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비는 오지 않았는데 골목마다 젖은 냄새가 났다.
밤새 사람들이 흘린 발자국과 엎질러진 술, 문틈으로 새어 나온 등잔 기름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새벽이 지나도 마을은 밝아지지 않았다. 해는 산등성이 위에 걸렸으나, 사람들 얼굴에는 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섯째였다.
진소백은 약방 뒤뜰 우물가에서 손을 씻었다. 손톱 밑에 검붉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피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마르고, 흙이라고 부르기에는 냄새가 짙었다. 그는 몇 번이고 물을 끼얹었다. 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차가움이 뼈에 닿았다.
죽은 자는 마을 동쪽 헛간 뒤에서 발견되었다. 장정 둘이 이불에 싸서 약방까지 끌고 왔고, 의원은 한참 말없이 들여다보다가 천을 덮었다. 사람들은 밖에서 웅성거렸다. 누구도 크게 울지 않았다. 슬픔보다 먼저 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살인귀가 돌아다닌다니까.”
“저주라 했잖아. 물가에 붙은 마을은 오래 못 간다고.”
“아니야. 사람이 한 짓이야. 사람이.”
그 말이 가장 무서웠다. 사람이 한 짓이라면,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진소백은 마른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손바닥 가운데가 따끔거렸다. 어젯밤 선화를 밀치려던 사내를 막다가 넘어지며 쓸린 자리였다. 별것 아닌 상처인데 자꾸 눈이 갔다. 몸은 아직도 그때의 무력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을 뻗었고, 막지 못했다. 버텼고, 밀렸다. 겨우 몸 하나 던져 세워 둔 것이 전부였다.
그 여인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약재를 팔러 왔던 그 처녀.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않았던 사람. 그녀는 싸움을 싸움처럼 보이게 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발을 반 걸음 비껴 흘리고, 손목을 잡는 대신 팔꿈치 아래를 툭 밀었다. 힘으로 맞받지 않았다. 몸이 먼저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진소백은 그 장면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인 껍질뿐이었다. 그는 의원이었다. 사람의 열과 맥, 붓기와 기침, 피로한 얼굴을 보는 데 익숙했지 주먹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를 가늠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약방 문이 거칠게 열렸다.
“진 의원! 밖에 좀 나와 보시오!”
진소백이 고개를 들었다. 부르는 이는 생선 장수 장씨였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숨은 목구멍에 걸린 듯 거칠었다.
“무슨 일입니까?”
“잡았소.”
“누구를요?”
“그놈 말이오. 그 살인귀.”
진소백의 손에서 수건이 미끄러졌다.
밖으로 나오자 거리 끝에서 먼지가 일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밥 짓는 연기도 제대로 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뛰어나오고, 아이들이 울며 어미 치마폭에 매달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두려움이 길을 만들고 있었다.
“누구를 잡았다는 겁니까?”
장씨가 침을 삼켰다.
“뇌곡이오. 그 떠돌이.”
진소백은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장터 끝 헌 창고에 머물던 사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말을 걸면 눈을 피했다. 얼굴 왼편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어 아이들이 보고 울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파 장사꾼에게서 물건을 받은 적이 있다, 밤마다 강가에 나가 혼잣말을 한다, 죽은 닭을 묻는 모습을 보았다. 소문은 많았으나 그중 어느 것도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어디입니까?”
“나루터 쪽 빈터요. 사람들이 끌고 갔소.”
진소백은 약낭을 움켜쥐었다. 약초와 붕대, 작은 가위, 바늘이 든 낡은 주머니가 허리춤에 매달려 흔들렸다. 그는 달렸다.
빈터에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커졌다. 처음에는 웅성거림이었다. 곧 욕설이 되었고, 다시 돌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살갗이 맞는 둔탁한 소리가 섞였다. 진소백은 사람들 어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뇌곡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등이 구부정했다. 양손은 뒤로 묶였고, 한쪽 눈가가 터져 피가 흘렀다. 피는 턱 끝에서 뚝뚝 떨어져 먼지 위에 검은 점을 만들었다. 흉하다는 얼굴은 피와 흙 때문에 더욱 일그러져 보였다. 그러나 진소백의 눈에는 다른 것이 먼저 보였다.
숨이 짧았다. 어깨가 깊이 오르내리지 못했다. 왼쪽 다리는 오래전 다친 듯 무릎 아래가 바깥으로 조금 휘어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손목에는 굳은살보다 물집이 많았다. 사내가 억세게 살아온 흔적은 있었으나, 밤마다 사람을 덮쳐 제압할 몸은 아니었다.
누군가 뇌곡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말해! 누구 지시를 받았어!”
뇌곡은 입술을 달싹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겁에 질려 혀가 굳은 사람의 입이었다.
“그 얼굴 봐라. 저게 사람 얼굴이냐?”
“사파 놈들이랑 장사했다더니!”
“다섯이나 죽었다. 다섯이나!”
돌 하나가 날아와 뇌곡의 어깨를 쳤다. 그는 비명도 못 지르고 옆으로 쓰러졌다. 사람들 틈에서 어린아이 울음이 터졌다.
진소백은 더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나섰다.
“그만하십시오.”
처음에는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뇌곡 앞에 섰다.
“그만하십시오!”
그제야 몇몇이 그를 알아보았다. 약방의 젊은 의원. 외지에서 온, 말수가 적고 얼굴에 늘 피곤한 그림자가 있는 사람.
“비켜, 진 의원.”
“아직 확인된 게 없습니다.”
“확인? 시체가 다섯이야! 뭘 더 확인해!”
“이 사람은 아닙니다.”
말이 떨어지자 빈터가 순간 낮게 가라앉았다. 곧 비웃음이 번졌다.
“의원이 점쟁이도 하나?”
“어떻게 알아?”
진소백은 뇌곡을 내려다보았다. 뇌곡은 자신을 올려다보지도 못했다. 피가 들어간 눈을 감았다 떴고, 묶인 손끝이 떨렸다. 손가락 마디가 부어 있었다. 최근에 무거운 것을 들거나 싸운 손이 아니었다. 오래 굶은 사람의 손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한순간에 당했습니다. 저항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덩치가 큰 사람도 있었고, 술 취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 다리를 보십시오. 숨도 제대로 못 쉽니다. 방금 몇 대 맞은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래 앓았습니다.”
“앓았다고 못 죽여?”
“사람 하나를 뒤에서 찌르는 것과 다섯 밤 이어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다릅니다.”
진소백은 말을 고르려 했다. 너무 자세히 말하면 사람들은 더 무서워할 것이고, 너무 적게 말하면 듣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의원으로서 본 것을 말했다.
“이 사람은 겁먹은 사람입니다. 쫓기는 사람의 몸입니다. 쫓는 사람의 몸이 아닙니다.”
그 말이 누군가의 분노를 건드렸다.
“겁먹은 척하는 거지!”
한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곽서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 어젯밤 선화에게 손을 뻗었던 무리와 함께 있던 얼굴이었다. 턱이 각지고 눈빛이 미끈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보다 한 박자 늦게 분노하는 척했고, 한 박자 빠르게 주먹을 쥐었다.
“외지인끼리 감싸는 꼴이 볼만하군.”
진소백은 그를 보자 속이 차갑게 식었다.
“이건 감싸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뭐냐? 네가 범인을 알아? 아니면 네가 숨겨 줬나?”
사람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두려움은 쉽게 방향을 바꾸었다. 방금까지 뇌곡에게 꽂혀 있던 날이 진소백에게도 닿았다.
진소백은 약낭 끈을 손가락으로 쥐었다. 손끝이 땀으로 젖었다.
“몰매로 사람을 죽이면, 당신들이 찾는 살인귀와 무엇이 다릅니까?”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수인이 달려들었다. 어깨로 밀어붙이는 움직임이었다. 진소백은 그 순간 어젯밤의 장면을 떠올렸다. 그 여인은 힘을 정면으로 받지 않았다. 반 걸음 비켜서며 손목이 아니라 팔의 흐름을 밀었다.
진소백도 그렇게 해 보려 했다.
왼발을 비끼고, 오른손으로 상대 팔꿈치 아래를 밀었다. 머리로는 길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몸은 늦었다. 발끝이 먼지에 걸렸고, 어깨가 완전히 빠지지 못했다. 상대의 몸통이 그대로 부딪쳐 왔다.
숨이 끊겼다.
진소백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등으로 바닥을 치자 하늘이 한순간 하얘졌다.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외침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팔꿈치를 짚었다.
하수인이 웃었다.
“의원이면 약이나 달이지.”
다른 사내 둘이 뇌곡을 다시 끌어올렸다. 뇌곡의 발끝이 땅을 긁었다. 진소백은 일어나려 했지만 옆구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몸을 세우며 다시 한 번 그 움직임을 떠올렸다. 비껴서고, 흐름을 끊고, 힘을 흘린다. 말은 쉬웠다. 몸은 돌처럼 굳었다.
하수인 하나가 발을 들어 뇌곡의 배를 차려 했다.
진소백은 가까스로 몸을 던졌다. 이번에도 계산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그는 뇌곡 앞을 막으며 양팔을 들었다. 발길질이 팔뚝에 박혔다. 뼈가 울렸다. 손끝까지 저려 왔다. 그는 물러나지 않으려 했지만 무릎이 꺾였다.
“비켜!”
“못 비킵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스스로 들어도 초라했다. 그러나 말은 나왔다.
“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됩니다.”
“네가 책임질 거냐?”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건 당신들입니다.”
그때 사람들 뒤편에서 낮고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들 하세요.”
소란이 갈라졌다. 약재 처녀가 서 있었다. 오늘은 등짐 대신 작은 보따리만 들고 있었다. 머리는 단정히 묶었고, 눈빛은 차분했다. 그녀가 빈터로 들어오자 사람들은 이상하게 길을 냈다. 그녀가 강해 보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란 속에서도 혼자만 숨이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진소백은 알 수 없었다.
하수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너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소백 옆을 지나 뇌곡과 하수인 사이에 섰다. 움직임은 작았다. 그런데도 빈터의 중심이 바뀌었다. 사내 하나가 그녀를 밀치려 손을 뻗었다.
그녀는 손목을 잡지 않았다. 손등으로 상대 손목 바깥을 살짝 쳐 냈고, 동시에 발을 반 걸음 들여놓았다. 사내의 팔이 허공을 긁었다. 중심이 앞으로 쏠린 사내는 제 발에 걸려 무릎을 꿇었다. 큰 소리도 없었다. 그녀의 소매 끝만 짧게 흔들렸을 뿐이었다.
진소백은 숨을 삼켰다.
같은 동작이었다. 아니, 자신이 흉내 내려고 했던 것의 진짜 모습이었다. 힘이 아니라 자리. 손이 아니라 때. 그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몸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팔뚝의 통증이 그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었다.
“사람을 붙잡았으면 관에 넘기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죽이면,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죄를 하나 더 만드는 겁니다.”
“관이 뭘 해 줬는데?”
누군가 소리쳤다.
“죽은 사람들을 살려 줘? 밤마다 문 걸어 잠그고 떠는 거 대신 해 줘?”
그녀는 그쪽을 보았다. “그래서 눈앞의 약한 사람을 죽이면 밤이 끝납니까?”
대답이 막혔다. 분노는 남아 있었으나 말이 끊겼다.
곽서의 하수인이 이를 드러냈다.
“다들 속지 마시오! 이놈들이 시간을 끌어 주는 거요. 살인귀가 도망갈 시간을!”
그는 다시 사람들을 부추기려 했다. 진소백은 그 말을 듣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보았다.
빈터 가장자리. 소란의 뒤쪽에서, 하수인 하나가 슬그머니 물러나고 있었다. 방금까지 돌을 주워 들고 가장 크게 떠들던 자였다. 그는 사람들의 어깨 사이로 몸을 낮추더니 골목으로 빠졌다. 도망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목적지가 있는 걸음이었다.
진소백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그 골목은 나루터 뒤편으로 이어졌다. 더 가면 낡은 사공의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 끝에 하 노인의 집이 있었다. 늘 문을 걸어 잠그고, 작은 창마저 안에서 덧대어 둔 집. 낡은 배를 가진 겁 많은 늙은 사공의 집.
왜 그쪽으로?
진소백은 한 걸음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뇌곡이 다시 휘청였다. 묶인 손목이 너무 세게 조여 피가 돌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떠나면 뇌곡은 다시 맞을 것이다.
약재 처녀가 진소백의 시선을 알아챈 듯 잠깐 그를 보았다. 속을 읽은 것처럼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어딘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본 것뿐이었다.
“여기는 제가 막겠습니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
진소백은 망설였다. “하지만—”
“저 사람 손부터 풀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본 게 있으면 놓치지 마세요.”
진소백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등을 맡기는 일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당연하게 다가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뇌곡에게 다가갔다. 매듭은 거칠게 묶여 있었다. 손목 살이 벗겨져 있었다. 진소백은 약낭에서 작은 가위를 꺼내 끈을 끊었다.
뇌곡의 손이 풀리자 그는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진소백은 빠르게 그의 손목을 살폈다. 맥은 약했지만 뛰고 있었다.
“숨을 천천히 쉬십시오. 도망가지 마십시오. 도망가면 정말 죽습니다.”
뇌곡이 겨우 눈을 들었다. 그 눈에는 감사보다 공포가 많았다. 그게 더 진실해 보였다.
진소백은 일어섰다. 옆구리 통증이 따라붙었다. 빈터에서는 아직 고함이 오갔지만, 약재 처녀가 가운데 서자 누구도 쉽게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곽서의 하수인은 욕을 뱉었으나 먼저 덤비지 않았다. 조금 전 넘어진 사내의 무릎이 아직 떨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소백은 골목으로 달렸다.
나루터 뒤쪽 길은 좁고 축축했다. 빨래줄에 걸린 젖은 천이 얼굴을 스쳤다. 낮은 담벼락 너머로 누군가 숨죽여 내다보다가 황급히 문을 닫았다. 진소백은 소리를 죽이려 했지만 발걸음은 자꾸 돌을 찼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팔뚝은 욱신거리고, 숨은 목에서 끓었다.
앞서 빠져나간 하수인의 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골목 바닥의 진흙에 깊게 찍힌 발자국이 있었다. 한 방향으로 빠르게 간 흔적이었다. 진소백은 그것을 따라갔다.
하 노인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집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하 노인은 낮에도 빗장을 걸어 두는 사람이었다. 선화가 와서 물을 길어 주거나 뱃일을 도울 때도, 문부터 세 번 두드리고 이름을 말해야 겨우 열어 주었다.
진소백은 숨을 죽였다.
안에서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 늙은 사람의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진소백은 문틈을 밀었다.
“하 어르신?”
안은 어두웠다. 창이 덧대어져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비린 강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 눅눅한 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방바닥에는 작은 상자들이 뒤집혀 있었다. 낚싯줄, 녹슨 갈고리, 헝겊 조각, 말린 생선 껍질 같은 것들이 흩어져 있었다.
하 노인은 방 한쪽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얼굴이 종잇장처럼 희었다. 두 손으로 품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진소백이 들어오자 그는 화들짝 놀라 몸을 더 웅크렸다.
“누, 누구냐!”
“저입니다. 진소백입니다.”
하 노인의 눈이 초점을 찾았다. 안도와 경계가 거의 동시에 스쳤다.
“왜 왔느냐? 누가 오라 했느냐?”
“빈터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곽서 쪽 사람 하나가 이쪽으로 빠지는 걸 봤습니다. 누가 들어왔습니까?”
하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이 마르게 떨렸다. 진소백은 방 안을 살폈다. 서랍장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낡은 궤가 열려 있었다. 뚜껑의 나무못이 비틀려 있었다. 억지로 연 흔적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 몇 장이 물기에 젖어 말려 있었다.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하 노인이 발끝으로 슬그머니 그것들을 가리려 했다.
진소백은 그 움직임을 보았다.
“다치셨습니까?”
“아니다.”
대답이 너무 빨랐다.
“무엇이 없어졌습니까?”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번에도 너무 빨랐다. 하 노인은 품을 움켜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품 안에 무언가 있었다. 종이인지 헝겊인지, 얇고 접힌 것. 진소백은 묻고 싶었다. 그러나 하 노인의 눈을 보자 말이 목에 걸렸다.
그 눈은 방금 뇌곡의 눈과 닮아 있었다. 쫓기는 사람의 눈. 무엇을 감추는 사람이라기보다, 빼앗기지 않으려 몸 전체로 버티는 사람의 눈이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 골목 끝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였다. 진소백은 문밖으로 나가 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좁은 길은 비어 있었다. 강 쪽에서 바람만 올라와 젖은 냄새를 밀어 넣었다.
“하 어르신, 정말 괜찮으십니까?”
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턱이 떨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진소백은 그 말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을 모른다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 노인이 눈을 피했다. “아무것도 없다. 잃어버린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다. 그러니 너도 못 본 걸로 해라.”
“누가 들어왔는지 봤습니까?”
“못 봤다.”
“문은 왜 열려 있었습니까?”
“바람이겠지.”
낡은 문짝에는 안쪽 빗장이 부러져 매달려 있었다. 바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것을 보았고, 하 노인도 그가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방 안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놓였다.
진소백은 더 캐묻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하 노인은 그에게 마음을 연 사람이 아니었다. 선화를 도와주는 늙은 사공, 겁이 많아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사람. 가끔 약이 필요하면 약방에 들러 눈치를 보며 값을 깎던 사람. 그 정도의 인연이었다. 깊은 비밀을 요구하기에는 두 사람 사이의 길이 너무 짧았다.
그럼에도 이 집은 헤집어져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마을 사람들이 뇌곡을 죽이려 몰려든 바로 그때, 이곳을 노렸다.
진소백은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조심스레 한쪽으로 밀었다. 하 노인은 그가 종이 조각에 손대지 않는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진소백은 일부러 그것들을 보지 않는 척했다. 대신 부러진 빗장을 집어 문 옆에 기대 놓았다.
“오늘 밤은 혼자 계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괜찮다.”
“괜찮지 않습니다.”
하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를 내려는 듯했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진소백은 약낭에서 붕대를 꺼냈다. 하 노인의 손목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붙잡아 비틀었거나, 스스로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으려 버틴 흔적이었다.
“손을 주십시오.”
“필요 없다.”
“피가 납니다.”
하 노인은 한참 망설이다 손을 내밀었다. 진소백은 상처를 닦았다. 얕았다. 그러나 손목 안쪽 살갗이 벗겨진 방향이 마음에 걸렸다. 빼앗기지 않으려 끌어당긴 자국 같았다. 그는 붕대를 감으며 하 노인의 품 쪽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 노인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놈이 아니야.”
진소백의 손이 멈췄다.
“뇌곡 말입니까?”
하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방금 말이 새어 나갔다는 듯 얼굴이 굳었다. 진소백은 낮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몰라.”
“하 어르신.”
“모른다 했다.”
하 노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겁 많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세우는 울타리 같은 소리였다. 진소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밀면 문은 닫힐 것이다. 이미 한 번 부서진 문 말고, 사람 안쪽의 문이.
밖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약방 심부름하는 아이였다.
“진 의원! 빈터 쪽 정리됐어요! 그 여인이 관아 사람 부르러 보냈대요!”
진소백은 대답하려다 하 노인을 보았다.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오지 마라.”
“오늘은 오겠습니다.”
하 노인은 눈을 치켜떴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진소백은 문밖으로 나왔다. 골목에는 어느새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하 노인의 집 안쪽 어둠은 문턱을 넘어 나오지 못하고 고여 있었다.
빈터로 돌아가는 길, 진소백은 걸음을 늦추었다.
아침의 소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뇌곡은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았다고 해서 누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오늘 밤 다시 문을 걸어 잠글 것이고, 누군가는 뇌곡의 이름을 속삭일 것이다. 흉한 얼굴, 떠돌이, 사파와 거래했다는 소문. 그것만으로도 사람 하나를 죽일 만큼 충분하다고 믿는 얼굴들을 진소백은 보았다.
정과 사를 나누는 말들이 떠올랐다. 바른 사람과 그른 사람. 깨끗한 무리와 더러운 무리. 그러나 빈터에서 돌을 든 이들은 스스로 바르다고 믿었고, 땅에 엎드린 뇌곡은 그저 겁에 질려 있었다. 누가 정이고 누가 사인지, 그 경계는 생각보다 쉽게 뒤집혔다.
진소백은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발길질을 막은 자리가 벌써 퍼렇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이기지 못했다. 지키려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다. 그 여인의 움직임을 흉내 냈고, 실패했다. 몸은 늦었고 힘은 모자랐다.
그런데도 한 가지는 보았다.
소동의 방향이 너무 정확했다. 사람들의 분노가 뇌곡에게 몰린 순간, 다른 손은 하 노인의 집을 뒤졌다. 살인귀라는 말이 커질수록 진짜 노림수는 더 조용해졌다. 밤마다 이어진 죽음의 공포 속에서, 누군가는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진소백은 하 노인의 닫힌 문을 돌아보았다.
그 안에서 늙은 사공은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너무 빠르게, 너무 절박하게.
노려진 것은 뇌곡이 아니었다.
노려진 것은 하 노인이었다.
이 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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