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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 14/30

텃세

새벽 물안개는 강의 숨처럼 낮게 깔렸다.

진소백은 나루 끝에 서서 젖은 나무판을 내려다보았다. 밤새 강물이 불어 판자 사이마다 진흙물이 배어 있었다. 발끝으로 눌러 보니 물컹하게 꺼졌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이런 곳에서는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정강이를 찧거나 강으로 미끄러질 수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허리춤의 약낭을 확인했다. 말린 쑥과 지혈산, 헝겊 조각 몇 장. 싸움에 쓰는 물건이 아니라 다친 뒤에야 쓸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 사실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하 노인의 배는 나루 아래쪽에 묶여 있었다. 오래된 배였다. 배 밑창은 여러 번 덧댄 흔적이 있었고, 노 하나는 손잡이 부분이 갈라져 삼베끈으로 감아 놓았다. 그래도 그 배는 선화에게는 집 문지방 같은 것이었다. 선화는 그 배 위에서 노를 씻고 있었다. 작은 어깨가 물안개 속에서 오르내렸다. 젖은 머리카락 몇 올이 볼에 붙어 있었다.

“소백 오라버니.”

선화가 먼저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목소리는 맑았지만 끝이 조금 잠겨 있었다. 진소백은 나루 계단을 내려가며 웃어 보였다.

“밤새 배는 괜찮았느냐?”

“괜찮아요. 물이 좀 들어오긴 했는데, 하 할아버지가 이 정도는 배가 먹는 아침밥이라 했어요.”

아이의 농담은 평소처럼 가볍지 않았다. 진소백은 배 안을 보았다. 바닥 한쪽에 고인 물을 퍼낸 흔적이 있었다. 나무 틈은 낡았고, 그 위를 덮은 송진 냄새가 새벽 습기와 섞여 났다.

“허봉 아저씨는?”

“윗마을에 약초 짐 내려 주러 갔어요. 해 뜨기 전에 다녀오신다고 했는데.”

선화는 말을 마치기 전에 나루 위쪽을 보았다. 진소백도 돌아섰다.

사내 셋이 안개를 헤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앞선 자는 회색 무명옷 위에 짧은 가죽 조끼를 걸쳤고, 허리에는 칼집 짧은 칼이 삐뚜름하게 매달려 있었다. 뒤의 둘은 몽둥이를 들었다. 몽둥이 끝에는 마른 흙과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걷는 모양만으로도 이 나루가 제 것이라 여기는 자들이었다. 발을 크게 벌리고, 판자가 꺼져도 피하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들을 본 적이 있었다. 열하루 전, 물길 값이니 나루 값이니 하며 상인들의 짐을 뒤지던 자들. 곽서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사람들 목덜미를 누르던 자들.

그때 그는 물러섰다. 이를 악물고도 물러섰다. 모르는 사람들의 고개가 하나씩 숙여지던 풍경을 보며, 속이 상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선화가 배 위에 있었다.

“하 노인은 어디 갔나.”

앞선 사내가 계단 중간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강물 위로 납작하게 퍼졌다.

선화가 노를 내려놓았다. “할아버지는 아직 안 오셨어요.”

“그럼 네가 들으면 되겠군.”

사내가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기름때가 묻어 가장자리가 누렇게 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펼치지도 않고 흔들었다.

“밀린 물길세 석 달. 통행 보증값 두 달. 곽 형님 이름으로 두 번이나 봐줬다. 오늘은 배를 가져간다.”

선화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진소백은 숨이 가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배를요?”

“귀가 먹었나? 배.”

뒤의 사내 하나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썩은 나무를 밟는 소리 같았다.

“배 없으면 저 계집이 몸으로 갚아도 되고. 강가 일은 많지. 술상 옆에서 잔도 나르고, 밤길 심부름도 하고.”

선화가 뒷걸음질 치다 배 안의 물통에 종아리를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이는 아픈 티도 내지 못하고 노를 붙잡았다.

진소백은 계단 아래로 한 걸음 내려섰다.

“그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말을 뱉고 나서야 제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다는 것을 알았다. 손바닥은 벌써 축축했다. 사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에게 붙었다. 눈길이 아니라 손이었다. 목과 어깨와 가슴을 더듬어 힘이 얼마나 있는지 재는 손.

앞선 사내가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

“너는 또 누구냐.”

“이 배는 하 노인의 생계입니다. 빚이 있다면 장부를 보이고, 날짜를 정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웃었다. 이번에는 뒤의 둘도 같이 웃었다. 나루 위쪽에서 장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생선 바구니를 내려놓던 아낙이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숯을 싣고 온 젊은 사내는 밧줄을 고쳐 묶는 척했다. 모두 듣고 있었다. 모두 보았다.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들의 등 돌림이 물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장부?”

앞선 사내가 계단을 내려왔다. 한 칸. 또 한 칸. 젖은 판자가 그의 발밑에서 삐걱거렸다.

“장부를 보여 주면 네가 갚을 거냐?”

진소백은 대답하지 못했다. 약방에서 받는 품삯과 밥값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돈으로는 배의 낡은 노 하나도 새것으로 바꾸기 어려웠다.

사내는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못 갚으면 비켜.”

그가 손을 뻗었다. 선화가 배 안쪽으로 물러났다. 진소백은 생각보다 먼저 몸을 움직였다. 계단을 내려가 배와 사내 사이에 섰다. 발밑의 판자가 흔들렸다. 강물이 바로 옆에서 검게 출렁였다.

“아이를 건드리지 마십시오.”

앞선 사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말이 짧아지는군.”

“부탁입니다.”

“부탁은 무릎 꿇고 하는 거다.”

사내의 손이 날아왔다.

진소백은 피하려 했다. 어깨가 먼저 움직였고, 눈은 손바닥의 방향을 좇았다. 그러나 몸은 늦었다. 뺨에 불이 터졌다. 고개가 옆으로 꺾이고 혀끝에 피맛이 번졌다. 그는 한 발 밀려 배 난간에 허리를 부딪혔다. 숨이 막혔다.

선화가 “오라버니!” 하고 외쳤다.

그 소리가 사내들의 웃음 속에 묻혔다.

진소백은 뺨을 짚지 않았다. 짚으면 더 우스워질 것 같았다. 대신 눈을 들었다. 앞선 사내의 손목이 두꺼웠다. 손등에는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방금 때린 손. 새끼손가락 쪽 관절이 조금 부어 있었다. 의술을 배운 눈은 그런 것부터 보았다. 어디가 약한지, 어디를 누르면 손이 풀리는지. 하지만 보이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사내가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멱살을 잡으려 했다. 진소백은 반사적으로 손목 안쪽을 눌렀다. 촌구 아래, 맥을 짚던 자리. 손끝이 정확히 들어갔다. 사내의 손이 잠깐 움찔했다.

정말 잠깐이었다.

다음 순간 진소백의 배에 주먹이 박혔다. 속이 뒤집혔다. 그는 접히듯 앞으로 숙여졌다.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사내의 팔꿈치가 등 위로 떨어졌다. 무릎이 풀렸다. 젖은 판자에 손을 짚는 순간 나무 가시가 손바닥을 찔렀다.

“맥 짚냐? 의원 나리였어?”

뒤의 몽둥이 든 자가 그의 어깨를 발로 밀었다. 진소백은 옆으로 굴러 강가 쪽으로 미끄러졌다. 한쪽 팔이 판자 밖으로 빠졌다. 손가락 끝에 찬 강물이 닿았다. 물은 생각보다 깊고 빨랐다. 미끄러운 이끼가 손바닥 밑에서 뭉개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판자 틈을 움켜쥐었다.

머리 위에서 선화의 울음 섞인 숨소리가 들렸다.

“그만하세요! 배 가져가지 마세요. 제가, 제가 어떻게든—”

“그래. 네가 어떻게든 해야지.”

사내 하나가 배에 발을 올렸다. 낡은 배가 기우뚱했다. 선화가 중심을 잃고 노를 놓쳤다. 노가 배 바닥에 부딪혀 굴렀다.

진소백은 이를 악물고 몸을 끌어올렸다. 팔꿈치가 떨렸다. 배 속을 맞은 통증이 늦게 밀려와 등까지 저렸다. 그는 허리춤의 약낭을 더듬었다. 손끝에 작은 종이봉지가 걸렸다. 말린 백개자 가루였다. 찬바람 맞은 어깨 통증에 붙이려 가지고 다니던 것. 눈에 들어가면 맵고 따가울 수 있었다.

사내가 선화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진소백은 봉지를 찢어 던졌다.

가루는 바람을 타지 못하고 절반은 그의 손등에 묻었다. 그래도 일부가 사내의 얼굴 쪽으로 흩어졌다. 사내가 욕설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이 새끼가!”

선화가 그 틈에 배 뒤쪽으로 물러났다. 진소백은 몸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몽둥이가 옆구리를 때렸다. 나무가 살을 뚫고 뼈에 닿는 느낌이었다. 그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가 돌아왔다. 강 냄새, 썩은 밧줄 냄새, 제 입안의 피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는 이제 거리를 알았다.

사람 하나가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 몽둥이가 반 박자 늦게 보여도 피할 수 없는 거리. 넘어지면 일어나는 동안 세 번은 맞을 수 있는 거리. 말로는 막을 수 없고, 손끝 지식으로는 늦는 거리.

강호의 폭력은 소문처럼 멀리 있지 않았다. 검객과 문파와 비무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젖은 나루판 위에 서서, 아이의 팔을 잡고, 낡은 배의 밧줄을 끊으려 했다.

진소백은 숨을 끌어모았다. 옆구리가 타들어 갔다.

“선화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뒤로. 물에… 가까이 가지 마라.”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물에 가장 가까운 것은 그였다. 발꿈치가 이미 판자 끝에 걸려 있었다.

앞선 사내가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백개자 가루 탓에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의원 흉내 내는 놈이 제법 사람 귀찮게 하네.”

그는 진소백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손아귀가 목을 죄었다. 발끝이 판자에 겨우 닿았다. 진소백은 그의 손목을 두드렸다. 맥 자리도, 관절도 제대로 짚히지 않았다. 힘이 너무 달랐다.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놓…으십시오.”

“놓아 줄게.”

사내가 몸을 돌려 그를 강 쪽으로 밀었다.

등 뒤가 비었다. 진소백은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몸이 먼저 굳었다. 강물이 아래에서 입을 벌린 것 같았다. 차가운 물속으로 떨어지면, 맞은 배와 옆구리로는 제대로 헤엄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강은 물이 아니라 검은 구덩이였다.

그는 사내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손톱이 천을 파고들었다. 사내가 팔을 털었다. 진소백의 발이 미끄러졌다. 한쪽 다리가 허공으로 빠졌다. 선화가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배 밧줄이 팽팽하게 울렸다.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돌멩이가 사내의 관자놀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맞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소백은 그 틈에 판자 위로 무너졌다. 가슴이 나무에 부딪히며 숨이 튀어나갔다.

“그만두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루 위쪽, 안개가 걷히는 길목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등에 약재 꾸러미를 메고 있었다. 며칠 전 수상한 하수인들을 손쉽게 제압하던 그 처녀였다. 이름을 묻지 못했던, 아니 묻지 못하게 만들던 여인.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손에는 돌멩이 하나가 더 들려 있었다. 돌멩이를 쥔 손은 작았지만 이상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앞선 사내가 진소백의 멱살을 놓았다. 진소백은 기침을 했다. 목 안쪽이 긁힌 듯 아팠다.

“너는 또 뭐야.”

사내의 말끝이 거칠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진소백은 흐린 시야로 그 이유를 보았다. 여인의 발이 계단을 밟는 방식이 달랐다. 젖은 나무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어깨는 힘이 빠져 있었고, 눈은 사내들의 손과 발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진소백이 경혈을 보듯, 그녀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배를 가져가려면 낮에 장정들을 데리고 오세요. 장부도 펴고, 마을 어른들도 세우고요.”

여인이 말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아이 하나 끌고 가는 건 빚 받는 일이 아니라 도둑질입니다.”

뒤의 사내가 몽둥이를 고쳐 쥐었다. 여인의 시선이 그 손으로 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몽둥이 든 사내는 입술을 씰룩이다가 멈췄다.

나루 위쪽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졌다. 생선 바구니를 든 아낙이 더는 못 본 척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숯짐 사내도 밧줄을 놓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또 누군가 “하 노인 배라잖아” 하고 대꾸했다. 사람이 많아지자 하수인들의 어깨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여인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모인 눈들을 싫어하는 것인지 진소백은 알 수 없었다.

앞선 사내가 침을 뱉었다. 침이 진소백의 손 가까이에 떨어졌다.

“오늘은 얼굴들이 많아서 봐준다.”

그는 선화를 가리켰다.

“사흘이다. 사흘 뒤에도 돈 없으면 배든 계집이든 가져간다. 곽 형님 이름으로 한 말이다.”

곽서의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 사이의 웅성거림이 죽었다. 방금 생긴 용기가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진소백은 그 이름이 공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느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는 사람들의 목을 조였다.

하수인들은 계단을 올라갔다. 뒤의 사내 하나가 지나가며 진소백의 어깨를 일부러 걷어찼다. 그는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 쪽이 아니었다. 여인이 한 발 먼저 내려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손아귀는 차갑고 단단했다.

사내들이 안개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도 누구도 곧장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바구니와 밧줄과 짐을 다시 붙잡았다. 방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움직이려 애썼다. 그러나 시선은 자꾸 이쪽으로 흘러왔다가 도망갔다.

선화가 배에서 내려와 진소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라버니, 피가…”

그제야 진소백은 입술이 터졌다는 것을 알았다. 손등으로 닦으니 붉은 선이 묻어났다. 선화의 손이 떨렸다. 아이는 헝겊을 꺼내려다 제 치마폭을 찢으려 했다.

“찢지 마라.”

진소백은 가까스로 말했다. “내 약낭에 헝겊이 있다.”

선화가 약낭을 열었다. 손이 서툴러 매듭을 잘 풀지 못했다. 진소백은 도와주려 손을 들었다가 옆구리 통증에 숨을 삼켰다. 선화가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가 괜히… 제가 그냥 따라갔으면…”

“그런 말 하지 마라.”

진소백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의도보다 세게 나왔다. 선화가 움찔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아직 이름 붙이기 어려운 두려움도 그 안에 같이 있었다. 진소백은 그 눈을 오래 보지 못했다. 제 몰골이 아이에게 더 큰 짐이 되는 것 같았다.

여인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진소백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손놀림은 의원의 손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진소백은 반사적으로 물러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입술은 얕아요. 문제는 옆구리네요.”

“괜찮습니다.”

“괜찮은 사람은 숨을 그렇게 쉬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차분했다. 꾸짖는 것도, 위로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는 목소리였다. 진소백은 기분이 상해야 하는지 고마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팠다. 아픔이 생각을 밀어냈다.

“갈비가 부러졌을까요?”

그가 묻자 여인이 잠시 손을 멈췄다. 진소백은 자기 질문이 너무 의원답다는 생각을 했다. 맞으면서도 뼈부터 헤아리는 버릇.

“금은 갔을 수 있어요. 깊게 숨 쉬지 말고, 오늘은 많이 움직이지 마세요.”

“배를… 지켜야 합니다.”

말을 하고 나니 부끄러웠다. 방금 그는 배를 지키지 못했다. 선화를 지킨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선화가 끌려가는 것을 조금 늦췄고, 그 대가로 맞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야 상황이 멈췄다.

여인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 눈빛을 진소백은 읽을 수 없었다. 읽으려 할수록 안개 속에 손을 넣는 느낌이었다.

“지키려면 먼저 살아 있어야죠.”

짧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하 노인이 헐레벌떡 달려온 것은 그 뒤였다. 노인은 짐도 내려놓지 못한 채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질 뻔했다. 선화가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가 안겼다. 하 노인은 아이의 어깨와 얼굴을 더듬어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다 진소백을 보고 입을 벌렸다.

“소백아, 이게 무슨…”

진소백은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하 노인의 눈이 이미 모든 것을 보았다. 찢어진 입술, 흙 묻은 옷, 옆구리를 감싸는 손, 배 가까이에 남은 발자국들.

노인은 한순간에 늙어 보였다.

“내가 갚는다 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는데.”

그 말 속에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변명이 섞여 있었다. 진소백은 그 변명이 하수인들을 향한 것도, 선화를 향한 것도, 자기 자신을 향한 것도 같다고 느꼈다.

“사흘이라고 했습니다.”

진소백이 말했다.

하 노인의 입술이 떨렸다. “사흘…”

그 숫자는 너무 짧았다. 강을 오가며 벌 수 있는 돈, 낡은 배로 실을 수 있는 짐, 먹어야 하는 밥과 갚아야 하는 빚을 진소백은 대략 셈할 수 있었다. 사흘은 기한이 아니라 목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완전히 흩어졌다. 방금 모였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물안개도 걷히고 해가 떠올랐지만, 나루는 더 밝아지지 않았다. 각자의 삶을 붙든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탓하고 싶었다. 왜 나서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진소백은 제 옆구리를 감싸 쥔 손을 보았다. 나섰던 그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사람들의 두려움이 갑자기 낯설지 않았다.

그것이 더 참담했다.

약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지 않았지만, 진소백에게는 강 하나를 거슬러 오르는 것 같았다. 선화가 부축하려 했고, 하 노인이 몇 번이나 대신 업겠다고 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걷지 않으면 뭔가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여인은 조금 떨어져 따라왔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았다.

약방 문턱을 넘자마자 그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허봉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어제 말려 둔 감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습기 먹기 전에 안으로 들였을 것이다. 오늘은 손을 뻗을 힘이 없었다.

선화가 물을 데우러 갔다. 하 노인은 문밖에 서서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진소백은 그만하시라고 말했지만 노인은 멈추지 못했다. 결국 여인이 노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진소백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수치와 공포까지 들여다볼 힘이 없었다.

그는 홀로 남아 옷깃을 열었다. 옆구리에 붉고 푸른 멍이 번지고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 보자 날카로운 통증이 갈비뼈 사이로 뛰었다. 부러지지는 않은 듯했다. 금이 갔을 가능성은 있었다. 의원의 머리는 차갑게 판단했다. 찬 찜질, 움직임 제한, 기침 조심, 피멍이 번지는지 관찰.

그러나 몸은 다른 것을 기억했다.

뺨을 치던 손바닥. 배에 박히던 주먹. 몽둥이가 옆구리를 파고들던 소리. 판자 끝에서 발이 허공을 딛던 순간. 강물이 아래에서 기다리던 검은 입. 선화의 비명. 사람들의 돌아선 얼굴.

진소백은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의 가시가 살을 찔렀다. 아침에 박힌 나무 가시였다. 그는 핀셋을 찾아 뽑을 수 있었다. 상처를 씻고 약을 바를 수 있었다. 누군가 다치면 피를 멎게 하고 열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다치기 전에 막을 수는 없었다.

문밖에서 선화의 발소리가 다가오다 멈췄다. 아이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진소백은 그 망설임을 알 것 같았다. 고맙다고 말하면 그가 더 아플까 봐,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가 더 초라해질까 봐. 어린아이가 그런 것까지 헤아리게 만든 세상이 미웠다.

“선화야.”

그가 불렀다.

문이 조금 열렸다. 선화가 대야를 들고 서 있었다. 눈이 빨갰다.

“들어와라. 물 식겠다.”

선화는 조심스럽게 들어와 대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가 안 나섰으면… 저는 끌려갔을지도 몰라요.”

진소백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라버니까지 다칠 뻔했어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은 서로를 지우지 못했다. 선화는 헝겊을 적셔 그의 입술 옆 피를 닦았다. 손길이 조심스러워 오히려 더 아팠다.

진소백은 창밖을 보았다. 강 쪽 하늘이 맑아지고 있었다. 물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빛났다. 배들은 다시 오가고, 짐은 실리고, 사람들은 값을 흥정할 것이다. 사흘 뒤에도 강은 흐를 것이다. 곽서의 하수인들도 올 것이다.

그때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말로 빌 것인가. 장부를 보자고 할 것인가. 약재 가루를 또 던질 것인가. 맞고 넘어지고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인가.

그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약초를 고르고 맥을 짚고 침을 놓는 손. 사람을 살리는 손이라 믿어 온 손. 그러나 오늘 그 손은 선화의 팔을 잡아끄는 손을 떼어 내지 못했다. 강으로 밀리는 제 몸 하나도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힘이 없으면, 옳은 말은 강가의 안개처럼 흩어졌다.

힘이 없으면, 누군가의 선함은 맞아 눕는 시간만 조금 늘렸다.

힘이 없으면, 아무도 지킬 수 없었다.

진소백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내는 순간 너무 분명해질 것 같았다. 대신 젖은 헝겊을 받아 스스로 입술을 눌렀다.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통증이 눈가를 찔렀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아직 싸울 줄 몰랐다. 오늘도 그는 지켜지는 쪽이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에 누군가의 손이 선화에게 닿을 때, 자신이 또 이렇게 무너져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더 아팠다. 그 아픔 한가운데 아주 작은 것이 남았다. 두려움보다 작고, 분노보다 조용한 것.

물러서지 않겠다는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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