한 집의 병은 병만으로 오지 않았다. 굶주림, 추위, 제때 부르지 못한 의원, 빚쟁이의 발소리까지 함께 왔다.
“오늘 밤 열이 꺾이는지 봐야 합니다. 숨이 가빠지거나 경련이 오면 곧바로 객잔으로 사람을 보내십시오.”
“객잔에 계시오?”
“당분간은요.”
허봉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부엌으로 가서 작은 솥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묽은 국이 조금 남아 있었다. 무와 파가 떠 있었고, 기름기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드시고 가시오.”
“괜찮습니다.”
“아니오.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그냥 보내면 집이 더 가난해지오.”
“그런 법도 있습니까?”
“방금 만들었소.” 허봉은 국을 그릇에 따르며 말했다. “없는 집은 법이라도 자주 만들어야 버티오.”
선화가 눈을 굴렸다. “아저씨, 그 국은 물이 더 많잖아요.”
“물도 끓이면 성의가 된다.”
진소백은 결국 그릇을 받았다. 국은 싱거웠고, 무는 덜 익어 조금 아렸다. 그러나 뜨거웠다. 누군가 가진 것 중에서 내놓은 온기였다. 진소백은 한 숟갈을 천천히 삼켰다.
“맛이 없지요?”
허봉이 먼저 물었다.
“싱겁습니다.”
“소금도 빚이 있어서 말이오.”
선화가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허봉도 따라 웃다가 곧 아이 쪽을 돌아보았다. 아이의 숨은 아직 가빴지만, 조금 전보다 울음이 잦아들어 있었다. 진소백은 그 작은 변화에 마음 한구석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의원으로 살 때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병이 낫기 전, 아직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데도 방 안의 사람들이 조금 숨을 돌리는 순간. 그때 의원은 약만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방 안을 다 차지하지 못하게 잠시 문을 열어 두는 사람이었다.
진소백은 그 일을 잊고 있었다.
강호에 들어와 그는 너무 많은 칼자국과 수상한 이름들만 보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열 나는 아이가 있고, 싱거운 국을 나누는 아비가 있고, 늙은 사공의 밥을 챙기는 아이가 있었다.
허봉은 빈 그릇을 받아 들며 머리를 긁적였다.
“외지인 양반, 아니 의원님. 이름이 뭐라 하셨소?”
“진소백입니다.”
“진 의원님.” 허봉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갚을 건 갚소. 당장은 못 갚아도 잊지는 않소. 이 동네가 좁아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금방 돌거든. 내가 진 의원님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 두겠소.”
“그러다 제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시려고요?”
허봉은 잠시 진소백을 보았다. 그러고는 아이의 이마에 젖은 천을 얹으며 말했다.
“내 애 이마 짚는 손 보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집을 나설 때 선화도 따라 나왔다. 햇빛은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고, 물길 위에는 은빛 비늘 같은 잔물결이 일었다. 선화는 품속에서 아까 받은 동전 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객잔 앞까지 태웠으니 이건 제 돈이죠?”
“그렇다.”
“그럼 생강 사는 데 안 써도 되죠?”
“하 어르신 약에는 생강이 필요하다.”
선화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알았어요. 반은 생강, 반은 내일 아침밥. 이렇게 하면 되죠?”
“생강은 내가 객잔에서 얻어 주겠다.”
“그럼 전부 내일 아침밥.” 선화의 대답은 빨랐다. 그러고는 눈치를 보듯 덧붙였다. “하 할아버지도 먹을 수 있게요.”
진소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다시 하 노인의 집 쪽으로 걸었다. 골목에는 저녁 준비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생선 굽는 연기, 젖은 장작이 타며 내는 매캐한 냄새,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 싸움 소리. 평범한 소리들이었지만, 그 아래에는 낮게 깔린 불안이 있었다. 장정들이 지나가면 말소리가 줄고, 낯선 발자국이 들리면 창호지 뒤의 그림자가 멈췄다.
하 노인의 집 앞에 이르자, 낮에 놓였던 소반은 비어 있었다.
선화가 먼저 달려가 그릇을 확인했다. 밥공기에는 밥풀 몇 알만 남아 있었고, 국그릇도 깨끗했다. 선화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곧 아무렇지 않은 척 굳었다.
“봤죠? 먹을 거면서 꼭 사람 속을 긁어요.”
진소백은 문 아래를 보았다. 아까 놓아 둔 약재 꾸러미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문틈 가까이에 낡은 천 조각 하나가 밀려 나와 있었다. 천에는 오래된 기침 가래가 묻은 듯한 얼룩이 있었다. 의원에게 보이라고 내민 것인지, 우연히 빠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진소백은 천을 들어 살폈다. 피가 아주 조금 섞여 있었다. 선화가 얼굴을 굳혔다.
“많이 나쁜 거예요?”
“오래된 병입니다. 당장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냥 둘 일도 아닙니다.”
문 안에서 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선화가 문 앞으로 붙었다. “왜요?”
“그 의원놈…… 아직 있느냐?”
진소백은 한 걸음 다가섰다.
“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안쪽에서 빗장을 만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멈췄다. 열릴 듯 열리지 않는 소리였다.
“고진명.”
하 노인의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선화가 진소백을 돌아보았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느냐?”
진소백은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찾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 저도 다 알지 못합니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가라.”
“그럴 수 없습니다.”
문 안에서 기침이 터졌다. 이번에는 길었다. 나무문 너머에서 몸이 접히는 소리까지 들렸다. 선화가 당황해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문 열어요. 약 먹어야죠!”
기침이 잦아든 뒤, 하 노인은 한참 만에 말했다.
“말하면 죽는다.”
그 말은 진소백을 향한 것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아주 낮았고, 너무 오래 품은 말처럼 닳아 있었다.
진소백은 문을 밀지 않았다.
“오늘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화가 그를 홱 보았다. 진소백은 문 너머에 대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대신 약은 드십시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싫으시면 또 문을 닫아 두십시오. 그래도 저는 약을 두고 가겠습니다.”
“왜.”
하 노인의 물음은 짧았다.
진소백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고진명을 찾기 위해서라고 하면 거짓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부도 아니었다. 그는 허봉의 아이가 열에 들떠 손가락을 움켜쥐던 감촉을 떠올렸다. 선화의 야윈 손이 약재 꾸러미를 쥐던 모양을 떠올렸다. 문 앞에 밥을 놓고 가던 여인의 붉은 눈도.
“기침이 심하시니까요.”
문 안쪽은 다시 조용해졌다.
선화가 아주 작게 말했다. “그 대답은 좀 의원 같네요.”
“의원으로 산 적은 있다니까.”
“지금도 그냥 그렇게 살면 안 돼요?”
진소백은 선화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물길 너머로 해가 낮아지며 집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강물은 붉은빛을 받아 천천히 흔들렸다. 멀리서 누군가 배를 묶는 소리가 들렸고, 허봉의 집 쪽에서는 아이를 달래는 낮은 노랫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음정은 엉성했지만, 끊기지 않았다.
진소백은 자신이 이 마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죽은 이들의 숫자도, 고진명의 이름도, 닫힌 문 뒤의 공포도 중요했다. 그러나 그것들만으로는 이곳을 알 수 없었다. 이 마을에는 문 앞의 식은 밥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빚에 쫓기면서도 손님에게 국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고, 겁 많은 늙은이를 할아버지라 부르며 악착같이 노를 젓는 아이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었다.
그 사정들이 서로 기대고, 숨고, 속이고, 버티며 이 물가의 하루를 만들고 있었다.
진소백은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고진명을 찾아야 했다. 죽음의 이유도 알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 묻고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 노인의 닫힌 문과 허봉의 아픈 아이와 선화의 야윈 손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의 발목을 조용히 붙잡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 남은 빈 소반을 들어 선화에게 건넸다.
“생강을 얻으러 가자.”
선화가 소반을 받아 들며 물었다.
“못 얻으면요?”
진소백은 객잔 쪽 골목을 바라보았다.
“그럼 빌어야지.”
선화는 이번에는 분명히 웃었다. 그리고 노을 속에서 앞장섰다. 진소백은 그 뒤를 따라 젖은 판자길을 걸었다. 발밑에서 물이 낮게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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