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의 주인
새벽 물안개는 늦게까지 걷히지 않았다.
수향의 강은 밤새 비밀을 삼킨 사람처럼 잔잔했다. 나루 말뚝마다 젖은 밧줄이 감겨 있었고, 배 밑바닥을 두드리는 물소리는 낮고 규칙적이었다. 진소백은 약방 뒤뜰에서 말린 삽주 뿌리를 털다가, 손끝에 묻은 흙을 내려다보았다.
하 어르신의 방에 남아 있던 흙과 닮아 있었다.
돈주머니는 그대로였고, 낡은 옷가지와 이불 속만 뒤집혀 있었다. 누군가 방을 뒤졌으나 훔친 것은 없었다. 훔치려던 것이 없었던 게 아니라, 찾던 것을 찾지 못한 것이다. 진소백은 그 생각을 밀어내려 했지만, 손을 움직일수록 더 또렷해졌다.
종이.
하 어르신은 끝내 어디에 숨겼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진소백을 오래 보다가, “강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고만 했다.
그 말이 자꾸 귓속에 남았다.
“약 달인 물, 끓어넘쳐요.”
약재 처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이름을 묻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다. 그녀는 늘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사라질 때는 물안개처럼 조용했다. 진소백이 급히 화로 쪽으로 몸을 돌리자, 누런 약물이 항아리 가장자리까지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녀가 먼저 젖은 헝겊으로 항아리를 잡아 불가에서 밀어냈다.
“생각이 많으시네요.”
“하 어르신 방 일을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하세요.”
그녀는 낮게 말했다. 꾸짖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진소백은 그 말에 손등을 맞은 듯했다.
“생각만 해서 되는 일입니까?”
“캐고 다닌다고 되는 일도 아니에요.”
그녀의 눈이 잠깐 약방 바깥을 향했다. 길 건너 객잔 앞에는 벌써 손님 두엇이 서성였다. 장사치 하나가 나루 쪽으로 가는 짐꾼을 부르고 있었고, 물지게를 진 아이가 다 젖은 바짓단으로 뛰어갔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진소백은 약낭을 허리춤에 단단히 매었다. 그 안에는 지혈가루와 말린 감초, 작은 침통, 상처에 바르는 고약이 들어 있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부러진 검은 여전히 보따리 깊은 곳에 있었다. 유품은 무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그에게는 그랬다.
“어디 가시게요?”
“나루에 다녀오겠습니다.”
“진소백.”
그녀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진소백은 돌아보았다.
“그 사람들, 강가에서 사는 사람들을 겁주는 데 익숙해요. 겁을 안 먹는 사람을 보면 더 세게 밟으려 합니다.”
“그럼 겁먹은 척해야 합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약장 아래에서 작은 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던졌다. 진소백이 받아 보니 말린 쑥과 산초가 섞인 냄새가 났다.
“물에 젖은 상처는 금방 곪아요. 필요할 거예요.”
그 말이 평범한 걱정인지, 곧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예고인지 진소백은 분간하지 못했다. 그는 주머니를 약낭에 넣고 밖으로 나섰다.
나루는 이미 사람으로 붐볐다. 장삿배 두 척이 물건을 풀고 있었고, 새벽에 들어온 생선 바구니에서는 비린내가 훅훅 올라왔다. 사공들은 서로의 어깨를 밀치며 밧줄을 당겼다. 그 움직임 속에는 오래 익은 질서가 있었다. 누가 먼저 배를 대고, 어느 짐이 어느 길로 나가며, 어느 자리에 누구의 그늘막이 펴지는지 모두가 아는 듯했다.
그리고 그 질서의 한가운데에 낯선 소란이 있었다.
흰 무복을 입은 젊은 사내가 짐꾼 하나를 밀쳐 넘어뜨리고 있었다. 무복 소매 끝에는 청색 실로 산 모양 문양이 수놓여 있었다. 진소백도 들어 본 이름의 문파였다. 명문 정파라 불리며, 객잔 손님들이 술잔을 들 때마다 한 번쯤 떠올리는 곳.
“감히 내 짐을 젖게 해?”
젊은 제자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컸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생각이 없다는 듯했다.
넘어진 짐꾼은 열대여섯쯤 되어 보였다. 어깨에 멘 광주리에서 말린 종이가 몇 장 빠져나와 젖은 흙에 붙었다. 아이는 허둥지둥 그것을 주워 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배가 흔들려서…….”
“배가 흔들린 게 네 손버릇까지 흔들었느냐?”
젊은 제자가 아이의 멱살을 잡았다. 주변 사람들은 눈길을 피했다.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정파 제자의 칼은 허리에 있었고, 그가 속한 문파의 이름은 수향 같은 곳에서도 무거웠다.
진소백은 발을 멈추었다. 머릿속 어디선가 고진명의 목소리가 스쳐 갔다. 검보다 먼저 손을 보라. 손보다 먼저 발을 보라. 발보다 먼저 숨을 보라.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검도 없고, 상대의 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젊은 제자의 손목이 아니라, 젖은 종이 쪽으로 몸을 낮췄다. 아이가 떨며 주워 담던 종이를 함께 집어 들었다.
“말린 약재 싸는 종이입니다. 젖으면 못 씁니다.”
젊은 제자의 시선이 그에게 내려왔다.
“너는 뭐냐?”
“약방에서 일합니다.”
“그래서?”
“아이 손목을 놓아 주시면, 젖은 종이 값은 제가 약방에 말해 보겠습니다.”
젊은 제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는 아이를 놓지 않은 채 진소백을 훑었다. 허리춤에 칼도 없고, 옷은 약재 냄새와 물비린내가 섞인 낡은 옷이었다. 진소백은 그 시선을 견디며 젖은 종이를 가지런히 모았다.
“정파 제자가 구휼 받으러 다니는 거지 손을 빌려야 하나?”
주변에서 낮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은 사람은 곧 입을 다물었다. 젊은 제자는 그 웃음이 자신을 향했는지, 진소백을 향했는지 따질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나루 끝의 소란이 한순간 가라앉았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니었다. 사공들이 밧줄을 놓지 않았고, 장사치들이 물건값을 부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소리가 한 겹 낮아졌다. 물 위를 지나던 바람이 멎은 것처럼.
곽서가 왔다.
진소백은 그가 곽서라는 것을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았다. 먼저 보인 것은 사람들의 비켜서는 등줄기였다. 그다음은 짙은 회색 장포 자락, 물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처럼 넓고 낮은 걸음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자리가 생겼다. 그의 뒤에는 거친 사내 셋이 따라왔고, 그중 하나는 며칠 전 객잔 앞에서 진소백을 밀쳤던 얼굴이었다.
곽서는 마흔을 넘겼을 듯했다. 수염은 짧게 다듬었고, 눈가에는 웃음주름인지 흉터인지 모를 선이 있었다. 손에는 짧은 대나무 부채를 들고 있었는데, 더위를 식히기 위한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부채 끝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주변 사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따라갔다.
그는 젊은 정파 제자 앞에서 멈추었다.
“수향 나루에서 싸움값은 비쌉니다.”
젊은 제자가 아이의 멱살을 놓았다. 놓으면서도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듯 손을 털었다.
“네가 곽서냐?”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청악문 제자 양문혁이다. 내 짐이 젖었다. 이 나루를 네가 맡는다면 책임도 네게 있겠지.”
곽서는 아이가 떨어뜨린 젖은 종이와 흙 묻은 광주리를 보았다. 그 눈길에는 분노도 자비도 없었다. 물건의 무게와 사람의 처지를 동시에 재는 상인의 눈 같았다.
“배가 흔들린 건 강 탓이고, 강 위에서 짐을 성급히 내린 건 손님 탓입니다. 그래도 나루에서 일이 났으니 종이값은 제가 물겠습니다.”
양문혁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번졌다.
“그뿐인가?”
곽서는 부채로 자기 뒤의 사내를 가볍게 가리켰다. 사내가 품에서 동전을 꺼냈다. 아이에게 주는 게 아니라 양문혁에게 내밀었다.
“젖은 종이와 늦어진 길값입니다.”
양문혁은 동전을 받았다. 받는 순간, 그는 자기가 나무라던 아이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고개를 높였다.
“명문을 알아보는 눈은 있군.”
곽서가 웃었다. 웃음은 얇았다.
“명문은 어디서든 눈에 띄니까요. 특히 나루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양문혁은 그 말의 가시를 알아차렸는지 잠시 곽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젖은 짐을 들어 올리라 명하며 돌아섰다. 그의 하인 같은 장정 둘이 허둥대며 짐을 챙겼다. 아이는 아직도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진소백은 손에 든 젖은 종이를 아이의 광주리에 넣어 주었다.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그 순간 곽서의 시선이 진소백에게 와 닿았다.
차갑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약방의 젊은이.”
곽서가 말했다.
“요 며칠 자주 보이는군.”
“나루는 마을 사람이 오가는 곳입니다.”
“맞는 말이지. 그래서 이곳엔 규칙이 필요합니다. 배를 대는 순서, 짐을 내리는 값, 밤에 지나갈 수 있는 사람과 지나가면 안 되는 사람. 규칙이 없으면 강가가 먼저 썩습니다.”
진소백은 곽서의 뒤에 선 사내들을 보았다. 그들은 험악했지만, 방금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다. 양문혁에게도 칼을 뽑지 않았다. 대신 돈을 주고 소란을 눌렀다. 누군가는 그것을 질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서 아래에서 아이는 맞을 뻔했고, 돈은 힘 있는 쪽으로 흘렀다.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썩는 모양이 달라질 뿐입니다.”
주변 공기가 조금 더 낮아졌다.
곽서의 뒤에 있던 사내 하나가 앞으로 반걸음 나왔다. 진소백은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을 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내의 어깨는 두껍고, 손등은 터져 있었다. 진소백이 할 수 있는 것은 맞고 쓰러진 뒤 피를 멎게 하는 방법을 아는 정도였다.
곽서가 부채를 접었다.
“말은 배운 사람처럼 하는군. 그런데 배운 사람들은 종종 강을 얕게 봅니다. 발목만 적실 줄 알고 들어왔다가, 허리까지 잠기고 나서야 물살을 탓하지.”
“저는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더 조심해야지.”
곽서가 가까이 다가왔다. 진소백은 그의 장포에서 젖은 나무 냄새와 약한 술 냄새를 맡았다. 눈앞의 사내는 소문처럼 시뻘건 악귀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구역에 들어온 돌멩이 하나가 물살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피는 사람 같았다.
“하 노인의 방을 뒤진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나?”
진소백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약낭 끈을 눌렀다.
“아십니까?”
“수향에서 밤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오래 못 삽니다.”
“그럼 왜 막지 않았습니까?”
곽서의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졌다.
“막아야 할 일과 지나가게 둬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도 이곳의 규칙입니다.”
진소백은 목이 말라지는 것을 느꼈다. 분노가 올라왔지만, 분노만으로는 앞의 사내를 밀어낼 수 없었다. 그는 하 어르신의 헝클어진 이불과, 아무것도 훔쳐 가지 않은 손길을 떠올렸다.
“찾던 게 종이였습니까?”
그 말이 나가자마자, 곽서 뒤 사내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거나, 적어도 그 말이 그냥 지나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곽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접은 부채 끝으로 자기 손바닥을 천천히 두드렸다. 탁, 탁, 탁. 강물소리 사이에 작은 소리가 끼어들었다.
“약방 젊은이가 약재보다 종이에 관심이 많군.”
“방을 뒤진 자들이 돈을 두고 갔습니다.”
“가난한 자는 돈만 훔치고, 배운 자는 종이를 훔친다?”
“그 종이를 찾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곽서가 웃었다. 이번에는 조금 진짜 웃음 같았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진소백은 그 말을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곽서는 알면서 숨기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방금의 말에는 다른 결이 있었다. 그도 무엇을 찾는지 완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의 불쾌함. 누군가의 명령을 들었으나, 명령의 끝을 모르는 사람의 짜증.
“모르면서 찾습니까?”
“세상에는 알아서 찾는 물건보다, 몰라도 찾아야 하는 물건이 더 많습니다.”
곽서가 시선을 강 위로 돌렸다. 작은 배 하나가 맞은편 갈대밭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공은 곽서를 보자마자 노 젓는 속도를 늦췄다.
“나는 이 물길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굶기지 않습니다. 사공이 아프면 약값을 대고, 과부의 배가 부서지면 목수를 붙입니다. 대신 모두가 내 말을 듣습니다. 밤길을 열라면 열고, 닫으라면 닫습니다. 그래야 이 마을이 굴러갑니다.”
진소백은 그 말이 거짓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루의 사람들은 곽서를 두려워했지만, 그를 마냥 증오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두려움과 의존은 같은 줄에 묶여 있었다. 그 줄을 쥔 사람이 곽서였다.
“그 질서 때문에 하 어르신 방이 뒤져졌습니다.”
“그 늙은이는 다치지 않았지.”
“다치지 않았으면 괜찮습니까?”
“다쳤다면 네가 오늘 나와 이렇게 말하고 있지 못했을 거다.”
부채 끝이 진소백의 가슴에 닿았다. 세게 찌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진소백은 숨이 한 박자 막혔다. 곽서의 뒤 사내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듯.
진소백은 손을 들어 부채를 치우지 않았다. 치울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우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폭력이 시작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악물지 않으려 했다. 얼굴에 힘이 들어가면 상대는 그것을 겁이나 도전으로 읽을 것이다.
“저를 겁주러 오셨습니까?”
“아니.”
곽서는 부채를 거두었다.
“살려 두러 왔다.”
그 말은 낮고 조용했다. 진소백의 등줄기에 한기가 올라왔다.
“네가 하 노인 곁을 맴돌고, 약재 계집과 말을 나누고, 객잔에서 쓸데없는 귀를 열어 두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네가 찾는 것이 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찾는 척을 계속하면, 찾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널 먼저 찾을 거다.”
약재 처녀를 말하는 대목에서 진소백의 눈이 흔들렸다. 곽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 발로 물에 들어갔다고 생각하지만, 강에는 늘 아래쪽에서 잡아끄는 손이 있어. 너는 그 손을 본 적이 없지.”
진소백은 침을 삼켰다.
“그 손이 당신입니까?”
곽서의 입가가 움직였다.
“나는 손목쯤 되겠지.”
말이 끝나는 순간, 뒤에 있던 사내 하나가 진소백의 어깨를 잡았다. 손가락이 뼈 사이로 파고들었다. 진소백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빠져나가려 했다. 고진명에게 배운 발놀림의 그림자가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힘이 아니었다. 사내는 그의 움직임을 반쯤 읽고 무릎으로 허벅지를 찍었다.
진소백의 다리가 풀렸다.
그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짚었다. 젖은 흙이 무릎에 배었다. 손이 약낭을 스쳤다. 침통이 있었다. 눈앞 사내의 손목 안쪽에는 눌러 마비시킬 수 있는 혈자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손을 넣는 순간, 다른 두 사내가 그의 얼굴을 바닥에 처박을 것이다. 그는 그 계산을 너무 늦게, 그러나 분명히 했다.
곽서는 내려다보았다.
“보았나. 네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아직은 그런 자리다.”
진소백은 숨을 골랐다. 허벅지가 저리고 어깨가 뜨거웠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무릎을 꿇은 꼴이었지만, 고개까지 숙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 어르신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곽서의 눈에 잠깐 흥미가 스쳤다.
“협박인가?”
“부탁도 아닙니다.”
“그럼?”
진소백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말은 적고, 해야 할 말은 많았다. 그 간극이 입안을 쓰게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곽서가 잠시 그를 보았다. 조롱할 수도 있었고, 웃어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소백이 방금 한 말의 무게를 재는 듯했다.
“약방 젊은이, 이름이 뭐라 했지?”
“진소백입니다.”
“진소백.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약이라면, 약이나 해라. 강의 병을 고치겠다고 나서지 마라. 강은 사람 하나가 고치는 게 아니다.”
그는 뒤돌아섰다. 사내가 진소백의 어깨를 놓았다. 피가 다시 도는 듯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리고 하 노인에게 전해라.”
곽서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숨긴 것이 오래 숨겨질 거라 믿지 말라고.”
진소백은 그 뒷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은 곽서가 지나가는 길을 다시 열어 주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짐을 들었다. 나루는 곧 소리를 되찾았다. 밧줄이 당겨지고, 물건값이 불리고, 배가 흔들렸다. 방금 일은 물 위에 떨어진 돌처럼 잠깐 파문을 만들고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진소백의 안에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허벅지가 말을 듣지 않아 한 번 비틀거렸다. 아까 넘어졌던 짐꾼 아이가 다가오려다 멈췄다. 진소백은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아이가 더 다가오면 곽서의 사람들 눈에 띌 것이다.
그때 양문혁이 다시 보였다. 그는 배에 오르기 전 곽서의 부하 하나와 낮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진소백은 거리가 있어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양문혁이 품에서 작은 패 하나를 꺼내 보이고, 곽서의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보았다. 명문 정파의 제자는 조금 전 아이의 멱살을 잡았던 손으로, 이제는 나루의 어둑한 규칙과 무언가를 맞바꾸고 있었다.
진소백은 그 장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분노가 표정에 드러날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강을 보았다.
강물은 아무 편도 들지 않았다. 정파의 흰 옷도, 곽서의 회색 장포도, 짐꾼 아이의 젖은 바짓단도 똑같이 비추고 흘려보냈다. 선악은 깃발에 붙어 있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 사실을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오늘에서야 조금 더 아프게 알았다.
약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지 않았다. 그런데도 발걸음마다 허벅지 통증이 올라왔다. 그는 약낭에서 산초와 쑥이 든 천 주머니를 만졌다. 그녀는 알았던 걸까. 오늘 그가 어디를 다치고 돌아올지까지는 몰랐겠지만, 다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던 눈이었다.
객잔 앞을 지날 때, 하 어르신이 처마 아래에 앉아 있었다. 낡은 담뱃대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진소백의 젖은 무릎과 어깨를 차례로 보았다.
“만났구나.”
진소백은 대답 대신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지붕 밑 그늘이 필요했다.
“곽서가 전하라 했습니다. 숨긴 것이 오래 숨겨질 거라 믿지 말라고.”
하 어르신의 손가락이 담뱃대를 더 세게 쥐었다. 마른 손등의 핏줄이 올라왔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놈이 직접 그랬느냐?”
“예.”
“그럼 이제 물살이 빨라지겠구나.”
진소백은 하 어르신의 얼굴을 살폈다.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들킨 사람의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오래전 이미 시작된 일이 다시 자기 문 앞에 닿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종이가 무엇입니까?”
하 어르신은 눈을 감았다.
“네가 알면 네가 죽는다.”
“모르면 안 죽습니까?”
하 어르신은 대답하지 못했다. 진소백은 그 침묵에서 답을 들었다. 이미 모른다고 안전한 때는 지났다.
약방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왔다. 그녀는 진소백의 다리를 보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안으로 들어오세요”라는 말 외에는 묻지 않았다. 진소백은 하 어르신을 한 번 더 보았다. 노인은 여전히 담뱃대에 불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쪽 방에서 그녀는 말없이 그의 허벅지에 약을 발랐다. 손길은 빠르고 정확했다. 진소백은 통증을 참으며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나루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곽서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만든 질서는 여전히 마을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곽서가 말했습니다.”
진소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기는 손목쯤 된다고.”
그녀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정말 잠깐이었다. 곧 다시 약을 펴 발랐지만, 진소백은 보았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짐작은 해요.”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그녀는 붕대를 감았다. 한 바퀴, 두 바퀴. 너무 세지도 느슨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아니에요.”
진소백은 웃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대답이 예상되어 있었다. 모두가 조금씩 알고 있었고, 조금씩 숨기고 있었다. 하 어르신도, 그녀도, 곽서도. 진소백만 강가에 늦게 도착한 사람처럼 젖은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녀가 붕대 끝을 묶었다.
“살아 있어야죠.”
짧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부탁인지 명령인지, 혹은 사과인지 진소백은 알 수 없었다.
해가 기울 무렵, 그는 다시 약방 문밖으로 나왔다. 수향의 물길은 붉은빛을 받아 느리게 빛났다. 나루에는 곽서의 부하들이 여전히 있었다. 그들은 짐값을 정하고, 배의 순서를 바꾸고, 밤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사람들은 불평하면서도 따랐다. 그 질서 덕분에 굶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질서 때문에 입을 다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소백은 곽서를 미워할 수는 있어도, 단순한 악당으로 치워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더 까다로웠다. 곽서는 칼을 들고 마을을 베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밧줄을 쥐고 배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자였다. 그리고 그 밧줄의 다른 끝은 그의 손에만 묶여 있지 않았다.
손목.
곽서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그렇다면 손은 따로 있었다. 팔도, 어깨도, 어쩌면 몸통도.
진소백은 강 너머 어둑해지는 갈대밭을 보았다. 물 위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하 어르신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 지나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마을의 물길을 쥔 곽서조차 누군가의 손발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강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진소백은 약낭 끈을 다시 묶었다. 그 안에 든 것은 상처를 막는 약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가진 것도, 아직 할 수 있는 것도 그것뿐이었다.
이 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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